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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시크릿 네임(La Place d'une autre, 2021)'의 숨겨진 이야기

  *이 글에는 영화 '비밀과 거짓말: 시크릿 네임(2021)'의 결말이 들어있습니다. 1. 밑바닥 인생 넬리의 선택   케이블 방송 가운데 내가 좋아하는 채널은 국회방송(NATV)입니다. 외국의 다양한 다큐는 물론 괜찮은 영화도 방영합니다. 특히 '다양성 영화관'이라는 프로그램이 눈길을 끕니다. 주로 제 3세계 영화들, 아시아권을 비롯해 유럽 변방 국가의 영화들을 선정해서 틀어주거든요. 그 영화들의 작품성이 균일하지는 않습니다. 그럼에도 일반 시청자들이 좀처럼 접하기 어려운, 특색있는 영화들을 틀어준다는 데에 나름의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얼마 전에 국회방송에서 방영한 프랑스 영화 '시크릿 네임(La Place d'une autre, 2021)' 도 흥미로웠습니다.   이 영화의 한국어 제목은 좀 길어요. '비밀과 거짓말: 시크릿 네임'이 한국어 제목이고, 영어 제목은 'Secret Name'이죠. 프랑스어 제목 'La Place d'une autre'은 번역을 해보면 '타인의 장소'가 되더군요. 제목부터 번잡스럽고 뭔가 의문을 품게 만드는군요. 그도 그럴 것이 영화의 여자 주인공이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다른 사람 행세를 하거든요. 영화의 초반부만 보면, 약간의 스릴러 느낌도 있구요. 자, 그럼 영화 '시크릿 네임'의 주인공은 어떤 사연을 품고 있는지 알아보기로 하죠.   영화의 시간적 배경은 1910년대, 여자 주인공 넬리는 고아입니다. 하녀 생활을 하던 넬리는 주인집 남자의 추근거림을 견디지 못하고 나옵니다. 하층민 고아 여성의 삶은 고단할 수 밖에 없지요. 별다른 일자리를 얻지 못한 넬리는 길바닥에서 구걸하는 신세가 됩니다. 그런 넬리에게 적십자사의 여성이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요. 넬리는 간호사의 일을 배우고, 전장에 파견됩니다. 1차 세계 대전이 터졌거든요.   전쟁터는 매우 참혹한 곳이지요. 그렇...

클레어의 카메라(Claire's Camera, 2018): 홍상수의 진심, 혹은 내밀한 일기

    만희(김민희 분)는 영화사 직원입니다. 만희는 지금 칸(Cannes)에 머물고 있어요. 영화사의 일 때문에 출장을 온 거죠. 한창 바쁘게 일하던 만희는 상사인 양혜의 호출을 받습니다. 카페에서 만희와 마주앉은 양혜는 만희의 해고를 통보합니다. 양혜는 만희가 정직하지 않기 때문에 함께 일할 수 없다고 말하지요. 만희는 자신의 어떤 점이 정직하지 않은 것이냐고 묻지만, 양혜는 알려주지 않습니다. 만희는 상사의 말대로 정말 정직하지 못한 사람일까요? 도대체 상사 양혜는 무슨 이유로 5년 동안 함께 일해온 부하 직원 만희를 해고한 것일까요?   홍상수의 영화 '클레어의 카메라(Claire's Camera, 2018)'는 낯선 타국의 휴양지에서 그렇게 해고 통보를 받은 만희의 이야기를 따라갑니다. 아니, 엄밀히 말하자면 만희의 이야기라고 하기도 그렇군요. 만희와 그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라고 해두죠.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는 클레어(이자벨 위페르 분)의 카메라를 통해 전달됩니다. 클레어는 칸에 온 관광객인데 우연히 만희와 만나게 됩니다. 클레어의 우연한 만남은 만희의 상사 양혜, 영화감독 소완수와도 이어지고요. 홍상수의 영화에서 '우연'이 이야기에 색을 입히고, 그 얼개를 짜임새 있게 만드는 건 하나의 공식 같아요. '클레어의 카메라'도 예외는 아닙니다.   과연 만희가 해고당한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요? 양혜가 만희를 해고한 다음의 시퀀스에 그 답이 들어있습니다. 양혜와 영화감독 소완수는 칸의 해변가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죠. 양혜는 만희가 소완수와 하룻밤을 보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런데 소완수는 양혜가 영화사 대표로서 후원하는 감독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두 사람은 연인 사이입니다. 소완수는 양혜에게 만희와의 일이 술에 취해서 저지른 실수라고 말해요. 그는 앞으로 그런 실수는 없을 거라는 다짐도 합니다.  클레어는 폴라로이드 카메라를 들고 다니면서 사진을 찍는 것이 취미입니다. 곧 ...

