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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시: 공모전(公募展)


공모전(公募展)


인삼차와 우롱차를 섞으면 무슨 맛이 나는지 아니?
그게 말이지 인삼차가 이겨 인삼이 힘이 좀 센 거 같아
우롱차는 좀 매가리가 없는 모양이지 그런데 인삼차도
이기지 못하는 맛이 있어 치약맛, 이 빌어먹을 치약은
계속해서 물을 들이키게 만들거든 아무래도 버려야겠어
치약을 버리려니까 진짜 아깝네 이걸 어디에다 써먹을 데나
있는지 스뎅 그릇 때깔이나 나게 만들 때나 쓸까? 그러고 보니
오늘 시를 재활용했군 공모전의 마감일이었는데 말이야
이전에 떨어진 공모전의 시들을 그러모아서 다시 냈거든
한번 안된 거 또 안되라는 법 있어? 심사위원이 다를 수도
있잖아 이 공모전이라는 게 그래 심사위원 취향까지 연구
해야 해 나 원 참 더러워서 어디서 들으니 공모전 첨삭 전문
시 선생도 있다 그러더군 첨삭 비용은 얼마나 받아먹는 걸까?
그런데 진짜 궁금하기는 해 시란 무엇인가? 아니, 시가 아닌
것은 무엇일까? 시는 어떻게 써야 하는 것인가? 시인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 그딴 걸 생각하는 걸 그만두기로 하자 어차피
인생은 그냥 운빨일 뿐이지 밤마다 잠이 들 때 아주 간절히
기도는 해 좋은 꿈을 꾸자 그 좋은 꿈이 꾸어지지 않는 것이
문제지 첨삭 선생의 더러운 빨간펜 따위는 무시하기로 하자
알러지 때문에 눈이 퉁퉁 붓고 가려워 안과 의사가 처방해 준
안약이 참 용하지 그거 단 한 방울, 눈에 넣었더니 눈이 안아파
인생도 그렇게 아프지 않을 수 있으면 좋겠네 어차피 되지도
않을 시를 또 재활용해서 내고 말았어 재활용은 참으로 누추한
단어야 거룩하기도 하고 사람들은 재활용품을 찬미하면서도
은근히 경멸하지 인생이 재활용되지 않는 것이 유감이군
새롭게 리셋, 리부팅, 리뉴얼, 리사이클, 리모델링, 시, 공모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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