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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골목 늙은 갱의 그날그날, 에디 코일의 친구들(The Friends of Eddie Coyle, 1973)

 

  '에디 코일의 친구들(The Friends Of Eddie Coyle, 1973)'은 조지 히긴스가 1970년에 발표한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주인공 에디 코일은 보스턴 갱들의 세계에서 그저 그런 뒷설거지나 하면서 중년의 나이에 접어든 총기 밀매업자다. 에디는 뜻하지 않게 말려든 주류 밀매 트럭 수송 건으로 이제 3번째 복역을 치뤄야할 상황에 처해 있다. 그에게 이런 역경을 선물한 친구는 자기 소유의 주점을 운영하는 딜런이다.

  에디는 모르고 있지만, 딜런은 자신의 혐의를 벗는 대신에 ATF(미국의 주류, 화기, 담배, 폭발물 단속국)요원 폴리의 정보원 노릇을 하고 있다. 친구에 대한 원망은 접어둔 에디는 어떻게든 형량을 줄이려고 애를 쓴다. 그에게는 아내와 세 아이들이 있다. 벌어놓은 돈도 없는데 감옥에 가게 되면 가족들은 거리에 나앉을 판이다. 그 와중에도 총기 밀매일은 계속 한다. 그는 신출내기 갱 재키 브라운에게 총기를 사들여서, 은행 강도 패거리 친구들에게 공급한다. 그 패거리들은 용의주도하게 연달아 강도 행각을 벌인다. 에디는 폴리에게 친구들의 신상 정보를 주는 댓가로 형량을 줄일 수 있을지 고민한다. 과연 에디는 가족의 곁에 남아서 가장 노릇을 할 수 있을까?

  이 영화의 제목에서 '친구들'이란 말은 정말로 어울리지 않는다. 에디는 딜런과 은행 강도 지미와 아티를 친구로 생각하지만, 그들은 에디를 친구로 생각하는 것 같지 않다. 딜런은 자신의 밀매 사업에 에디를 끌어들여서 범죄 혐의를 덤탱이 씌워 놓고도 당당하다. 단속국 요원 정보원이 되어 빠져나갈 구멍을 찾은 딜런과는 달리, 에디는 감옥에서 몇 년을 썩을 판이다. 딜런에 대해 경찰에 불지도 않은 에디는 의리를 지켰다고 생각하지만, 혼자서 그 뒷감당을 하기가 버겁다. 냉혹한 강도짓을 벌이는 지미와 아티는 에디를 총기 공급책으로나 생각할 뿐이다.

  그러나 에디는 그들에 대해서도 인간적인 유대와 신뢰를 가지고 있다. 그 때문에 재판 형량을 줄이기 위한 정보원 노릇에 갈등한다. 딜런이 이미 정보를 넘긴지도 모르고 폴리와 거래하려던 에디의 기대는 빗나간다. 어쨌거나 친구들이 감옥에서 썩게 되었다는 사실에 슬픔과 연민을 느끼는 에디. 지역 갱 두목은 에디를 밀고자로 지목하고, 딜런에게 뒷처리를 맡긴다. 딜런은 늘 그런 일을 해왔다. 에디에게는 그렇게 죽음의 그림자가 서서히 다가온다.

  더러운 뒷골목의 갱으로 살았으면서도 에디에게는 인간적인 면모가 남아있다. 그는 친구들이 있었기에 그 세계에서 밥벌이하며 견뎠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에디의 그런 인간적 사고방식은 냉혹한 세계와 어울리지 않는다. 그는 그 세계를 이루는 소모품일 뿐이다. 그 세계의 강렬한 통찰력을 보여주는 인물은 딜런이다. 치밀하고 냉정하게 자신의 위치를 선점하고, 주변인들을 철처하게 이용한다. 그가 보스의 명령을 실행하는 데에는 아무런 주저함이 없다. 에디는 자신의 친구들과 그 세계를 잘 안다고 생각했지만, 그는 무대 앞의 꼭두각시였을 뿐이다. 딜런과 폴리 같은 무대 뒤의 조종자들은 에디를 필요에 따라 써먹는다. 리처드 조던이 분한 단속국 요원 폴리는 갱들과 별로 다를 게 없어 보인다. 그가 보여주는 간계는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라면 정보원의 범죄 행위도 눈감아 주는 것도 포함된다. 

  에디 역을 연기한 로버트 미첨은 어깨 처진, 삶에 대한 별다른 기대도 없는, 그저 자신과 가족의 안위만이 걱정스러울 따름인 늙은 갱을 담담히 연기한다. '에디 코일의 친구들'은 그의 후반기 연기 경력에서 가장 빛나고 주목할만한 작품이다. 그는 보스턴 갱들의 말투를 익히기 위해 실제로 보스턴 갱 조직의 일원과 만남을 가졌다. 그걸 가능하게 한 것은 영화 속 은행 강도 지미를 연기한 알렉스 로코였다. 로코는 영화 '대부(1972)'에서 콜레오네와 대립하는 모 그린 역을 연기한 배우이기도 하다. 그는 젊은 시절 실제로 보스턴 갱 단원으로 조직의 싸움에 살인을 저지른 범죄 경력도 있다. 그래서였을까? 영화에서 알렉스 로코의 은행 강도 역할은 한 치의 빈틈도 없다. 그 어떤 표정 변화도 없는 냉혈한 딜런을 연기한 피터 보일의 연기도 좋다. 딜런은 에디 코일의 친구가 아니라 그를 기만하고 착취하는 악한이다. 피터 보일은 평범한 얼굴로 나누는 일상적이고 시시한 대화 속에 매서운 칼날을 숨긴 인물을 연기한다.

  재즈 피아니스트이자 작곡자인 데이브 그루신이 맡은 음악은 그다지 인상적이지 않다. 어둡고 단조로운 영화의 결을 오히려 흐트러지게 만드는 튀는 음악처럼 들린다. 감독 피터 예이츠의 연출 또한 특출난 것이 없다. 어쩌면 뒷골목 삶의 고단함에 찌든 중년의 갱의 일상과 그가 맞이하게 될 비극을 그려내는 데에 있어 절제된 연출이야말로 가장 필요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에디 코일의 친구들'은 감독 자신이 뽑은 가장 좋아하는 영화이기도 하다.


*사진 출처: cineoutsider.com  에디 코일 역의 로버트 미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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