영화 '팔도강산(Paldogangsan)' 연작: 개발독재(開發獨裁) 시대의 프로파간다(propaganda) 영화

  팔도강산(Paldogangsan, 1967) 속 팔도강산(The Land of Korea, 1968) 내일의 팔도강산(Tomorrow's Scenery of Korea, 1971) 1.   유선방송의 'KTV 국민방송'은 국정홍보 채널입니다. 그 채널의 대부분을 채우는 프로그램은 '우리 정부는 아주 잘 해내고 있다'를 선전하고 있죠. 그렇다고 정권 홍보물만 만들어 방영하는 건 아닙니다. 흘러간 옛날 드라마나 한국 영화도 틀어줍니다. 얼마 전에 KTV에서 한국 영화 '팔도강산' 시리즈 를 방영하더군요. 영화 '팔도강산' 연작은 박정희 정권의 국정 홍보 영화로 시작되었는데, 의외로 흥행에 성공하면서 시리즈물로 나오게 되었죠. 이후에 '팔도'라는 제목이 들어간 한국 영화 제작 붐을 일으킬 정도였으니까요. 자, 그렇다면 그 원조 격인 영화 '팔도강산' 초창기 3부작에 어떤 재미가 있었는지 한번 살펴볼까요?   '팔도강산' 3부작의 주인공은 김희갑, 황정순 부부와 그 자녀들입니다 . 노부부의 자식들은 모두 결혼해서 전국 각지에 흩어져 살고 있어요. 부부는 자식들이 사는 모습을 살피려 여행을 떠납니다. 1편에 해당하는 1967년의 '팔도강산'은 부부의 국내 유람 편을 담고 있구요. 부부의 자식들은 각자 다양한 일에 종사하는데,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들이 사는 모습은 모두 한국의 산업화와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어요. 말하자면 그들은 경제발전에 일조하는 충실한 산업 역군인 셈입니다. 그 모습은 당시 박정희 정권이 추진하던 경제개발 5개년 계획과도 맞물려 있죠. 이 영화의 제작사가 '국립영화제작소'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팔도강산(1967)'은 나름 유쾌한 프로파간다 영화입니다 . 그것이 그 이듬해에 제작된 '속 팔도강산(The Land of Korea, 1968)' 에 이르러...

성혜의 나라(The Land of Seonghye, 2020): MZ세대의 좌절감과 불편한 진실

  *이 글에는 '성혜의 나라(2020)'의 결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29살, 아직 변변한 직장을 구하지 못한 성혜의 삶은 무척 고달픕니다. 신문 배달과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생계를 유지하고 있죠. 성혜의 아버지는 병원에 입원 중이고, 어머니는 식당에서 일합니다. 얼마 안 되는 수입에서 부모님께 용돈도 보내드리는 착한 딸이 성혜입니다. 성혜에게는 오래 사귄 남자 친구 승환도 있습니다. 승환은 공무원 시험을 준비 중이죠. 남자 친구가 좀 의지할만한 사람이면 좋겠는데, 승환이 가난한 부모 탓이나 하는 말을 들으면 좀 철딱서니가 없어요. 자, 어떤가요? 이 두 연인의 앞날이 그려지나요? 정형석 감독의 '성혜의 나라(The Land of Seonghye, 2020)'는 소위 가진 것 없는 흙수저 MZ세대의 우울한 초상을 보여줍니다.   흑백 화면으로 펼쳐지는 성혜의 일상은 숨돌릴 틈도 없이 팍팍합니다. 신문 배달을 하러 나가서는, 원치 않는 신문을 넣었다고 주민의 항의를 받습니다. 신문 보급소에서 준 스쿠터는 고장 나기 일쑤죠. 편의점에서는 어떤가요? 매번 라면 먹고 그릇을 치우지도 않고 나가는 고등학생들에게 싫은 소리를 하지 못합니다. 그런 성혜의 끼니는 삼각김밥입니다. 편의점에서 폐기해야 하는 유통기한이 지난 음식이죠. 성혜는 남자친구와 모텔에 가서도, 무료로 제공되는 세면도구를 알뜰하게 챙겨서 남자친구에게 줍니다. 그런 성혜에게 유일한 위로가 있다면 가끔 지나치는 애견 가게의 진열장에서 귀여운 강아지를 보는 것입니다. 성혜는 휴대전화로 강아지가 노는 것을 찍습니다.   성혜의 삶이 이렇게 고달파진 건 과거의 그 사건에서부터였습니다. 성혜는 틈틈이 입사 원서를 넣으며 취직하려고 애를 쓰죠. 그런데 전의 직장에서 인턴을 하다 그만 둔 이력이 발목을 붙잡습니다. 면접관은 성혜에게 그 이유가 무엇이냐고 묻죠. 성혜는 인턴 때 회식 자리에서 상사에게 성추행을 당했고, 그 일을 고발했으나 증거불충분으로...

