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마, 인생
어제 고구마 상자를 살펴보다가 썩은 고구마를 발견했다
고구마는 잘 썩는다 더럽게도 잘 썩는다 그래서 매일 고구마를
만지고 살펴보면서 썩은 것이 없는지 확인했다 그런데도
고구마가 썩어가는지 알아내지 못했다 결국 고구마 상자를
정리하면서 고구마를 모두 깎아서 냉동실에 넣어두었다
가만 보니, 겉으로는 멀쩡하게 생긴 것도 조금씩 썩어가고
있었다 문득, 얼마 전에 고구마 상품평 읽다가 발견한 고구마
농장 집 아들의 댓글이 떠올랐다 댓글을 요약하면 이렇다
1. 고구마는 난대성(暖帶性) 작물이다. 따뜻한 곳에다 보관하라
2. 겨울철 날씨에 고구마는 배송 과정에서 냉해를 입는다. 반드시
3kg 정도의 소량으로 주문하라 3. 일단 고구마를 받으면, 따뜻한 방에다
사나흘 고구마를 펼쳐둔다 그래야 고구마가 숨을 쉬고 썩지 않는다
참으로 유용하고도 흥미로운 댓글이었다 나는 그걸 읽으면서
그 농장 집 아들은 고구마를 그냥 먹을거리가 아니라, 하나의
살아있는 생명체로 본다는 생각이 들었다 따뜻한 곳을 좋아하는
고구마, 숨을 쉬는 고구마, 추운 날씨에 오들오들 떨다가 냉해를
입는 고구마, 무슨 고구마 보관을 신주단지 모시듯 해야 할 판이었다
결국 그렇게 신경을 써서 보관을 했건만, 우리집의 고구마는
썩어가고 있었다 고구마처럼 썩어가는 줄도 몰랐던 내 인생,
누군가 고구마가 왜 이렇게 잘 썩느냐고 불평하자 댓글로 달린
어느 작가의 소설에 나온 글귀는 그러했다 나는 고구마의 썩은
부분을 깎아내면서 그 작가의 통렬한 비유에 감탄했다 인생의
많은 것들은 고구마 껍질의 안쪽처럼 알아보기 어렵게 가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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