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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공을 걷다, 챈스(Being There, 1979)

 

  평생을 정원사로 살아온 챈스(피터 셀라스 분)은 자신의 고용주가 죽자, 자산을 정리하는 변호사들로부터 퇴거 명령을 받는다. 이제까지 살아온 집 밖으로 나가본 적이 없는 챈스는 오직 TV로만 세상을 배워왔다. 백치에 가까운 챈스는 그렇게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되는데, 길에서 차에 부딪히는 사고를 당한다. 차주인 대부호의 아내 이브(셜리 맥클레인 분)는 부상당한 챈스를 집에 데려오고, 챈스는 이브의 대저택에서 치료를 위해 머무르게 된다. 이브의 남편 벤(멜빈 더글라스 분)은 엄청난 재력가로 정계의 막후 실력자이기도 하다. 벤은 챈스의 과묵하고 절도있는 태도를 보며 은퇴한 사업가로 생각하며 호감을 갖는다. 벤의 집에 대통령이 정기적인 모임을 위해 찾아온 날, 챈스는 경제 상황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짤막하게 말하는데 그것은 벤과 대통령에게 깊은 인상을 준다. 그로부터 챈스는 의문의 정계 실력자로 부상하며 TV 토크쇼까지 나가는 유명세를 탄다. 벤은 자신의 죽을 날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고 이브를 부탁하기까지 하는데, TV밖에 모르는 바보 챈스는 과연 이 갑작스러운 상황을 어떻게 헤쳐나갈 것인가...

  할 애쉬비 감독의 1979년작 '챈스(Being There)'는 TV만 보고 살아온 백치 정원사 챈스의 모험담을 그린 코디미 영화다. 이 영화에서 가장 빛나는 부분은 주인공 챈스 역을 맡은 피터 셀라스의 연기라고 할 수 있다. 언젠가 영문 자료를 읽다가 'deadpan humor'라는 단어를 본 적이 있는데 그것이 어떤 코미디 연기를 의미하는 것일까 궁금했었다. 챈스를 연기한 피터 셀라스의 연기를 보고나서야 그 무표정한 얼굴로 보여주는 웃음의 연기가 무엇인지를 알 수 있었다. 그 어떤 감정이나 생각도 드러내지 않는 챈스의 고요하면서도 침착한 얼굴은 그야말로 피터 셀라스만의 고유한, 세련된 연기 기교를 느낄 수 있는 부분이다. 그런 독보적인 연기를 보여준 피터 셀라스는 극단을 운영했던 배우 부모로부터 재능을 물려받았다. 그는 영화 '핑크 팬더(The Pink Panther, 1963)'의 클루소 탐정 역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영화 속 챈스의 말과 행동은 모두 TV에서 보고 들은 것에서 나온다. 그는 말하자면 '미디어 인간'이라고 할 수 있다. 영화는 챈스가 세상살이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백치임에도 불구하고 바깥 세상에서 이용당하고 버려지기는 커녕 유력 정재계 인사들이 두려워하는 인물로 부상하는 역설을 보여준다. 거기에 가장 큰 역할을 하는 것은 TV를 비롯한 언론 매체이다. 바로 그 점이 이 영화가 트럼프 정권 시기에 새롭게 부각되게 만들었는데, 트럼프란 인물이야말로 TV 리얼리티 쇼를 통해 쌓은 이미지로 궁극에는 대통령 자리까지 꿰어찬 입지전적인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인물에 대한 정확한 지식과 배경 보다는 미디어가 만들어낸 허상의 이미지가 어떤 가공할 영향력을 가지는지를 트럼프 정권은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그런 의미로 'Being There'은 정치인 트럼프의 출현을 예견하는 영화로 과거로부터 새롭게 끌어올려졌던 것이다. 

  이 영화는 폴란드 출신의 미국 작가 저지 콜신스키의 동명 소설을 바탕으로 만들었다. 콜신스키는 이 영화의 시나리오의 작업에 직접 참여했다. 그는 국제 펜클럽(PEN International)의 미국 지부 회장을 2번이나 맡을 정도로 유명인사였다. 그러나 그의 인생은 온갖 거짓말과 사기, 표절 혐의로 얼룩져 있었다. 자신의 유명세를 바탕으로 재벌가의 미망인과 결혼하기도 했던 그는 생의 마지막에 자신의 둘러싼 거짓들이 밝혀지면서 결국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선택을 하고 말았다. 그가 1970년에 발표한 'Being There'은 어떤 면에서는 그의 미국 생존기처럼 보인다. 대단한 입담과 거짓말로 미국에서 유명인사로 살아남은 그가 쓴 자전적 고백인 셈이다. 나는 적어도 이 작품만큼은 표절이 아닐 거라고 생각한다.

