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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는 어느 경찰의 초상, Poliţist, adjectiv(Police, Adjective, 2009)

 

  오래 전에 MBC에서 방영한 '경찰청 사람들'이란 프로그램이 있다. 1993년부터 1999년 초까지 방영되었던 이 프로그램은 실제 사건을 극화로 재구성해서 보여준다. '경찰청 사람들'이 독특했던 점은 요새 방영되고 있는 '이것은 실화다' 같은 재연 프로와는 달리, 실제 '경찰'들이 출연한다는 점이었다. 약간은 촌스럽고 강렬한 인트로 화면과 음악, 어색하지만 때론 좋은 연기력을 보여준 진짜 경찰들, 다양하고 극적인 실제 사건 이야기가 있어서 프로그램은 꽤나 인기가 있었다. 루마니아의 감독 코르넬리우 포룸보이우(Corneliu Porumboiu)의 2009년작 '경찰, 형용사(Police, Adjective)'에도 경찰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런데 2시간 가까운 러닝 타임 동안 긴박한 추격전도, 범인 검거도 없다. 통쾌하고 짜릿한 형사물을 생각하고 이 영화를 보려는 이들은 지루한 롱테이크와 그 어떤 별 다른 일도 일어나지 않는 영화에 실망할 것이다. 보면서 무언가를 먹고 있다면 그걸 영화가 나오는 화면에 내던져 버릴지도 모른다.

  올해 마흔 다섯인 코르넬리우 포룸보이우 감독은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하고 루마니아 국립 연극 영화학교에 들어가서 영화를 공부했다. 그는 자신이 나고 자란 Vaslui를 배경으로 영화들을 찍었는데, 그 이유는 그곳이 그에게 영화를 찍기에 가장 친숙하고 알맞은 장소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Cineuropa와의 인터뷰 참조). 역시 '경찰, 형용사'도 Vaslui에서 찍었다. 작은 도시의 경찰 크리스티는 잠복 근무 중이다. 대마초를 피우는 고등학생 세 명을 감시한다. 그의 일과는 잠복과 추적, 경찰서로 돌아와 근무 일지 쓰기, 퇴근 후 집으로 이어진다. 신혼인 그는 아내와 같이 밥 먹을 시간도 없다. 지방 검사와 서장은 고등학생들을 빨리 검거해 버리라고 닥달을 하지만, 크리스티는 체포를 주저한다. 루마니아에서 대마 소지와 흡연은 최대 7년형을 받을 수 있는 중범죄이다. 유럽의 다른 나라에서는 범죄가 아닌 행위로, 어린 학생들이 감옥에서 썩을 수 있다는 생각이 크리스티의 결정을 미루게 만든다.

  이 영화에서 포룸보이우는 롱테이크를 효과적으로 활용한다. 크리스티가 용의자 학생들을 감시하고 따라가는 장면은 일관성을 유지하는 호흡으로 끊이지 않고 이어진다. 크리스티는 그들이 피우고 버린 꽁초를 수집하고, 눈에 띄지 않게 뒤를 밟는다. 학생들이 다니는 학교, 그들의 집 앞에서 끈질기에 기다리고 차량 조회는 물론 누가 드나드는지 기록한다. 관객들은 이런 롱테이크를 응시하면서 크리스티와 잠복 근무를 함께 한다는 느낌을 받는다. 크리스티의 일상으로 들어온 관객들은 그가 경찰서에서 매일 부딪히는 짜증스럽고 지겨운 관료주의를 곤혹스럽게 바라보게 된다. 용의자 가족들의 출입국 기록과 전과 조회가 필요한 크리스티는 무사안일하고 고압적인 타 부서 직원들의 태도를 참아내야 한다. '바쁜 거 안 보여? 지금 못해준다고'말하며 틱틱거리는 여권 담당자, '친구와 약속이 있는데 이걸 지금 꼭 빨리 해야해?'하며 미루는 여직원, 크리스티가 느낄 답답함과 울분에 관객들도 이입된다.

