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용(家庭用)
올해는 인터넷으로 과일이나 채소 같은 것을
구매할 일이 좀 많았다 그런데 상품을 고를 때마다
이상하게 걸리적거리는 단어가 하나 있었다 바로
가정용(家庭用)이라는 단어였다 가정용, 이라고 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안온한 집에 어울리는 무언가
단촐한 물건? 그런데 그것이 식품이라면 도대체
가정용 과일과 채소의 외관은 어떠한 것이어야 할까?
나의 이러한 의문은 올여름에 가정용 과일을
주문해 보고서야 단박에 풀렸다 가정용은 크기가
작고, 대개는 이런저런 흠이 있는 상품을 뜻했다
물론 과일이 크기는 작아도 당도가 높아서 맛이
있을 수도 있다 운이 좋았는지, 내가 주문한 가정용
복숭아와 참외는 진짜 맛이 있었다 그런데 더러는
밭에서 그냥 버려져야할 잔챙이나 폐급의 상품을
보내는 판매자도 있었다 그런 걸 한번 받아보고는
나는 가정용이라는 말에 진저리를 치게 되었다
고구마의 경우에는 가정용 대신에 한입 고구마가
통용된다 왜 가정에서의 먹거리가 죄다 작고 못생기고
흠이 있는, 버려지기 직전의 상품이어야만 할까?
나는 판매자들이 가정용, 이라는 단어를 선택한 이유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게 되었다 집이라는 공간은 개인에게는
격식이 없이 지내도 되는 가장 편안한 곳이니까,
먹는 것도 대충 아무거나 먹어도 된다는 뜻일까?
결국 가정용, 이라는 말은 좀 없는 사람이 먹는
싸구려, 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이제 가정용, 은 먹을거리에 덧입혀진 노골적인
계층성을 입증하는 모욕의 단어가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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