우리의 하루(In Our Day, 2023): 예술가의 삶과 부서진 기타

  *이 글에는 영화 '우리의 하루'의 결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상원은 전직 배우입니다. '전직'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 현재는 배우 일을 그만둔 상태입니다. 해외 유학을 떠났다가 귀국한 상원은 선배 정수의 집에 잠시 머물고 있어요. 이 집에는 '우리'라는 이름의 고양이가 있습니다. 먹는 걸 좋아하는, 아주 통통하고 귀여운 고양이예요. 홍상수의 영화 '우리의 하루(In Our Day, 2023)' 에는 고양이 '우리'의 하루가 살포시 들어가 있어요. 고양이 집사들을 위한 영화냐구요? 그건 아닙니다. 그럼, 영화 '우리의 하루'에는 어떤 이야기가 펼쳐지는지 한번 살펴보기로 하죠.   영화에는 2명의 중심인물이 등장합니다. 전직 배우 '상원(김민희 분)'과 시인 '홍의주(기주봉 분)'가 그들입니다. 영화는 두 인물이 각자 보내는 하루의 일상을 대비시켜서 보여줍니다. 딱히 할 일이 없는 상원은 낮잠을 청하고, 나중에 조카 지수의 방문을 받습니다. 나이든 시인 홍의주도 아침나절에 잠을 좀 잤다가 일어납니다. 그런 그에게 배우 지망생 재원이 찾아오지요. 상원의 조카 지수도 배우 지망생입니다. 우연의 일치일까요? 지수는 유명 배우였던 상원에게 배우의 길에 대한 조언을 청합니다. 재원은 시인 홍의주에게 인생의 지혜를 듣고 싶어하구요. 그리하여 상원은 지수에게, 홍의주는 재원에게 기꺼이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자, 어떻습니까? 두 사람의 하루는 다른듯 하지만 비슷하게 보이지 않은가요? 초심자(novice)는 권위자(expert)를 찾아가서 가르침을 청합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의 하루'는 각각 배우와 시인이라는 예술가가 들려주는 마스터 클래스(Master class) 같은 인상을 줍니다.   이 영화에서 상원의 캐릭터에는 그 역을 연기하는 배우 김민희의 이야기가, 시인 홍의주의 모습에는 감독인 홍상수가 겹쳐 보이...

인트로덕션(Introduction, 2021): 홍상수의 흥미로운 MZ 세대 탐구

    영화가 시작되면 중년의 한 남자가 모니터 앞에서 간절한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남자는 신에게 자신의 전 재산을 고아원에 기부하겠다고 약속합니다. 나름 숭고한 봉헌의 기도인데, 첫 장면에서부터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졌습니다. 그래요. 홍상수의 영화 속 주인공들은 스스로를 진실하다고 생각하고, 삶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그런데 관객은 주인공의 이율배반적인 모습을 보게 되지요. 그 균열의 지점이 나에게는 늘 흥미롭습니다. 홍상수가  '인트로덕션(Introduction, 2021)' 에서 보여줄 등장인물들의 삶 속 균열은 과연 어떤 것일까요?   영화는 세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첫 번째 이야기는 영화의 제목 'Introduction'처럼 앞으로 등장할 인물들에 대한 '도입부' 라고 할 수 있겠네요. 자신의 전 재산을 고아원에게 기부하겠다고 기도한 중년의 남자는 한의사입니다. 그에게는 청년이 된 아들 영호가 있지요. 영호는 아주 오랜만에 아버지를 찾은 것처럼 보입니다. 영호는 여자 친구 주원에게 잠깐 다녀오겠다고 말하고는 한의원에 왔습니다. 영호는 별로 내키지 않는 기색이 역력하지요. 따로 떨어져 사는 아들은 갑작스런 아버지의 호출을 받고 한의원에 앉아있습니다. 그런데 이 아버지, 좀 이상합니다. 그는 급한 환자도 아닌 지인을 먼저 만나고 아들에게는 그냥 기다리라고 말합니다. 아버지의 지인은 유명한 배우(기주봉 분)입니다. 아버지는 지인에게 침을 놓아주고는, 영호를 만나는 대신에 자신의 방으로 가버립니다. 그렇게 1부는 영호가 아버지를 기다리는 장면에서 끝납니다.   2부에서는 영호의 여자 친구 주원의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주원은 패션 공부를 하겠다면서 이제 막 독일로 유학을 왔죠. 지원은 엄마에게 껌딱지처럼 붙어있습니다. 엄마는 딸에게 자신의 화가 친구(김민희 분)를 소개해 주려고 합니다. 화가 친구가 당분간 딸의 숙소를 제공해 주기로 했거든요. 영화의 제목 'Introd...

