유골함
길을 걷다가 버려진 볼펜을 보았다
허연색 볼펜 심이 삐죽이 드러난
고장난 볼펜,
글씨가 써지지 않을까 그래도
허옇게 세어버린 머리를
감추고 싶어서 숏커트를 했다
고장난 인생,
꾸역꾸역 살아지더군 그래도
너가 사는 집은 어떨까
궁금했던 적이 있었지, 젊은 날
얼굴 반반한 내 후배가
거길 갔다고 들었어
왜 내가 아니라 그 애였을까
안경을 쓴 못생긴 남자가
내 앞으로 달리며 지나가
문득, 나는 그리움이
자라나는 것이 아니라
이어달리기임을 깨닫는다
쉬었다가 다시 일어나
달리는 세월의 경주
이제 너는 어느 납골당의
조그만 유골함에 누워있지
조각난 그리움들
아픈 손거스러미의 시간
손톱깎이로 짧게 잘라낸다
댓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