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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에 미친 남자를 통해 바라본 이란 사회, 소(Gaav, The Cow, 1969)

 

  남자는 소를 그 무엇보다 애지중지했다. 소를 씻기는 일이며, 소가 여물 먹는 것을 보는 일, 소와 함께 하는 그의 일상은 무척 행복했다. 남자가 키우는 암소는 새끼까지 가져서 살림밑천도 늘어날 예정이었다. 그런데 어느 하루 바깥 일을 보고 돌아왔더니, 소가 없어졌다. 마을 사람들은 남자의 소가 도망갔다고 했다. 남자는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상심이 너무도 큰 나머지, 남자는 소 우리에 머물며 식음을 전폐한다. 그러다 소 울음 소리를 내면서 여물까지 먹기 시작한다. 걱정이 되어서 찾아온 마을 사람들에게 자신은 '하산'이라는 사람이 아니라 '소'라고 말한다... 이거 어디서 본 이야기 같다. 카프카의 '변신' 이야기 아닌가? 주인공 그레고르 잠자는 자신이 어느 날 벌레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다리우스 메흐르지(Dariush Mehrjui) 감독의 1969년작 '소(The Cow)'는 아끼던 소를 잃고 미쳐버려서 자신이 소가 되었다고 생각하는 남자의 이야기를 그린다.

  영화는 문명 세계와 단절된 외딴 마을을 배경으로 한다. 영화의 시작은 마을의 바보를 마구 때리고 놀리는 장면에서부터이다. 바보라는 이유로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으며 온갖 비웃음과 학대의 대상이 되는데, 마을 사람들 가운데 동정과 연민을 보이는 이는 별로 없다. 이런 마을 사람들이 두려워 하는 불한당들이 있는데, 그들은 마을을 수시로 침입해서 가축들을 훔쳐가는 도적질을 한다. 하산은 자신의 소가 도망갔다는 마을 사람들의 말을 믿지 않는다. 여전히 우리에 소가 있다고 믿으며, 그 소를 훔치려는 도적놈들을 막으려고 지붕에 올라가서 지낸다. 그러나 사실 소는 하산이 집을 비운 사이에 갑자기 피를 토하고 죽었고, 마을 사람들은 충격을 받을 하산을 염려해서 우물가에 묻어버렸다. 시간이 지나면 마음의 안정을 찾을 거라는 예상과는 달리, 하산은 미쳐버린다.

  영화의 시나리오를 쓴 골람 후세인 사에디는 독특한 이력을 지닌 작가이다. 아제르바이잔 지역에서 출생한 그는 고향땅이 이란에 편입되면서 어쩔 수 없이 이란 사람이 되었다. 정신과 의사이기도 했던 그는 맑시스트였다. 이 영화가 서구의 평론가들에게 눈길을 끈 것은 하산이 소가 되었다고 믿고 소처럼 행동하는 부분이었다. 이를 맑스의 소외 이론을 적용해서 인간이 주변 여건에 의해 자신의 본성을 잃어가는 과정을 그려냈다고 보는 시각이 있다. 사에디의 지적 배경을 감안하면 충분히 납득이 된다. 그러나 영화 '소'를 단순히 인간 소외의 현상으로만 해석하는 것은 이 영화가 지닌 다층성을 외면하는 일이다.

  '소'를 만든 감독 다리우스 메흐르지는 이란의 중산층 출신으로 미국 UCLA에서 영화를 전공했다. 그런 그가 고국에 돌아와서 바라본 이란 사람들은 고립되고 낙후된, 종교적 신념과 바깥 세상에 대한 두려움으로 뭉쳐있었다. 영화 속에서 마을 사람들은 모든 안좋은 일들을 마을 바깥에 존재하는 도적들 때문이라고 여긴다. 늘 도적들 탓만 했던 그들의 문제 해결 능력은 소가 되었다고 믿는 하산의 광기를 대하는 데에서 여지없이 드러난다. 치렁치렁한 검은 차도르를 입은 마을 여자들은 신의 노여움 탓이라며 자숙하며 회개하는 종교의식을 행한다. 그것은 실제로 메흐르지와 사에디가 이란의 시골마을을 탐방하는 과정에서 목격한 일이기도 했다. 우리나라로 치면 무당의 굿에 해당하는 그런 종교의식은 마치 민속지학의 한 장면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종교의식으로도 하산의 광기는 낫지 않는다. 마을 촌장은 하산을 근처 도시의 병원에 데려가기로 하는데, 하산이 미쳐 날뛰자 온몸을 줄로 묶어서 소처럼 끌고 간다.

  "가, 가라구, 이 짐승아!"

  하산이 끌려가는 것을 거부하자, 촌장은 채찍질을 하며 그렇게 외친다. 마을의 바보에게 행해졌던 잔인함이 이제는 소가 되어버린 하산에게 똑깥이 반복된다. 이해할 수 없고, 걸리적 거리는 골칫덩이를 대하는 이 마을 사람들의 비합리적이고 잔혹한 면모가 드러나는 순간이다. 하산은 스스로 진흙탕에 몸을 던져 죽음을 택한다. 인간으로도, 소로도, 그는 마을 사람들과 같이 살 수 없었다. 하산의 비극은 훗날 이란 혁명으로 신정국가가 되어버린 이란의 폐쇄성과도 맞닿아 있다. 외부 세계와 차단된 채, 종교적 신념을 우선에 두고 인간 본연의 본성을 잃어가게 만드는 이란 사회의 모습이 그러했기 때문이다. 역설적이게도 이 영화는 이란 혁명으로 국가 최고 지도자가 된 아야톨라 호메이니의 극찬을 받으면서 이란 영화 산업의 존속을 보장하게 만들었다. 다리우스 메흐르지는 1980년대 초반에 이란 영화 산업의 선봉에 서면서 '어용 영화인'이란 비판까지 받기도 했다.

  영화 '소'는 서구식 영화 교육을 받은 영화인이 바라본 이란의 현실을 그려냈다. 영화의 시나리오를 쓴 작가 사에디의 독창적 발상과 더불어 이 영화는 음악도 매력적이다. 토착 악기로 연주되는 음악은 영화의 분위기를 절묘하게 표현하는데, 영화의 음악을 담당한 호르모즈 파르핫도 UCLA에서 공부한 음악가였다. 당시 이란의 예술 엘리트들이 모여서 만든 이 영화는 보편성과 이국성이 공존한다. 영화는 소에 미친 남자의 이야기를 통해 인간 본성의 소외를 다루었을 뿐만 아니라, 다가올 이란 사회의 어두움과 혼란까지 담아내고 있다.           


*사진 출처: highonfilm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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