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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리사 셰프티코의 봉인된 영화적 숨결, 상승(Восхождение, The Ascent, 1977)

 *이 글에는 영화 '상승(The Ascent, 1977)'의 결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는 영하 40도의 추위 속에서 강행되었다. 혹한의 벨라루시 무롬(Murom)에서의 촬영 기간 동안 감독과 제작진들은 추위 때문에 동상에 시달렸다. 배우들이 촬영을 위해 입은 옷은 한겨울의 칼바람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감독은 배우들 보다 옷을 껴입지 않았고, 허약해진 체력을 열정과 신념을 가지고 버텼다. 그 영화는 감독에게 무척 소중했다. 그도 그럴 것이 영화는 촬영 허가가 나기까지 무려 4년에 이르는 시간이 걸렸다. 그가 이전에 찍은 영화들은 검열 당국의 전적인 비호감을 샀다. 사회주의 리얼리즘과는 동떨어졌다는 이유에서였다. 어렵게 영화를 찍을 수 있게 되었지만, 촬영 내내 감독은 검열을 강제하는 힘들에 맞서 싸워야만 했다. 1977년에 소련의 여성 영화 감독 라리사 셰프티코(Larisa Shepitko)가 만든 '상승(Восхождение, The Ascent)'은 그렇게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상승'은 2차 대전의 동부 전선, 독소 전쟁의 격전지였던 벨라루시의 겨울을 배경으로 한다. 독일군에 밀려 퇴각하는 파르티잔들의 상태는 처참하다. 추위과 부상, 굶주림에 시달리는 부대원들과 민간인들은 절멸의 위기에 처한다. 두 명의 병사가 근처 민가에서 먹을 것을 가져올 임무를 부여받는다. 콜야와 소트니코프가 길을 나선다. 겨우 찾아낸 마을 촌장의 집에서 양 한 마리를 받아낸 그들은 돌아오는 길에 독일군의 습격을 받는다. 총상을 입은 소트니코프는 포로로 끌려가는 대신 자결을 택하려 하지만, 콜야의 저지로 목숨을 건진다. 도망친 그들은 아이들만 있는 민가에 숨어든다. 남편을 독일군에 잃은 세 아이들의 엄마 돔치카는 내키지 않지만 그들을 숨겨준다. 그러나 독일군의 수색으로 두 병사는 체포되고, 돔치카도 첩자라며 체포된다. 독일군 본부로 이송된 그들에게는 더욱 고통스러운 현실이 기다린다.

  셰프티코는 독소 전쟁의 격전지 벨라루시에서 벌어진 참상에 큰 충격을 받았다. 그래서 그것을 바탕으로 쓴 소설 '소트니코프'를 영화로 만들기로 결심했다. Goskino(소련 영화 촬영 국가 위원회)는 이 영화에 철저히 부정적이었다. 가장 큰 이유는 영화가 가진 종교적인 상징성 때문이었다. 셰프티코는 성서 속 예수의 마지막 수난과 순교를 주인공 소트니코프에 투영했다. 검열 당국은 위대한 애국전쟁이라고 부르는 전쟁에 종교적 신비주의가 덧입혀졌다며 강하게 비난했다. 그도 그럴 것이 셰프티코는 처음부터 소트니코프 역을 맡을 배우의 외모는 예수를 떠올리게 해야한다고 정했다. 당국이 추천한 배우들을 거부하고, 감독이 직접 뽑은 배우는 25살의 신인 보리스 플로트니코프였다. 순수하고 선량한 눈빛을 가진 이 배우의 얼굴에서 수난받는 십자가의 신의 아들을 떠올리는 것은 어렵지 않다.

