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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시: 이불

 

이불


1.
아파트의 분리수거장에 그리 낡지 않은 매트리스와
이불이 나와 있다 이불은 두 개의 끈으로 잘 동여매져
있었다 금실과 은실로 수놓아진 진홍색의 솜이불
엄마가 시집올 때 해온 이불도 알록달록한 천에
수가 놓아져 있었다 장미와 모란과 학이 있는 이불
나는 버려진 옛날 이불에서 죽음의 기운을 읽는다
아마도 저 이불의 주인은 이제 이 세상 사람이 아닐 것이다
깨끗해 보이는 매트리스도 그래서 함께 버려졌으리라

2.
가을 새벽, 소슬바람에 잠이 깼다
춥다, 나는 오리털 이불을 꺼내었다 덮어보니
무겁다, 최신의 과학 기사에 따르면 무거운 이불을
덮어야 잠이 잘 온다고 한다 과학자들은
그 이유가 다소 무겁게 짓눌리는 느낌이 사람에게
안정감을 주기 때문이라고 추측할 뿐이다
이깟 손바닥 두께만큼의 오리털 이불의 무게를
견디지 못한다면 편안한 잠을 잘 수 없다
몇 번을 뒤척이다가 나는 인생에 얼마만큼의
무게가 더해져야 안정감을 느낄 수 있을지 생각한다
휘청거리지 않고 걸어갈 수 있는 그런 무게의 짐
하지만 나는 늘 휘청거렸다

3.
한때 극세사 이불이 크게 유행했었다
엄마는 극세사 이불이 마음에 들었는지
꽤 많이 사들였다 백화점에서 세일할 때마다 샀다
극세사 이불의 색상은 거의 비슷했다
다홍색 빨강색 자주색 보라색
내게는 아주 옛날의 내복 색깔 같았다
그런데 엄마는 극세사 이불을 덮지 않았다
그걸 덮으면 너무 더워서 갑갑하다고 했다
엄마는 그렇게 산 이불을 막내딸 혼수로 주고 싶어했다
하지만 동생은 이불 색깔이 촌스럽다며 가져가지 않았다
엄마가 사랑한 극세사 이불은 포장도 뜯지 않은 채
나의 장롱에 오래도록 잠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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