동심초(Dongsimcho, 1959): 사랑과 돈

    전쟁미망인 숙희(최은희 분)에게는 대학생 딸 경희(엄앵란 분)가 있습니다. 둘은 얼핏 보기엔 엄마와 딸 사이라기 보다는, 자매처럼 보일 정도입니다. 세상의 풍파가 비껴간 것처럼 보이는 고운 외모의 미망인에게는 고민이 있습니다. 사람이 살면서 가장 괴로운 것이 무엇일까요? 네, '돈'입니다. 숙희는 양장점을 하다가 큰 빚을 지고 가게를 정리한 상태이지요. 그런 숙희에게 출판사 전무 상규(김진규 분)는 숙희의 빚을 청산할 수 있게 돈을 빌려줍니다. 어려운 때에 자신을 도와준 상규에게 숙희는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니, 그보다는 사랑의 감정이겠지요. 그건 상규도 마찬가지입니다. 상규도 숙희를 나름 연모하는 것처럼 보여요. 상규와 숙희, 이 두 사람의 사랑은 이루어질 수 있을까요?   영화 '동심초(Dongsimcho, 1959)' 는 신상옥 감독 의 대표작에는 잘 언급되지 않는듯합니다. 그런데 이 영화에 관한 자료를 검색해 보니, 1959년에 개봉된 한국 영화 흥행 2위를 기록했더군요(출처: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 kmdb.or.kr). 영화를 보고 나서, 그럴만한 작품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동심초'에는 결코 낡지 않은 주제가 관통하고 있습니다. '사랑'입니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말입니다.   그렇다면 숙희와 상규의 사랑을 방해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우선 숙희의 처지를 좀 살펴보죠. 숙희의 큰 문제는 '돈'이에요. 숙희는 상규에게 빚을 지고 있어요. 그 돈은 그냥 받은 돈이 아닙니다. 갚아야 할 돈이지요. 물론 숙희의 어려운 처지를 잘 알고 있는 상규는 숙희에게 빚 독촉 같은 것은 하지 않아요. 숙희가 상규에게 느끼는 고마움은 사랑으로 이어집니다. 어찌 보면 좀 통속적이지 않나요? 사랑이란 감정이 '돈'이 가진 힘에서부터 시작된다는 점이 말이에요. 이 영화에서 '돈'은 중요한 내러티브...

여사장(A Female Boss, 1959): 로맨틱 코미디에 반영된 퇴행적 가부장제

    새벽에 잠이 오지 않아서 TV를 틀었습니다. 오래된 한국 영화가 나오네요. 한형모 감독의 영화 '여사장(A Female Boss, 1959)' 입니다. 한형모 감독은 전후 한국 영화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입니다. 그의 대표작 '운명의 손(1954)' 과 '자유부인(1956)' 에는 해방 이후의 정치적, 문화적 배경에 대한 풍부한 묘사로 가득 차 있어요. '여사장(1959)'도 그 연장선상에 있는 작품으로 볼 수 있겠군요.   이 영화는 원작 희곡이 있습니다. 원작자 김영수(1911-1977) 는 일제 강점기를 거쳐 1950년대와 1960년대까지 희곡과 시나리오, TV 드라마까지 활발히 활동했습니다. 김영수는 해방 직후에 자신이 쓴 희곡을 공연할 극단을 만들었습니다. '여사장 요안나(1948)' 도 그 시절에 쓴 희곡이지요. 이 희곡은 '김영수 희곡 ·시나리오 선집 2(출판사 연극과 인간)'에 실려있습니다. 나는 '여사장' 영화를 보고, 원작이 궁금해서 책을 주문해 보았습니다. 2007년에 펴낸 책이라 혹시 절판되지 않았을까 걱정했지요. 그런데 아주 멀쩡한 새책으로 잘 받을 수 있었어요. 아마 잘 안팔렸을 거에요. 이런 책은 관련 전공자들이나 볼 법한 책이지요. 그래도 사명감을 가지고 책을 펴낸 출판사가 참으로 대단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원작에 대한 설명은 이쯤 해두지요.   영화는 여사장 요안나가 공중전화 부스에서 용호와 우연히 만나는 장면에서부터 시작합니다. 화려한 양장 차림의 요안나(조미령 분)는 기다리는 뒷사람은 아랑곳하지 않고 길게 통화 중이지요. 짜증을 내던 뒷사람들이 하나둘 떠나고 용호만 남습니다. 용호는 요안나의 면전에 대고 싫은 소리를 하지요. 요안나가 용호를 무시하자, 용호는 요안나가 애지중지하는 강아지 마리오를 냅다 발로 차버립니다. 아주 고약한 첫 만남이지요? 대개의 로맨틱 코미디의 도입부가 그렇잖아요. 기분 나쁜 첫인...

