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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시: 갈림길

 

갈림길


어긋난 갈림길에서 나는 울었네
돌아갈 수 없으므로
벚꽃은 네모난 창에 갇혀있고
바람이 나무를 후들겨 팰 때

꽃이 피는 날은 그리 길지 않아
이렇게 빨리 지나갈 줄 알았다면
천천히 뒤돌아서 눈에 담아둘 것을

눈물은 뼛속 깊이 흘러 멍을 만들고
아마도 오랫동안, 아니 영영
말하지 않겠다고
후회하지 않겠다고
다 거짓말이지

누구나 거짓말을 해
이렇게 또 갈림길에서
뛰어가지 않겠어
한번 넘어진 뒤로는
그래도 가볍게 슬리퍼를
흙바닥에 스치면서
넘어지지 않는 법을 생각하지

벌써 지고 있는 벚꽃을
밟지 않으려고
갈림길에서는 누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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