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길 사람 속
오래전, 사회심리학 강의를 들을 때의 일이다
강의를 맡은 강사 선생은 박사 학위를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이였다 선생은 사람은 좋았으나 강의는
지루하기 짝이 없었다 수업 시간은 꽤나 어수선했다
수업은 뭔가 선생 혼자 앞에서 말하는 시간 같았다
나는 그런 강사 양반이 딱해서 수업을 더 열심히 들었다
어느 날, 선생이 늘어진 수업 분위기를 바꿔 보려고
이야기 하나를 들려주었다 자기 선배가 쓴 박사 논문에
대한 것이었다 논문의 주제는 외모에 대한 사람들의
가치 판단과 관련이 있었다 선생의 선배는 실험을 하나
고안했다 그는 사람들이 단정한 거지와 더러운 거지, 둘 중
어느 쪽에 더 많이 적선하는가를 알아보기 위해 자신이
직접 거지 분장을 하고 지하철에 탔다 그리고 그렇게
지하철에 나갈 때마다 자신이 구걸로 받은 돈을 기록했다
거지 분장을 한 서울대 심리학과 박사과정생이라니,
생각만 해도 웃음이 터져 나왔다 아무튼 이야기가 그쯤
되자 졸던 학생들까지 죄다 눈이 반짝거리면서 무슨
학회 토론 분위기가 되었다 지하철의 승객들은 걸인의
어떤 차림에 자신의 주머니 속 돈을 더 꺼내어 주었을까?
그 실험의 결과는 좀 의외였다 선생의 선배는 다소
단정한 차림의 거지로 나갔을 때 더 많은 적선을 받았다
찢어진 옷에 냄새나는 거지에게 사람들은 거리감을
느꼈던 모양이다 그보다는 다소 말쑥한 옷차림의
걸인에게 적선을 하는 것이 편안하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 지하철의 승객들은 품격있는 거지, 그러니까
자존감을 지키며 구걸하는 걸인에게 더 마음이
기울었던 것일까? 가끔 그 실험의 의미가 무엇이었을지
생각하곤 했다 그럴 때마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 그것이지, 말하게 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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