Robot Dreams(2023): 관계의 본질에 질문을 던지는 애니메이션

    매일 같은 일상입니다. 그는 TV 속의 사람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죠. 식사 시간이 되면 찬장에 있는 냉동식품을 꺼내어서 전자레인지에 넣습니다. 푹신한 소파에 앉아서 그 음식을 먹구요. 문득 외로움이 몰려옵니다. 그는 자기 아파트 건너편 집을 바라봅니다. 그와 다른 점이 있다면, 거기에는 두 사람이 있습니다. 네, 그들은 연인입니다. 행복한 표정을 지으며 소파에 앉아있지요. 그는 외로움을 떨치기 위해서 얼른 리모컨을 집어서 TV를 켭니다. 이리저리 돌리다가, 신기한 물건에 눈길이 갑니다. 로봇이네요. 말하고 미소를 짓는 로봇 말입니다. 그는 주저하지 않고 로봇 조립 세트를 주문합니다.   Pablo Berger 감독의 애니메이션 영화 'Robot Dreams(2023)' 의 시작은 그러합니다. 이 애니메이션은 대사가 없어요. 감탄사와 효과음은 있지요. 아, 음악이 정말 좋습니다. 영화 내내 미국의 팝 그룹 Earth, Wind & Fire의 명곡 'September' 가 흐릅니다. 정말이지 잊을 수 없는 곡이에요. 영화를 보는 우리에게도, 무엇보다 영화 속 주인공인 Dog와 로봇에게도 말입니다. 주인공이 정말로 Dog가 맞냐고요? 맞아요. 주인공은 'Dog', 달리 이름이 없어요. 로봇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제 애니메이션은 개와 로봇의 이야기로 돌아갑니다.   개는 집으로 배달된 로봇 조립 세트를 완성합니다. 로봇은 눈을 뜨고 움직이기 시작하지요. 개와 로봇은 이제 일상을 함께 하는 둘도 없는 친구이자 동반자가 됩니다. 개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 Setember를 로봇이 좋아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아요. 함께 길을 걷고,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죠. 여름이 오자, 개는 로봇을 해변으로 데려갑니다. 수영도 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냅니다. 이제 집에 가야 할 시간, 그런데 로봇이 좀 이상합니다. 움직이질 않아요. 그래요, 금속으로 만들어진 로봇의 몸에 물이 들어가서 녹이 슬어...

2024년 1월에 본 영화들 리뷰: 오펜하이머(Oppenheimer, 2023) , 바비(Barbie, 2023), 마에스트로 번스타인(Maestro, 2023)

  오펜하이머(Oppenheimer, 2023), 감독 크리스토퍼 놀런(Christopher Nolan) 바비(Barbie, 2023), 감독 그레타 거윅(Greta Gerwig) 마에스트로 번스타인(Maestro, 2023), 감독 브래들리 쿠퍼(Bradley Cooper)   영화 '오펜하이머 (Oppenheimer, 2023) ' 는 러닝타임이 3시간이다. 그렇게 긴 영화가 지루할 수도 있겠다 싶지만, 영화는 그럴 틈을 주지 않는다. 이 영화는 원자폭탄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오펜하이머( J. Robert Oppenheimer, 1904-1967) 의 일대기를 다룬다. 감독 크리스토퍼 놀런은 정교하게 배치된 3개의 시간 축을 중심으로 영화를 짜나간다. 오펜하이머가 대학생 시절이었던 때부터 원자 폭탄 개발에 성공하기까지, 그리고 오펜하이머에게 오욕과 수치를 안겨준 1954년의 청문회, 오펜하이머의 반대자 루이스 스트로스(Lewis Lichtenstein Strauss)의 1959년 청문회가 그것이다. 놀런은 이렇게 시간대를 교차시켜 보여주는 데에 재미를 붙인 것 같기도 하다. '덩케르크(Dunkirk, 2017)' 에서도 그런 걸 써먹은 적이 있다.   그런 내러티브적 변형이 효과적이었는지 내게는 물음표로 남는다. 덧붙여 말하자면 '덩케르크'는 참으로 별로였고, 그나마 '오펜하이머'는 볼만 했다. '오펜하이머'는 실존 인물인 오펜하이머의 인생을 매우 효과적인 방식으로 축약해서 보여준다. 놀런은 그의 인생이 격변의 시대와 교차하는 지점을 통찰력 있게 포착한다. 원자폭탄 개발의 주도적 과학자로서 오펜하이머에게 영광의 월계관만 씌워진 것은 아니었다. 내연녀의 비극적 죽음, 매카시즘의 광풍 속에서 견뎌야 했던 사상 검증, 원폭 투하가 가져온 엄청난 살상에 대한 죄책감이 오펜하이머의 삶에 포개어져 있었다.   영화는 뛰어난 과학자가 겪어야 했던 인간적 불행이 '국가'...

