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는 영화 '슈가랜드 특급(The Sugarland Express, 1974)'의 결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1960년대 후반에서 1970년대의 미국 영화를 관통하는 소재가 있다면 아마도 '자동차'일 것이다. 몬티 헬만의 '자유의
이차선(Two-Lane Blacktop, 1971)', 조지 루카스의 '청춘 낙서(American Graffiti,
1973)'에서 차는 영화를 지배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그 시절의 자동차가 등장하는 영화들을 보면, 그것이 미국인들에게 자유와
정체성 그 자체를 상징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스티븐 스필버그의 장편 영화 데뷔작 '슈가랜드 특급(The Sugarland
Express, 1974)'에도 차가 나온다. 경찰차 박람회장이라고 할 정도로 엄청나게 많은 기동순찰대 차량이 등장한다.
그뿐인가? 경찰을 인질로 삼은 납치범들을 취재하기 위한 방송용 차량, 그들을 구경하기 위해 나온 시민들의 차도 있다. 스필버그는
아예 중고차 판매장을 불꽃튀는 총격전의 장소로 선택했다. 이 영화에는 차가 너무 많이 나온다. 주인공이 면회하러 온 동료 죄수
부모의 고물차를 타고 감옥에서 도주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서 마지막의 죽음까지, 영화는 차에서 시작해 차에서 끝난다.
절도 혐의로 감옥에 있다가 풀려난 루(골디 혼 분)는 어린 아들을 아동보호국에서 데려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는 출소를
4개월 앞둔 남편 클로비스(윌리엄 애서튼 분)를 찾아가 아이를 되찾아 와야 한다며 탈옥을 부추긴다. 차를 탈취해 경관을 인질로
잡고, 아들이 있는 슈가랜드로 향하는 이 어중띤 납치범 부부는 곧 경찰과 언론의 추적 대상이 된다. 그 와중에 보니와 클라이드의
마일드 버전 같은 납치범 부부와 인질 슬라이드 경관(마이클 삭스 분)은 마음을 터놓는 친구 사이처럼 되어버린다. 경찰 추적팀을
이끄는 온화하고 합리적인 태너 반장(벤 존슨 분)은 어떻게든 인명 피해를 막아보려고 애를 쓰지만, 어설픈 납치범 부부에게 파국의
시간은 점점 다가온다.
반짝반짝 빛나는 젊음과 아름다움을 지닌 루 역의 골디 혼은 영화 내내 안맞는 옷을 입은 것처럼 불편하고 버적거리는 소리를 낸다.
스물 일곱 살 초짜 감독 스필버그가 배우들의 연기 지도에 애를 먹었다는 티가 역력히 난다. 주로 코미디 영화에서 두각을
보여주었던 골디 혼에게 이 영화는 의외의 선택처럼 보이기도 한다. 어쨌든 골디 혼은 몸부림을 쳐가며 자신의 역을 해낸다. 4개월만
참으면 풀려날 남편을 꼬드겨 탈주범으로 만드는 루의 무모함과 충동적인 기질은 사악하게까지 보인다. 이 철없는 여자는 아이를
되찾아야 한다는 모성애에 사로잡힌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매우 이기적이며 분별력이 없는 자기애(自己愛)와 다를 바 없다. 도주
행각 중에도 골드 스탬프(Texas Gold Stamps, 텍사스 지역에서 발행되던 일종의 상업적 할인 쿠폰)를 악착같이
그러모으는 것이며, 외모 치장을 위해 헤어스프레이와 립스틱을 사는 모습은 루의 철없고 정신 나간 모습을 부각시킨다. 이 여자는
결국 남편을 죽음으로까지 내몬다. 아들이 입양된 집에 도착한 그들을 기다리는 것은 저격수들이다. 낌새를 눈치챈 슬라이드는 나가서는
안된다고 말리지만, 루는 클로비스에게 아들을 되찾아 오라고 성질을 피운다. 그리고 클로비스는 총에 맞아 죽는다.
1969년에 있었던 실제 사건 속의 아내 일라 페(Illa Fae)는 남편의 도주를 부추기지 않았다. 친정에 있는 아이들을 보러
가던 부부는 경찰의 예기치 않은 검문에 당황해서 경찰을 인질로 잡고 추격전을 벌이게 되었다. 남자는 아이들이 있는 여자의 부모
집에 도착하자마자 사살되었고, 여자는 그 자리에서 체포되었다. '슈가랜드 특급'은 실화의 많은 부분을 변형시키고 왜곡했다. 언론의
광적인 보도 행태, 범죄자를 미화하며 영웅과 동일시하는 군중 심리, 공권력을 대신해 자신들의 손으로 탈주범을 처단하겠다는
자경단의 광기, 그 모든 것들이 사건에 덧입혀졌다. 철저히 스필버그의 상업적인 감각으로 선별된 그런 장식 쪼가리들은 정교하게
구현된 차량 스턴트 장면에서 빛을 발한다. 여기에 문제의 발단이 된 영화 속 여성 루에게 비난과 책임을 몰아넣는 오명도 씌운다.
