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타르 이오셀리아니(Otar Iosseliani)의 영화를 처음으로 본 것은 러시아 영화사 시간이었다. '노래하는 검은 새가
있었네(Once Upon a Time There Was a Singing Blackbird, 1970)'를 수업 시간에
보았었는데, 영화가 참 독특했다. 소련에서 저런 영화도 만들 수 있다니 놀랍다, 라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이오셀리아니 감독의
작품들을 찾아서 본 기억이 난다. 그의 작품들은 모두 개성이 넘쳤고, 생각할 거리들이 많았다. 그렇게 좋아했던 감독을 잊고
있다가, 오늘 '달의 연인들(Les Favoris de la lune, Favorites of the Moon)'을 보게 되었다.
그런데 프랑스 영화다. 그는 소련에서 찍었던 자신의 작품들이 연이은 검열로 냉대를 받자, 1982년에 프랑스로 건너갔다. '달의
연인들'은 그가 파리에 정착한지 얼마 되지 않은 시기에 만든 영화로, 어느 정도는 낯선 나라에 대한 관찰자적 시점이 들어가
있다.
영화는 시작부터 복잡하다. 시대가 왔다 갔다 하고, 컬러와 흑백이 교차된다. 서로 연관이 없는 인물들이
번갈아 보여진다. 이런 영화들을 만나면 제대로 봐야지 싶은 마음에 긴장하게 된다. 대개의 영화들은 20분 정도의 시간이 지나면
어느 정도 윤곽이 파악이 되는데, 이 영화는 그때까지도 내러티브의 조각들을 툭툭 던지기만 한다. 1) 첫 장면에서 도자기 접시가
깨진다. 그리고 이어지는 장면에서 도자기 공방의 모습이 비춰진다. 장인의 손에 의해 만들어진 세브르(유명한 도자기 산지였다)
도자기 세트는 단단한 나무 상자에 포장되어 어느 저택에 배송된다. 시대적 배경은 18세기이다. 2) 그 다음에는 19세기 화가의
공방이 나온다. 화가는 여인의 상반신 누드 초상화를 그리고 있는 중이다. 3)다음 장면의 시대적 배경은 현대, 현악 4중주단이
연습하고 있다. 다시 과거로 돌아온 영화는 흑백 화면에 귀족의 일상 생활을 비춰준다.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걸까? 좀처럼
이해가 되지 않는다 싶을 때, 영화는 1983년의 프랑스 파리로 돌아온다. 처음에 봤던 그 도자기와 여인의 초상화가 파리의
여러 사람들의 삶과 뒤엉켜 이야기가 진행된다. 마치 목공이 하나의 작품을 만들기 위해 부분 부분을 나누어 자르고 모양을 만들어
붙이는 것처럼 이오셀리아니도 처음에 던진 내러티브의 조각들을 차례대로 맞추어 나간다.
'달의 연인들'의
구조는 로버트 알트만의 '플레이어(The Player, 1992)'를 떠올리게 만드는 지점들이 있다. 각각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인물들이 우연히 만나고 그렇게 합쳐진 내러티브가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간다. 경매장에서 도자기 세트를 낙찰받은 이는 돈많은
무기판매상 라플라스의 아내이다. 라플라스는 폭발물 제조업자 구스타브와 함께 테러리스트들에게 폭탄을 판다. 구스타브는 라플라스의
아내와 바람을 피우고 있고, 구스타브의 여자 친구 클레르는 경찰 서장 뒤포르 파케와 몰래 만나고 있다. 파케는 경매장에서 여인의
초상화를 낙찰받은 사람이다. 이 초상화를 훔치는 도둑 부자(父子)가 있다. 도둑의 아내는 매춘부로 클레르의 아버지와 친구이다.
학교의 음악 선생인 클레르의 아버지는 마음에 들지 않는 공원 조각상을 사제 폭탄으로 날려 버린다. 여기에 펑크락 여자 가수,
노숙자들, 청소부들, 테러리스트들이 더 나온다. 이오셀리아니는 여러 등장 인물들의 대사와 행동을 기획하고 기가 막히게 조율해 내어
자신만의 이야기 작법을 보여준다.
영화 초반부에 인상적인 장면이 나온다. 흑백 화면으로 나왔던 귀족의 저택이
컬러로 바뀌면서, 포탄과 총소리가 들리는 가운데 무너진 집으로 말이 들어와 그릇을 밟아서 깨버린다. 그 장면 뒤에 시대적 배경이
현대의 프랑스로 바뀌는데, 그것은 시대적 변혁과 그에 따른 새로운 계급의 등장을 암시한다. 귀족이 쓰던 도자기 식기와 초상화는
현대의 부르주아의 소장품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도자기와 초상화들은 가치와 형태가 자꾸만 변해간다. 라플라스 부인이 낙찰받아
손님 접대용으로 과시하려던 그릇은 요리사의 실수로 깨져버린다. 경찰 서장의 집에 걸렸던 초상화는 도둑들의 칼질에 원래 캔버스
크기에서 줄어든다. 펑크락 가수 집에 있다가 다시 절도당한 그 그림의 크기는 나중에는 얼굴의 형상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의 크기가
된다. 고가의 깨진 도자기 그릇은 매춘부의 손에 들어가 복원되고, 그것은 도둑 아들의 재떨이로 전락한다. 오타르 이오셀리아니는
시간의 흐름에 따른 가치의 마멸과 변형을 도자기와 초상화의 이미지를 통해 재현한다.
'달의 연인들'은 중산층의
허위의식을 비판적으로 통찰하지만, 그 방식은 부드럽고 유머가 섞여있다. 무기상 라플라스 부부는 유력 인사들을 초대해서 저녁 식사를
대접하는데, 휠체어에 탄 아버지가 식당에 들어오자 다른 방으로 밀어서 내보낸다. 보여주고 싶지 않은 존재는 그렇게 은폐된다.
라플라스 부인은 도자기를 깬 요리사에게 모욕을 주지만, 현대의 요리사는 귀족의 하인이 아니다. 그는 깨진 그릇을 쓰레기통에 내던져
버리고 나간다. 귀족의 초상화를 낙찰받은 경찰 서장은 그림을 도둑맞았을 뿐만 아니라, 그에게는 예기치 못한 비극이 닥쳐온다.
포크레인으로 해체되는 귀족의 저택은 부르주아에 대한 이오셀리아니의 짖궃은 농담의 마지막 조각이 된다.
영화의
제목 '달의 연인들'은 셰익스피어의 희곡 '헨리 4세'에서 따온 것이다. "밤의 사람들은 낮의 아름다움을 훔치는 도둑이 아니라,
다이아나(달과 사냥, 숲의 여신)의 숲지기, 어둠의 신사, 달의 하인으로 불려야 합니다."는 문구가 영화의 시작 부분에 제시된다.
영화 속 다양한 인물들이 펼치는 무질서와 혼란, 절도와 파괴, 거짓말과 속임수는 서양 문화권에서의 달의 이미지와 부합한다.
그러나 오타르 이오셀리아니는 달과 그것에 속한 이들의 모습에서 생성의 힘과 기묘한 조화를 발견해 낸다. 영화의 마지막, 도둑의
아들은 자신의 방에서 장인처럼 열심히 자물쇠를 분해하며 절도 기술을 연마한다. 그는 결코 도자기 장인이나 화가처럼 아름다움을
창조하지는 못하지만, 영화는 '달의 사람들' 또한 우리가 사는 세계의 한부분으로 존재하고 기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사진 출처: films.oeil-ecr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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