가난과 중독의 서글픈 환(環), On the Bowery(1956)

    일용직 노동자 Ray Salyer는 이제 막 Bowery에 도착했다. 뉴욕의 맨해튼 Lower East Side에 자리한 그 거리는 술집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는 곳이다. 샐리어는 거리에서 우연히 마주친 술꾼 Gorman Hendricks와 술집으로 들어선다. 술에 취한 샐리어는 그날 밤에 거리에서 쓰러져 잠든다. 헨드릭스는 샐리어의 전 재산이라고 할 수 있는 헌옷이 든 가방을 몰래 훔친다. 돈 한 푼 없는 샐리어, 그는 막노동해서 번 돈을 또다시 술집에서 탕진한다. 그들의 삶은 Bowery 라는 거리와 밀접하게 이어져 있다. Lionel Rogosin(1924-2000) 감독의 다큐멘터리 'On the Bowery(1956)' 는 알콜 중독자들의 삶 속으로 들어간다.   술꾼들은 끊임없이 지껄이며, 계속해서 술을 들이킨다. 술집 안에서 그들은 나름대로 즐겁게 지낸다. 때로 술기운에 예기치 못한 주먹다짐이 이어지기도 한다. 술꾼들 가운데에는 여자들도 있다. 잘 곳이 마땅치 않은 많은 술꾼의 숙소는 당연히 길바닥이다. 노숙의 삶. 길에서 자고 일어난 이들은 눈을 뜨자마자 해장술을 들이킨다. 로고신의 카메라는 매우 건조하게 그들의 모습을 담는다. 그가 클로즈업해서 보여주는 길거리 술꾼들의 얼굴은 가난과 무기력으로 채워져 있다.   로고신은 뉴욕의 대표적 빈민가 Bowery에 사는 사람들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그는 그곳의 삶을 카메라로 담아내기로 결심했다. 사실 'On the Bowery'를 순전한 다큐로 보기는 어려운 면이 있다. 다큐 속에서 나오는 주요 인물인 샐리어와 헨드릭스는 로고신이 다큐 제작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알게 된 진짜 알코올 중독자들이다. 로고신은 그들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Bowery 거리의 삶을 그려낸다. 돈이 떨어진 샐리어가 끼니와 잠자리를 의탁하게 되는 교회는 실제 Bowery에 자리한 곳이다. 역설적이게도 술집과 알코올 중독자들이 넘쳐나는 Bowery에는 교회와 자선단체도...

아, 홍상수: 물안에서(In Water, 2023)

    오래전, 영화를 공부할 때의 일이다. 강의를 듣고 있는데, 어디선가 신경을 긁는듯한 소음이 계속 들려왔다. 나는 조용히 강의실 뒷문으로 나와서, 소리가 나는 곳을 찾아 나섰다. 영상원 본관 3층의 복도를 천천히 걸어가면서, 마침내 그 소리의 근원을 찾아냈다. 열린 교수 연구실 안쪽에, 희끗희끗한 머리의 한 남자가 이상한 악기를 천천히 두드리고 있었다. 홍상수였다. 그는 매우 지루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악기를 두들기던 그가 갑작스러운 나의 등장에 약간 당황했는지, 잠시 연주를 멈추었다. 나는 짜증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발걸음을 돌렸다. 동남아시아인지, 아프리카인지 원산지를 알 수 없는 악기 소리는 내가 다시 강의실에 도착할 무렵에는 들리지 않았다.   나는 그해 가을, 홍상수가 영상원 교수직을 그만두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사실 홍상수의 강의는 영화과 학생들에게 악명이 자자했다. 거의 강의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홍상수가 영상원을 떠날 무렵에는, 자신의 영화를 찍어야 한다는 당위성과 교수직 사이에서의 줄타기가 형편없이 어그러졌다. 나는 홍상수의 그 지치고 지루했던 표정을 아직도 기억한다. 그는 결국 떠날만한 때에 떠났다. 그건 학생들에게도, 그에게도 좋은 결정이었다.     어제, 홍상수의 2023년 작 영화 '물안에서'를 보았다. 러닝타임 61분의 이 영화는 대부분의 화면이 초점이 나간 상태(ouf of focus)로 흐릿하게 나온다. 처음에는 또렷했던 화면이 인물을 제대로 알아보기 어려운 상태로 나오니, 관객은 당황할 수밖에 없다. 그래도 영화 속 인물들의 이야기를 따라가는 데에는 별 어려움이 없다. 등장인물은 세 명. 배우로 활동하던 승모는 자신의 단편 영화를 찍겠다며 섬에 왔다. 승모와 동행한 사람은 촬영을 맡은 친구 상국, 연기를 할 여배우 남희이다. 승모는 아르바이트로 어렵게 모은 돈 300만 원을 들고 왔다. 그런데 정작 그는 시나리오조차 쓰지 않았다. 상국과 남희...