  소트니코프는 독일군의 수사 책임자인 포트노프의 심문과 혹독한 고문을 받는다. 자신과 부대원들에 대한 일체의 정보를 주지 않겠다며 버티는 그에게 가장 중요한 가치는 '양심'이다. 벨라루시 출신으로 합창단 지휘자이기도 했던 부역자 포트노프의 눈에 소트니코프의 그런 선택은 가소로울 뿐이다. 살고 싶지 않으냐고, 네가 지키는 그 가치가 얼마나 대단한 것이냐고 조롱을 퍼붓는다. 죽음의 위협 앞에서 흔들리지 않았던 소트니코프와는 달리 콜야는 굴복한다. 그에게는 살아야 한다는 열망이 더 크다. 어쨌든 살아서 복수를 해야하지 않느냐고 소트니코프를 설득하지만 소용이 없다. 지하 감방에서 세 아이를 두고 온 돔치카, 촌장, 구두장이의 어린 딸, 두 병사는 죽음을 기다린다.

  셰프티코는 전쟁으로 인해 벌어지는 극한의 상황에서의 여러 인간의 모습을 보여준다. 양심을 지키는 소트니코프, 생존을 위해 배신을 택하는 콜야, 적극적으로 악에 동참하는 포트노프, 아무 이유없이 고통받는 민간인들, '상승'의 인물들은 거대한 수난 잔혹극을 연기한다. 소트니코프와 포트노프의 대화는 빌라도의 예수에 대한 심문을 떠올리게 하고, 콜야의 배신은 유다의 행적에 비유된다. 결국 독일군의 끄나풀이 되어 목숨을 연명하는 콜야는 수치심에 자살을 기도하지만, 그는 다시 비루한 삶 속에 들어간다. 셰프티코는 영화 속 인물들에 대한 도덕적 판단을 유보하고, 죽음을 앞둔 인물들의 선택의 과정에 집중한다. 얼굴을 부각하는 여러 클로즈업 쇼트를 통해 관객들은 각각의 인물들 내면을 들여다 볼 단서를 얻는다.

  이 영화의 제목은 우리말로 '고양(高揚)'으로 번역되었다. 그러나 나는 '상승'이라는 단어가 더 적합하다고 생각한다. 영화의 서사적 맥락에서 본다면 '비상(飛翔)'이 더 나은 대안일 수도 있다. 소트니코프는 교수형을 앞두고 두 팔을 벌려 날아갈듯한 자세를 취한다. 고결한 양심과 신념을 지닌 이들에게 죽음의 올가미는 결코 그들의 영혼을 추락시키지 못한다. 원작 소설의 제목 대신 '상승'이라는 제목을 권유한 것은 셰프티코의 남편 엘렘 클리모프였다. 그 또한 영화 감독으로 전쟁의 비극과 고통을 그린 영화 '컴 앤 씨(Иди и смотри, Come And See, 1985)'를 만들었다. 2차 대전 당시의 벨라루시에서 일어난 학살의 참상을 담았다는 점에서 부부의 영화들은 마치 연작처럼 보이기도 한다.

  1979년, 새 영화를 찍고 있었던 셰프티코는 촬영지에서 돌아오는 길에 트럭과의 충돌사고로 유명을 달리한다. 마흔 한 살의 나이였다. 그렇게 영화 '상승'은 셰프티코의 마지막 작품이 되었다. 흑백 영화 속에서 끝없이 펼쳐진 설원은 결코 순수한 아름다움으로 제시되지 않는다. 거부할 수 없는 엄혹한 전쟁의 현실, 그 속에서 바스라질 수 밖에 없는 인간의 약함과 유한성이 장대한 자연 풍광에 대비된다. 러시아의 유명한 현대 음악 작곡가 알프레드 슈니트케가 맡은 음악은 영화가 주는 종교적 메시지를 매우 압축적이고 간결하게 전달한다. 관객들은 이 영화를 통해 감독 라리사 셰프티코의 자유로운 영화적 숨결이 봉인되어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사진 출처: tcm.com   소트니코프 역의 보리스 플로트니코프


**사진 출처: ru.wikipedia.org    감독 라리사 셰프티코는 VGIK(러시아 국립 영화학교)에 들어가 알렉산더 도브첸코의 가르침을 받았다. 학생 시절에는 도브첸코의 영화들에서 배우로 활약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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