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분 후의 세계
오래전, 소설 작법 수업을 들을 때의 일이다 소설가 선생은 매주
다른 주제를 주었다 열 명 정도의 수강생이 각자 단편을 써오고
수강생들은 그걸 읽고 나서 합평(合評)을 했다 첫 주의 주제는
5분 후의 세계였다 아직도 기억나는 소설은 하굣길에 늘 가던
길이 아닌, 다른 길로 갔다가 교통사고로 죽은 두 여학생의
이야기였다 재잘거리면서 걷던 여학생들은 5분 후에 닥칠 일을
결코 알지 못했다 뭔가 뻔한 이야기 같으면서도, 나는 읽는 내내
소름이 돋았다 삶과 죽음이 갈리는 갈림길, 인생의 어떤 선택은
결코 돌이킬 수 없는 비가역적(非可逆的) 손상을 가져온다
5분 후의 세계, 내가 그 주제로 쓴 단편은 무미건조한 결혼 생활에
절망하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여자의 이야기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왜 그런 우울한 이야기를 썼을까 싶기도 하다 여자는 아파트의 12층에서
살았다 여자가 죽어버리겠다고 갑자기 결심한 것은 아니었다 여자의 눈에
베란다 밖으로 쫙 펼쳐진 은색의 계단이 보였다 여자는 천천히 베란다 쪽으로
걸어갔다 남편과 다툰 후, 5분 뒤에 일어난 일이었다 소설은 거기에서 끝나버렸다
소설가 선생과 그 수업의 학생들이 내 소설에 대해 뭐라고 했는지
기억나지는 않는다 소설 쓰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고 힘들구나, 이걸
어떻게 자꾸자꾸 써낼 수 있을까, 그런 고민을 했던 것 같다
그 수업을 들었던 애들 가운데 작가가 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수업을 가르쳤던 소설가 선생도 이제는 더이상 소설을 쓰지 않는다
생각해 보니, 그 수업을 가르칠 때에도 선생은 소설 쓰는 일을
버거워했던 것 같다 아주 솔직하게, 자기도 뭘 가지고 소설을 써야 할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나도 오늘 무엇에 대해 쓸지 5분 전에는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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