열정의 삶, Bill Cunningham New York(2010)

    "옷은 매일의 일상에서 생존하기 위한 갑옷(armor)같은 거죠. 그것이 사라진다면, 그건 문명이라고 할 수 없어요."   그렇게 말하는 이의 갑옷은 푸른색 프렌치 워크 자켓(French work jacket)과 투박한 면바지, 어깨에 둘러맨 작은 카메라 가방, 편한 스니커즈였다. 그는 뉴욕 패션 사진계의 거장 빌 커닝햄이었다. 늘 자전거를 타고 뉴욕 시내를 누비면서, 그가 좋아하는 의상을 입은 사람은 누구든 찍었다. 낮에는 거리에서, 밤에는 여러 파티와 행사장을 누볐다. 그렇게 그가 찍은 사진들은 뉴욕 타임즈에 'On the Street'과 'Evening Hours'라는 이름의 포토 에세이로 실렸다.   리처드 프레스( Richard Press)가 2010년에 만든 다큐 'Bill Cunningham New York'은 빌 커닝햄의 사적인 모습을 담았다. 그는 뉴욕 패션계의 유명인사들을 담는 사진 작가였지만, 그의 사생활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거의 없었다. 자신을 드러내고 싶지 않았던 커닝햄을 감독 리처드 프레스는 8년 동안 설득했고, 마침내 다큐를 찍을 수 있었다. 평생을 독신으로 살아온 그에게 감독이 다큐가 끝나갈 무렵에 묻는다. 누군가를 사랑해 본 적은 있냐고.   "그러니까, 내가 '게이(gay)'냐고 지금 묻는 거 맞아요?"   리처드 프레스가 'Yes'라고 외친다. 커닝햄의 대답은 이러했다.   "난 항상 일하느라 바빴어요. 밤낮없이 일했죠."   그랬다. 그의 머릿속에는 오직 '옷'만이 가득했다. 그는 많은 셀럽(celebrity)들을 자신의 카메라에 담았지만, 그들이 그의 마음에 드는 멋진 옷을 입었을 때만 찍었다. 카트린 드뇌브를 거리에서 보았지만 그는 찍지 않는다. 별로 흥미있는 옷을 입지 않았기 때문이란다. 자신은 파파라치(paparazzi)가 아니며, 시대의 패션을 기록...

영웅(Hero)의 서사 - 가수 임영웅(林英雄, Lim Young-woong) 이야기

    "가수 임영웅은 정말 자기 객관화를 못 하나 봐요. 아니, 콘서트를 열려면 드넓은 평야에서 하든가 해야지. 그런 작은 콘서트장이 웬 말이랍니까."    누군가 임영웅 콘서트 티켓 예매에 실패하고는, 그렇게 인터넷 댓글로 푸념을 늘어놓았다. 자기 객관화를 못 한다라는 말은, 자신의 공연을 보려는 관객 수를 너무 적게 가늠했다는 뜻이다. 전 국민 효도 테스트. 임영웅 티켓 예매와 관련된 글을 읽다 보면 이 가수의 팬덤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간접적으로나마 알 수 있다. 솔직히 나는 트로트에 그렇게 관심이 있는 사람은 아니다. 그런데도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이 가수가 어떻게 해서 지금의 엄청난 인기-그것이 중장년층에 한정된다 해도-를 얻게 되었는지 호기심이 일었기 때문이다.   임영웅은 단순히 노래 잘하는 트로트 가수를 넘어서 어르신들의 아이돌이 되어버렸다. 가수로서 노래를 잘하는 것은 물론이고, 호감이 가는 외모도 임영웅의 인기에 한몫한다. 하지만 이 가수가 구축한 견고한 팬덤을 찬찬히 살펴보고 있노라면, 거기에는 기존 가수들과는 다른 부분이 있음을 알게 된다. 바로 가수로서 성공하기까지의 '서사'이다. '영웅'이라는 이름부터가 남다르다. 그 이름은 예명이 아닌 본명이다. 어떤 면에서 이 가수의 성공 신화는 신화학자 조지프 캠벨(Joseph Campbell)이 말한 '영웅의 서사'와 비슷한 부분이 있다.   임영웅은 아주 어린 시절에 부친을 사고로 잃었다. 홀어머니 슬하에서 어렵게 성장한 그에게 세상은 결코 만만한 곳이 아니었다. 가수의 꿈을 가지고, 무명 가수로서 지낸 어려웠던 시절도 있었다. 그러던 그에게 일생일대의 기회가 온다. 그는 케이블 TV 방송국의 트로트 경연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다. 매주 펼쳐지는 노래 경연에서 시청자들은 가수 개개인들이 살아온 삶도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어째 쟤들은 하나같이 다 힘들게 살았나 모르겠다. 저런 데라도 나와서 정말...