루가 보여주는 즉흥성, 무분별함, 비도덕성과 대비되는 캐릭터는 경찰 추격팀을 이끄는 태너 반장이다. 주로 서부극에서 연기한 벤
존슨이 보여주는 무게감 있고 강단 있는 18년 경력의 경찰 태너야말로 이 영화의 진정한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다. 재직 중에 단 한
명의 인명 피해도 없었다는 것을 자랑으로 삼는 그는 루와 클로비스의 목숨을 살려주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그가 보여주는 직업적
윤리와 강직함, 합리적인 태도, 온정과 연민을 가진 인간으로서의 모습은 미국이 지향하는 시민으로서의 이상을 보여준다. 그는 방향을
잃은 납치범들의 멘토에서 더 나아가 아버지의 역할을 대신하게 된다.
도주 중인 루에게 경찰은 루의 아버지를 데려가 무전으로 회유 방송을 하게 한다. 말할 기운도 없어 보이는 너무나 늙은 부친은
딸을 향해 무전 방송을 하지만, 치킨 사러 나간 딸은 듣지 못하고 차에 있던 슬라이드가 듣는다. 수갑을 찬 채로 구금 중이던 그는
돌아온 루에게 무전기를 꺼달라고 말한다. 더이상 아버지, 국가 권력으로 대변되는 목소리는 영향력을 끼치지 못한다. 그것은
1970년대의 미국의 모습과도 닮아있다. 반복되는 석유 파동, 달러화의 약세 속에서 이어진 경제 침체와 더불어 포드와 카터로
이어지는 정권은 유약한 모습만을 보여주었을 뿐이다. 미국의 중산층은 점점 보수 쪽으로 기운다. 허약해진 미국을 다시 되살릴 정치
권력, 지도자에 대한 열망은 레이건의 등장으로 이어졌다. 그의 선거 문구 'Let's Make America Great
Again'은 그러한 1970년대를 지나오면서 분출된 보수의 목소리였다.
영화의 마지막, 태너는 클로비스의 죽음을 확인하고 허리춤에서 피범벅이 된 권총을 빼낸다. 그 총은 클로비스가 슬라이드에게 뺏은
총이었다. 피를 닦아 낸 총을 슬라이드에게 건네주는 태너는 납치범들에게 동화된 경관에게 다시금 직업적 의무와 윤리를 일깨운다.
영화 초반부에 잡범을 검거해서 순찰차에 태우고 심문하는 모습에서 알 수 있었듯 슬라이드는 매우 깐깐하고 직업 의식이 투철한
경찰이다. 그런 슬라이드에게 태너는 권위와 인간적인 면모를 가진 대선배, 미국의 아버지로서 비춰진다. 그가 대변하는 모범적 부성은
미국의 보수적 가치와 정확히 부합한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스필버그의 영화 세계를 이루는 주축이 된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1998)'의 톰 행크스가 연기한 존 밀러 대위를 떠올려 보라. 그가 보여준 도덕성과 인간성은 라이언
일병에게 생의 귀감이 된다. 완벽한 부성에 대한 열망, 가족과 국가를 지키는 가부장의 서사, 이것은 '우주 전쟁(2005)'에서도
재현된다. 여기에서 톰 크루즈는 외계인에 맞서 딸을 지켜낸다. 이 영화 속 아버지 레이는 생활력이 없어서 이혼당한 별 볼일 없는
사람이지만, 딸을 구하기 위해서는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무사히 구해낸 딸을 아내에게 데려다 주고, 그는
집 밖에 서있다. 비록 딸을 생환시켰음에도, 그는 그 과정에서 손에 피를 묻혔고 그런 하자 있는 부성은 집으로 귀환할 수 없다.
그것은 존 포드의 '수색자(1956)'의 결말에서 집으로 들어가지 못하는 존 웨인을 떠올리게 만든다.
미국의 영화 평론가 폴린 카엘은 이 영화를 일컫어 '영화 역사상 가장 기념비적인 데뷔작'이라고 극찬했다. 나는 거기에 그다지
동의하지 않는다. 물론 이 영화는 아주 잘 만든 작품이다. 그러나 'well-made film'이 좋은 영화임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슈가랜드 특급'은 영화 속 황량한 텍사스 도로처럼 텅 비어있는 느낌을 준다. 그것은 어떤 면에서 1970년대 미국의
내면에 대한 묘사이기도 하다. 스필버그의 이 영화에는 깊이있는 성찰 대신에 철저히 상업적인 마인드와 보수적인 미국의 가치가
투영되어 있다. 1974년, 미국은 이제 자신들의 영화 산업적 역량을 극대화시킬 감독을 하나 얻은 참이었다. 번지르르한, 그렇지만
그 속은 공허한 데뷔작, '슈가랜드 특급'에는 그런 양면성이 존재한다.
*사진 출처: bostonhassl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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