  'Being There'의 감독 할 애쉬비는 1970년대 미국 영화의 사회 비판적이고 독립 영화적인 경향을 보여주는 '뉴 아메리칸 시네마(New American Cinema)'의 인물로 분류된다. 그러나 그의 영화는 그런 사조로 정의할 수 없는 뭔가 기이하고 삐딱하게 치고 나가는 지점을 가지고 있다. 이 영화야말로 그런 할 애쉬비의 특징이 잘 드러난다. 영화의 엔딩 크레딧에 덧붙여진 피터 셀라스의 대사 엔지 장면이 그렇다. 감독의 고유한 발언으로서의 의미를 갖고 있음에도 이 마지막 부분은 영화의 완성도를 떨어뜨리는 흠집으로 남았다. 주연 배우 셀라스는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시하면서 애쉬비에게 제발 그 장면을 빼달라고 여러 번 요구했으나 애쉬비는 거절했다. 이 성깔 대단한 감독은 영화 경력의 부침을 겪으면서 약물 문제로 고생하기도 했다. 나에게는 잭 니콜슨이 주연한 그의 영화 '마지막 지령(The Last Detail, 1973)'이 꽤 인상깊었던 기억이 난다.

  어떤 영화 한 편을 본다는 것은 그 영화의 감독과 배우들을 둘러싼 이야기와 인생을 만나는 일이기도 하다. 이 영화의 원작자와 감독, 배우의 굴곡진 인생사에서 어쩌면 가장 정점은 이 영화에 드러나지 않는 한 명의 여자 배우일 것이다. 바로 피터 셀라스의 4번째 부인 린 프레데릭이다. 고혹적인 외모로 모델과 배우로 활동했던 린이 52세의 셀라스와 결혼할 때의 나이는 스물 셋이었다. 셀라스는 평소 심혈관 질환을 가지고 있었고, 거기에다 우울증으로 고생하기도 했다. 셀라스는 아내 린이 그런 자신의 정신적 버팀목이 되어주길 바랬다. 영화 'Being There'을 찍을 때 린은 셀라스의 촬영 현장을 늘 함께 해야만 했는데, 그것은 린 자신의 뜻이라기 보다는 남편의 요구 때문이었다. 린은 셀라스의 뜻에 따르느라 배우로서의 경력도 이어가지 못하고 있었다.

  그 이듬해인 1980년에 셀라스가 사망하자, 린은 셀라스의 유산 대부분을 상속 받는다. 그 액수는 오늘날로 환산하면 무려 300억원에 가까운 돈이었다. 문제는 셀라스에게는 전처 소생의 자녀 세 명이 있었는데 그들에게는 겨우 500만원씩의 재산만이 상속되었다는 데에 있었다. 보다 못한 셀라스의 지인들이 나서서 자녀들에게 유산을 좀 나누어 주라고 부탁했지만, 이 젊은 미망인은 단호히 거절했다. 단지 3년을 함께 한 남편의 재산 대부분을 가져가면서 유자녀에게는 한 푼도 내어주지 않은 린을 향해 언론과 사람들이 보내는 멸시와 조롱, 비난은 당연한 것이었다.

  결국 린은 조국 영국을 떠나 미국으로 가는데, 아마 할리우드에서 자신의 영화 경력을 이어가겠다는 바램에서였을 것이다. 그러나 미국이라고 해서 상황은 다르지 않았다. 할리우드에서 린은 출연 불가 배우였다. 린은 자신의 직업적 경력을 더이상 이어갈 수 없었고, 이후로도 2번의 결혼과 이혼을 이어가다 서른 아홉의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떴다. 사인은 명백히 드러나지 않았지만 알콜 중독과 연관이 있다는 이야기들이 흘러나왔다. 린은 중독에서 벗어나기 위해 여러 번의 재활 치료를 받았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돈과 인생을 맞바꾼 셈이었다.

  영화 'Being There'의 마지막 장면은 참으로 기이하다. 벤의 장례식에 참석한 챈스는 중간에 자리를 떠서 근처의 호수를 거닌다. 그가 호수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데, 그는 물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그 위를 '걷는다'. 이 수수께끼 같은 마지막 장면은 챈스라는 인물의 인생 자체가 꿈과 같은 허상이었음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나에게는 그 장면이 챈스를 연기한 피터 셀라스의 마지막 여자 린 프레데릭의 인생과도 묘하게 겹쳐 보인다. 주체할 수도 없는 엄청난 돈에 집착했고, 결국에는 그것에 질식해서 서서히 죽어갔던 삶. 더이상 아무 것도 이루지 못하고 허공 속으로 사라진 삶. 'Being There'은 그렇게 영화에 나오지 않은 한 여자의 비극적 인생의 한 장면을 감추어 둔 것처럼 보인다.          


*사진 출처: cinemacloc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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