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성(慣性)
아파트의 경비는 아침 6시에
화단의 흙을 고른다
기다란 삼각 괭이로 흙바닥을
헤집고 다시 다지고
9월 늦더위, 땀을 훔치며 열심히
저 경비의 머릿속에는 어린 시절,
들판의 논과 밭이 펼쳐져 있을지도
푸석거리는 머리를
나일론 리본 모자로 감춘
늙은 여자는 아침 산책을 나선다
유모차에는 작은 푸들 한 마리
어찌나 앙칼지게 짖는지
여자는 강아지가 어디가 불편한지
조심스럽게 살펴본다
성질 더러운 애새끼 달래듯
그런 자식이라도 없는 것보다는 나을지
청소부 아줌마는 1년 내내
빨강색 티셔츠만 입고 다닌다
왜 하필 빨강색일까?
기운이 나는 색이라서?
때가 덜 타서?
차마, 물어볼 수가 없으므로
그냥 행운의 색, 이라고 생각하자
유통기한이 임박한 과일 맛 젤리를 질겅거리며
과일 맛에는 과일이 없어
사과 맛 포도 맛 딸기 맛
다 거짓부렁이지
그래도 어쩔 수 없이 속아주는 기분
싸게 판다면 또 사줄 것 같아
댓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