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짜
오늘 내가 받은 고구마의 택배 운송장에는
'호박고구마 특상 사이즈 비품'이라고 되어있다
비품은 B급, 삐짜를 뜻하는 말이다 그런데
이 고구마의 상품페이지에는 전혀 다른 말로
쓰여있다 실속절약형 로얄과, 도대체 이 상품의
정체는 무엇일까? 한입 고구마는 진짜로 새끼
손가락 크기의 고구마이며, 못난이 고구마는
정말로 지질하게 못생긴 고구마이다 이와는 달리
실속절약형, 이라는 단어에서 풍기는 의뭉스러움은
약간 '흠' 있는 상품을 보내드린다는 판매자의 해명으로
해소가 된다 그렇다면 그 뒤에 붙는 로얄과의 뜻은?
그것은 운송장의 '비품'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무언가
비정상적인 경로로 들어온 상품을 뜻하는 삐짜를
척하니 써놓은 판매자의 무신경은 불쾌하기 짝이 없다
자기들 물류센터 알바가 혹시나 로얄과를 포장해서
보낼까봐 그렇게 확실하게 삐짜, 라고 글로 못을 박은
것이리라 그런데 고구마에는 로얄과, 가 존재하지
않는다 한입, 중, 특상, 대, 특대, 이렇게 대략 5가지
크기로 판매된다 특상이 제일 비싸고, 아주 작거나
큰 것은 싸다 그러니까 내가 주문한 실속절약형 로얄과의
실체적 진실이란 '특상 크기의 삐짜'인 것이다 royal을
지향하지만 그 끄트머리에 닿을 수 없는 실속절약형
비품 고구마의 비애는 이 고구마의 못생긴 자태로도
입증된다 나는 아주 잘 드는 필러로 고구마 껍질을
박박 깎아내고는 모두 다 냉동실에 넣었다 주홍빛이
도는 호박고구마가 맛이라도 로얄이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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