  그렇게 밖에서 일에 치여서 집에 들어왔더니, 아내는 사랑 타령 가사의 유행가를 큰 소리로 계속 틀어놓고 있다. 밥 먹는데 너무 시끄러워서 소리 좀 줄여달라고 했더니, 못들은 건지 하기가 싫은 건지 소리는 여전히 크다. 관객도 견디기 힘든 소음과 같은 노래를 들으며, 이 인내심 있는 신혼의 남편은 꾸역꾸역 밥을 먹는다. 그 와중에도 음식 만들어준 아내에게 맛있다는 인사를 챙긴다. 아내가 듣고 있는 사랑 노래 가사는 크리스티에게 너무 유치하다. 사랑을 들판의 꽃과 바다에 떠있는 태양에 비유한 노래가 도무지 와닿지 않는다. 크리스티에게 단어가 만들어내는 이미지와 비유는 낯설고 이해하기 어렵다. 이 경찰관은 자신의 업무와 일상의 모든 것들을 직관적으로 파악하고 인식하는 사람이다.

  영화의 초반부에 비만한 동료 경찰이 크리스티의 풋살 동호회에 들어가고 싶다고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를 맘에 들어하지 않은 크리스티가 조깅이나 테니스를 하라고 하자, 그는 그런 운동은 싫증이 났다고 말한다. 크리스티는 그가 풋살을 잘 하지 못할 것이라며, 그런 사람과 같이 운동하고 싶지 않다고 거절한다. 화가 난 동료가 도대체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따져 묻는다. 크리스티는 조깅도 테니스도 잘 하지 못하는 사람은 다른 운동도 잘 해내지 못한다며, 그것이 자신의 판단 근거라고 잘라 말한다. 이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젊은 경찰은 자신에게 주어진 업무도 깊이있게 성찰하며 그 성찰을 바탕으로 결정을 내린다. 중산층 부모를 둔 고등학생들이 대마초를 좀 피운다고 해서 사회에 커다란 해악이 되지 않을 뿐더러, 그런 그들을 가두는 법은 개정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런 그의 생각은 경찰관이라는 직업에 어울리지 않으며, 실제적으로 법을 적용하는 영역에 있는 그의 주변 사람들과 불협화음을 일으킨다.

  영화의 마지막, 10분이 넘는 롱테이크는 체포를 하지 않고 미루는 크리스티가 서장에게 불려가 질책을 받는 장면이다. 서장은 양심에 꺼려져서 학생들을 체포하지 못하겠다고 말하는 크리스티에게 루마니아어 사전을 던져준다. '양심'과 '윤리', '경찰'이란 단어를 차례로 찾아서 큰소리로 낭독하게 한다. '경찰, 형용사'란 제목은 그렇게 루마니아어 사전에 쓰여있다. 명사와 동사로만 쓰이는 영어의 'police'와는 달리 루마니아어에는 '경찰의 업무를 수행하는' 이란 형용사로도 쓰인다. 서장은 크리스티가 생각하는 '양심'과 '경찰'의 의미를 공격하는 도구로 사전을 이용한다. 크리스티에게 사전에 적힌 추상적이고 상징적인 정의는 선뜻 와닿지 않는 이해하기 어려운 말이다. 그것은 그가 알아먹지 못하는 사랑 타령 유행가 가사와도 같다. 그 모든 언어적 정의는 결국 무용하며, 허섭쓰레기처럼 보인다. 서장은 법을 적용하는 '행동'과 '실천'이 경찰 업무의 본령임을 일갈한다.

  크리스티는 과연 '경찰'로 살아갈 수 있을까? 그가 수행해야할 경찰 업무는 '비판적 성찰'을 요구하지 않는다. 오히려 '생각'이란 것을 하게 될수록 크리스티는 현실의 경찰이란 직업에서 멀어질 가능성이 크다. 코르넬리우 포룸보이우는 젊은 경찰이 마주한 딜레마를 통해 '합리적 이성'을 배제한 기계적이고 무능한 관료주의의 폐해를 드러낸다. 이 정적(靜的)이며, 느리게 흘러가는 영화가 보여주는 현실 세계는 통렬하기 짝이 없다. '경찰, 형용사'가 여느 형사물과 달리 탁월한 지점이 있다면 바로 그 때문이다. 그렇게 포룸보이우가 그려낸 어느 경찰의 초상은 관객에게 결코 잊을 수 없는 인상을 남긴다.     


*사진 출처: stiri.botosani.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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