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詩人)을 찾는 6개의 목소리
1의 목소리가 말합니다
언제든 연기(演技)할 준비는 되어있어요
아줌마, 아저씨, 소년, 소녀, 늙은이,
그리고 나무와 돌멩이까지
그런데 말입니다
당신의 연출 지시는 너무 많습니다
아름다움을 말해서는 안됩니다
슬퍼도 울면 안된다는 거예요
기뻐도 살짝 웃는 둥 마는 둥
아버지를 아버지라 말하지 못하는
불쌍한 서자(庶子)처럼
꾸어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무대 한가운데에 서 있는 나
아, 이런 비유도 쓰면 안된다는군요
도대체 나더러 어쩌라는 거지?
2의 목소리가 말합니다
나에게 연기 학원(演技學院) 다닌 적이 있냐고 물었지?
연기를 하려면 연기 학원에 다녀야 해?
청소부를 연기하려면 직접 청소부 일을 해봐야지
청소부 흉내를 낼 게 아니라
당신의 머릿속은 온통 비어있는 단어로 가득해
당신은 진짜 삶을 살아낸 적이 없어
공중 부양(空中浮揚)의 삶을 살고 있지
제발, 땅으로 좀 내려와 봐
3의 목소리가 말합니다
내가 보기에 당신은 꽈배기의 달인
나는 똑바로 서 있고 싶은데
당신은 이렇게 말하는 거야
비틀고, 꼬고, 계속 움직여요!
그런 나를 보는 관객은
눈이 핑핑 돌아서 쓰러지고 말아
뭐, 특수 제작 안경을 쓴 소수의 관객이
나의 미쳐버린 춤을 보고
손뼉을 쳐주기는 하더군
그냥, 좀 자연스러운 춤을 추면 안되는 거야?
그나저나 당신, 춤 춰 본 적은 있어?
4의 목소리가 말합니다
혹시 어디가 아픈 건 아니죠?
안색이 창백해 보여요
밖에 나가서 사람도 만나고
맛있는 것도 사 먹고
멋진 옷도 입고
아, 돈이 없구나
그래서 나한테 부자 흉내를 내라는 건가?
말해봐요, 있어 보이는 부자의 질감(質感)이 뭔지
명품의 상표 딱지를 슬쩍 감추고
젠체하듯 걸으면 됩니까?
그런데, 사람들이 그 어설픈 부자 연기를 속아줄까요?
5의 목소리가 말합니다
당신의 문제는 말이야
너무 얼굴을 따진다는 거
달걀처럼 갸르스름하고
코는 자연스럽게 오똑하고
눈은 너무 크지도 작지도 않은
피부는 희고 매끄러워야
뭐라고요? 내가 촌스럽다고요?
점을 빼고, 쌍꺼풀 수술을 하라고요?
어이, 이봐요, 내 얼굴을
빼고, 자르고, 덧붙이고, 다듬고
이게 전문가인 당신의 기술이야?
6의 목소리가 말합니다
나는 지쳤다구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
언제까지 당신의 그 말도 안 되는
연출 지시를 들어야 하지?
당신은 내 연기가 형편없다고 했지
그딴 연기를 하려면 집에나 가라고
그래, 집에 갈 거야 그러려면
당신의 말 한마디가 필요해
Ready, a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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