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비 출판(自費出版)
자비 출판은 자기 돈으로 자기 책을 찍어내는 것을 말한다
어떻게 하다 보니 최근에 내 손에 들어온 자비 출판 서적이
세 권 있었다 그 책들은 모두 신앙 서적이었다 하나는 신부님이
쓴 시집이었고, 다른 하나는 수녀님이 쓴 자서전, 나머지 하나는
평신도가 쓴 신앙 수필집이었다 나는 그 책들 모두 단 한 장도
읽지 않았다 그걸 나에게 선물해 준 분에게는 참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그런데 정말이지 읽고 싶은 마음이 전혀 들지 않았다
어차피 읽지도 않을 책을 그냥 쌓아두기도 뭐했다 그렇다고 이걸
폐지 더미에다 버리는 것도 영 마음이 내키질 않았다 궁리 끝에
나는 그 책들을 아파트의 출입구 쪽에다 두었다 혹시라도
신앙 서적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 있으면 가져가면 좋겠다는
뜻에서였다 며칠 새에 책들이 사라지기는 했는데, 내 생각에는
그 책들이 누군가 읽고 싶은 사람이 가져간 것이 아니라
청소하는 아줌마가 모아두었다가 재활용 분리수거하는 날에
버렸을 것 같다 자비 출판으로 나온 책들의 마지막은 대개가
저러하겠거니 싶어서 마음이 서늘해졌다 어떻게든 제대로 된
출판사에서 내 이름으로 된 책을 내야지 작년에 이런저런
공모전에 글을 써서 보낸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적어도
어디에 뽑힌 이력이라도 한 줄 있어야 책을 쓸 기회를 얻을
수도 있지 자본주의란 더럽게도 정직한 것이다 글을 쓰려는
사람은 어떻게든 자신이 팔릴만한 책을 쓸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해야 하니까 그런데 그게 안 되는 사람들의 안온한 선택이
자비 출판이다 일단 ISBN이 책 뒤표지에 찍힌 자비 출판 책을
내면 작가 신인으로서의 등단은 불가능한 일이 된다 책을
안내면 안냈지 자비 출판은 절대로 하지 않을 거야
나는 어디론가 사라진 세 권의 자비 출판 책들의 음울한
끝을 상상해 보고는 다시금 다짐하게 되는 것이었다
영화의 제목이 독특하다. '천애명월도'라는 명검을 두고 벌이는 검객들의 혈투인가, 막연한 생각으로 영화를 봤다. 그런 검은 영화 속에 나오지 않는다. 대신에 이 영화를 지배하는 비장의 무기는 공작령(孔雀翎, 공작의 깃모양 무기로 막강한 화력을 지님)이다. '천애명월도(天涯明月刀, 1976)'는 '유성호접검( 流星蝴蝶劍, 1976)'을 만든 초원 감독의 작품이다. 검객 부홍설(적룡 분)은 강호의 일인자가 되겠다는 일념으로 고향을 떠나 방랑 중이다. 그는 자신과 적대 관계에 있는 연남비로부터 흑도파의 우두머리 공자우가 공작령을 차지해서 강호제패를 노린다는 말을 듣는다. 공작령을 찾아내기 위한 여정에 함께 하게 된 연남비와 부홍설, 부홍설은 공작령의 주인이자 공작산장의 우두머리 추수청에게 공작령을 얻어내는 데 성공한다. 그 과정에서 추수청이 공자우의 밀정에 의해 죽게 되고, 추수청은 딸 옥정을 부홍설에게 부탁한다. 공자우는 자신의 부하 검객들을 보내 부홍설을 죽이고 공작령을 빼앗으려 한다. 그 와중에 연남비의 생사도 알 수 없게 되고, 추옥정은 납치된다. 부홍설은 공작령을 지키고, 옥정을 구해낼 수 있을까... 이 영화의 원작은 무협 소설 작가 고룡의 동명 소설이다. 그런데 이 소설은 전작이 있다. 말하자면 시리즈물이라고 할 수 있는데, '변성랑자(邊城浪子)'가 그것으로 '부홍설'이라는 인물의 인생을 담고 있다. 그러나 영화 '천애명월도'는 부홍설에 대한 그 어떤 정보도 주지 않고 바로 연남비와의 대결에서부터 시작한다. 초원 감독은 캐릭터에 대한 묘사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 것 같다. 영화는 쉴 새 없이 이어지는 대결로 꽉 채워져 있기 때문이다. 공자우의 본거지에 부홍설이 들어가기까지 너무나 많은 자객들이 나오고, 대결이 이어진다. 말하자면 볼거리 위주의, 철저히 흥행을 노린 감독의 의도라고 할 수 있다. 지금의 관객들 시각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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