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詩集)
1월의 어느 날이었다
길을 걷는데 분홍색의 보도블록이 말했다
시를 써보렴
아픈 발을 질질 끌고서
너의 목소리를 따라
너는 언제나 갑(甲)이었다
너를 좋아하는 마음을 낼수록
나는 괴롭고 조바심이 났다
시를 쓰는 것이 언제나 행복한
을(乙)의 이야기를 알고 있다
가난한 콜센터 노동자인 그는
죽는 순간까지 시인으로 살아갈 것이다
가끔, 네가 싫어져
잔가시가 삐죽삐죽 나 있는
볼품없는 막대기로
너를 때린 적이 있다 그러면
너는 그 보드라운 주먹으로
나를 흠씬 두들겨 패주었다
너는 친절했지만 사소하게 무례했다
안녕, 이라고 말을 걸면 침묵했고
잘 가, 라고 말하면 고개를 돌렸다
나는 너에게 어떤 이별의 말을 해야 할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이제 50편의 시를 가지고 강을 건넌다
누구도 얼른 떠나라고 등을 떠밀지 않았고
아무도 나에게 행운을 빌어주지 않았다
시인 것과 시가 아닌 것
시가 될 수 있는 것과 될 수 없는 것
시로 말할 수 있는 것과 말할 수 없는 것
그렇게 너는 한 권의 시집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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