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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피에르 멜빌의 독특한 전쟁 영화, 바다의 침묵(Le Silence de la mer, The Silence of the Sea, 1949)

 

  미워해야할 이유가 있는 사람을 미워하는 일은 쉽다. 나치 점령기의 프랑스의 어느 시골 마을, 조카딸과 함께 사는 시골 노신사는 자신의 집을 독일군 장교의 숙소로 징발당한다. 뜻하지 않게 적과 동거하게 된 노인과 조카는 독일군 중위 베르너에게 한결같은 침묵으로 대한다. 그들의 침묵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베르너는 매일 저녁, 노인과 조카가 있는 거실 벽난로에서 대화가 아닌 독백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 노인과 조카의 단단한 침묵에 어느새 미세한 균열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그들은 자신들이 미워하는 점령군 장교가 매우 예의바른 사람이며, 예술적인 소양을 지닌 교양인임을 알게 된다. 비록 말로 이루어지는 그 어떤 대화도 없지만, 그들 사이에는 미묘한 감정의 교류가 생겨난다.

  장 피에르 멜빌(Jean-Pierre Melville)의 데뷔작 '바다의 침묵(The Silence of the Sea, 1949)'은 1942년에 출간된 작가 베르코스(Vercors)의 동명의 단편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레지스탕스 활동을 했던 멜빌은 자신이 첫 장편으로 반전 문학 작품을 선택했다. 이 짧은 소설에는 그 어떤 거친 폭력이나 살상의 이야기가 등장하지 않는다. 오직 노인과 조카의 내면 묘사와 독일군 장교의 혼잣말이 잔잔하게 펼쳐질 뿐이다. 멜빌은 소설의 그 단조로움과 고요함을 오로지 영상과 소리에 의지해서 풀어나간다. 영화의 서사 대부분이 노인의 집 거실 벽난로를 배경으로 이루어진다. 실제 작가의 집에서 이루어진 촬영은 그 비좁은 거실 공간을 다채롭게 제시하고 활용한다. 한쪽 다리가 불편한 장교의 발소리, 그가 거실 문을 두드리는 노크 소리, 벽난로의 장작을 뒤적거리는 소리, 등장 인물들의 손의 움직임, 그 모든 것이 영화의 느슨한 서사를 메꾼다. 오히려 약간 과하다 싶을 정도로 사용된 영화 음악이 귀에 거슬리게 들린다.

  작곡을 전공했다는 베르너는 프랑스의 문화와 예술에 대한 자신의 열렬한 애정을 고백한다. 그는 자신의 정체성을 점령군이 아니라, 프랑스와 독일의 우호적 결합을 촉진하는 매개자의 위치에 둔다. 그는 그것을 '결혼'이라는 상징적 은유로 표현한다. 프랑스와 독일의 결혼, 하나의 아름다운 유럽. 베르너가 설파하는 이상은 식민의 역사를 지닌 우리 나라의 관객에게는 전혀 낯설지 않다. 내선일체(内鮮一体), 즉 '일본과 조선은 한 몸이다'라는 일제 강점기 일제가 내세운 정책적 구호와 다를 것이 없다. 이 예의바른 독일군 장교는 노인과 조카딸에게 가진 인간적 호의, 소통에의 열망도 조심스럽게, 그리고 인내심을 가지고 호소한다. '미녀와 야수'의 이야기를 빌어 자신을 '야수'의 외양이 아니라, 그가 가진 부드러운 내면의 덕성을 보아달라고 설득한다. 그리고 그의 그런 바램은 물에 풀린 물감처럼 노인과 조카딸의 마음에 스며든다. 

  이 예의바르고 예술적 교양으로 무장한 점령군 장교를 미워하는 것은 영화 속 노인과 조카딸 뿐만 아니라 관객에게도 쉽지 않은 일이 된다. 그가 들려주는 바흐의 프렐류드 연주는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의 나라와 광기에 찬 독재자를 미워하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그를 미워할 수는 없다. 저항의 의미로서의 침묵은 무너지기 직전이다. 베르너가 파리로 떠나있던 기간 동안 노인과 조카딸은 그의 귀환을 기다리게 된다. 노인은 그의 소식이 궁금해져서 사령부 건물에까지 가본다. 그는 이미 돌아와 있었지만, 노인의 집에 가지 않는다. 파리에 체류하면서 만난 동료들을 통해 그는 나치가 저지른 유대인 학살 소식을 듣는다. 그 충격적인 소식에 더해, 그가 가진 전쟁에 대한 비현실적이고 낭만적인 관점은 동료들에 의해 혹독한 비판을 받는다. 베르너는 전쟁의 광기와 비인간성에 절망하고, 비로소 노인과 조카딸에게 했던 자신의 이야기의 허망함을 깨닫는다.

  멜빌은 원작 소설에는 없는 장면을 넣어서 명백한 반전(反戰)의 메시지를 전달한다. 베르너가 떠나는 날 아침, 노인은 자신이 책갈피에 끼워둔 종이를 베르너가 보게끔 놔둔다. '군인이 국가의 부도덕한 명령을 거부하는 것은 미덕이다'라는 문구는 독일군 장교에 대한 노인의 유일한 의사 표현이다. 그러나 그들의 작별은 늘 그랬듯 침묵 속에 이루어진다. 제목의 '바다'가 무엇을 뜻하는지는 불분명하다. 노인의 침묵이 상징하는 강력한 항전의 의지를 거대한 바다에 비유한 것일까? 그러나 침묵의 바다 아래에서는 다양한 감정과 생각들이 요동치며 들끓는다.

  실제로 나치에 반대하는 이들과 반전주의자들은 원작 소설을 쓴 Jean Bruller(Vercors는 필명이다)가 나치에 우호적인 소설을 쓴 거 아니냐며 거부감과 비난을 표명했다. 그 비판은 일정 부분 타당하다. 원작 소설의 베르너는 매우 양심적이며, 도덕적인 감수성을 가진 사람으로 묘사된다. 그런 인간적인 나치 장교에 대한 연민과 동정, 점령지 주민이 침략자에 대해 느끼는 열패감과 두려움, 적개심과 호기심이 뒤섞인 모호한 감정들... 전쟁은 눈에 드러나는 파괴와 잔학스런 범죄 뿐만이 아니라 그 상황에 처한 여러 주체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심리적이고 내면적인 갈등을 포함한다. 피와 학살이 드러나지 않고, 포성이 들리지 않는 독특한 전쟁 영화 '바다의 침묵'을 통해 멜빌은 극한의 상황과 마주한 인간의 복잡한 내면을 들여다 본다.   


*사진 출처: ny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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