서울, 그 희망과 상실의 노래

    서울 변두리 동네의 어느 작은 주점. 주인 여자는 마흔을 좀 넘겼을까? 얼굴은 곱상한데 어딘가 그늘이 져있다. 여자는 나이든 동네 영감들 추근대는 것도 일상이라는듯 눙치며 받아넘긴다. '은희네'라는 가게 이름은 여자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여자는 이 자리의 가게를 인수해서 그대로 장사를 하고 있다. 가게 내부의 인테리어는 낡고 촌스럽다. 군데 군데 얼룩이 있는 자주색 소파며, 터진 가죽 의자는 튀어나온 스펀지 조각도 보인다. 어쩌면 유행에 뒤처진 그런 촌스러움이 오히려 사람들을 복작거리게 만드는 것인지도 모른다. 가게에 오는 손님들 가운데에 주인 여자의 정확한 나이나 고향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내가 머릿속으로 상상해서 그려본 이 주점은 가수 방실이의 '서울 탱고(1990)' 에서 영감을 받았다. 방실이의 전성기를 대표하는 이 노래를 듣고 있노라면 노래 속 여인에 대한 애잔함 속에 1990년대 서울의 주변부 풍경이 선연히 겹친다. 나름의 꿈을 가지고 서울에 왔지만 인생의 불운이 겹쳐서 영락해버린 중년의 술집 여자. 이 여자에게 서울이란 도시는 부서진 꿈의 잔해 같은 곳인지도 모른다. 여자는 웃음과 술을 팔 뿐, 그 누구에게도 자신의 본심을 내 보이고 싶지 않다. 그러니 '아무것도 묻지 말고 술이나 드시고 가라' 고 부드럽게 말한다.   방실이의 '서울 탱고'가 보여주는 좌절과 관조의 정서는 이 노래를 향유하는 이들의 연령대와 겹친다. 중년의 청자들에게 인생은 더이상 이룰 꿈이 있거나 뭔가 대단한 행복이 있는 것이 아니다. 그저 받아들여야만 하는 것, 매일의 일상을 허덕이며 살아가기에 급급하다. 편안한 동네 술집에서 한잔 술에 그날의 피로를 잊는 것이 소소한 삶의 기쁨이 된다. '서울 탱고'에는 닳아버린 꿈의 자락을 붙잡고 살아가는 여자가 전면의 풍경에 등장한다. 그리고 거기에는 서울이라는 대도시에서 살아가는 익명의 소시민이 '손님'...

리치먼드 북쪽의 부자들(Rich Men North of Richmond)

  리치먼드 북쪽의 부자들 난 내 영혼을 갈아넣으면서 매일 죽도록 일하고 있지 쥐꼬리만한 월급을 받아가면서 말야 그 결과 내 인생이 이 모양 이 꼬라지인 거야 매일 지친 몸을 이끌고 집구석에 들어가고 있어 정말 빌어먹을 세상이야 나나 당신이나 다 같은 처지 아닌가 난 아침에 눈을 뜰 때마다 이게 현실이 아니길 바라 아, 하지만 절대 그럴 리가 없지 우린 말야 새 시대에 낡은 영혼으로 살고 있는 것 같아 리치먼드의 부자들은 모든 걸 손아귀에 쥐고 뒤흔들고 싶어해 우리의 생각, 우리가 하는 일 그 작자들은 우리가 결코 모를 거라 믿는 것 같아 그러나 우린 그 속셈을 알고 있지 우리의 빌어먹을 월급은 세금으로 족족 나가버리지 이게 다 리치먼드의 부자놈들 때문이라니까 정치하는 것들 말야 불쌍한 광부들이나 돌보라고 해 아, 물론 광부들도 생각하고 외딴 섬에 갇힌 누군가도 잊어서는 안돼 하느님, 먹을 게 없어서 길바닥에 널브러진 사람을 버리지 마세요 정부보조금 타먹으며 돼지처럼 살찐 인간들도 외면할 수는 없겠죠 만약에 말이야, 댁이 키 160cm에 136kg의 몸뚱이를 가졌다면 내가 낸 세금은 당신이 쓰레기 같은 초코과자를 사는 데에 퍼주면 안된다고 젊은 애들이 생때같은 목숨을 내던지고 있어 이 빌어먹을 나라가 계속 그들을 그렇게 몰아가고 있는 거야 번역: 푸른별   미국 버몬트주 출신의 컨트리 가수 Oliver Anthony 는 8월에 이 노래 'Rich Men North Of Richmond' 를 발표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은 이제 이 노래를 듣는다. 노래를 들은 후 당신의 반응은 다음 중 무엇인가? 1번: 부자를 싫어하는 걸 보니 전형적 좌파주의자의 노래군. 2번: 아냐. 이 노래는 퍼주기식 복지 정책을 비난하고 있어. 그러니 공화당 지지자들에게 어울리는 노래야. 3번: 글쎄. 뭔가 말하고 있기는 한데 그 메시지가 우파쪽인지 좌파쪽인지 모르겠는 걸. 4번: 노래에 정치적 신념 따위가 중요해? 그냥 마음에 들면 좋은 거고 안들면 별로지. 어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