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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티야지트 레이가 보여주는 도시와 여성 그리고 자본주의, 대도시(Mahanagar, The Big City, 1963)

 

*이 글에는 영화 '대도시(Mahanagar, The Big city, 1963)'의 결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너 그렇게 공부해봤자, 새언니처럼 부엌에나 있게 될 걸."

  퇴근하고 돌아온 오빠는 책상에 앉아있는 여동생에게 그렇게 빈정거린다. 그러나 부엌에만 있을 것 같았던 부인 아라티는 얼마 후 자신의 직업을 갖고 일을 하게 된다. 모든 것은 다 '돈' 때문이었다. 옆집에서 하루종일 틀어놓는 라디오 소리가 그대로 들리는 비좁고 낡은 주택, 은행원인 남편의 봉급만으로는 유지가 안되는 살림살이, 그도 그럴 것이 아라티는 연로한 시부모 봉양과 학교에 다니는 시누이의 학비까지 챙겨야 한다. 남편의 친구 부부가 맞벌이를 하고 있다는 말에, 아라티도 생활비에 보탬이 될까 싶어 일을 찾아 본다. 그래서 시작하게 된 일은 편물기 판매 영업. 말 그대로 아라티는 세일즈 우먼이 된다. 그러나 살림만 하던 며느리가 밖에 나가 일하는 것을 시어머니는 탐탁지 않게 생각하고, 시아버지는 아예 입을 닫고 반대의 뜻을 표명한다. 남편 수브라타도 조금씩 변해가는 아내의 모습이 영 낯설게 느껴진다. 급기야 남편은 자신이 부업을 할 테니 일을 그만두라고 아내에게 말한다. 이제 일에 재미를 붙인 아라티는 남편의 뜻에 따를까?

  사티야지트 레이(Satyajit Ray) 감독의 1963년작 '대도시(The Big City)'는 중산층 가정 주부가 직업을 갖게 되면서 겪는 갈등과 변화에 대한 이야기를 담는다. 원작은 Narendranath Mitra의 단편 'Abataranika'로 감독 자신이 시나리오 작업을 했다. 기혼 여성이 생활전선에 뛰어드는 것을 두고 남편과 시부모가 보이는 반응은 지금의 관객들에게는 케케묵은 구시대적 모습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50여년 전의 이 영화가 보여주는 자본주의와 대도시의 삶, 경제적인 문제로 인한 가족간의 갈등은 전혀 낡은 것이 아니다. 무엇보다 소심하고 의존적이었던 평범한 가정주부가 자신의 일을 갖게 되면서 보여주는 정체성과 심리적인 변화가 인상적이다. 아라티 역의 마드하비 무케르지(Madhabi Mukherjee)의 자연스럽고 호소력있는 연기는 영화를 반짝이게 만든다.

  첫출근 때 긴장하며 남편과 동행했던 아라티는 홀로 가가호호 문을 두드리고 편물기를 팔러 다닌다. 아라티가 상대하는 고객들은 보통의 가정집 주부들이 아니다. 값비싼 편물기를 구매할 수 있는 부유층들의 주거지가 아라티의 영업장소이다. 사티야지트 레이는 영화 속에서 대도시 캘커타의 다양한 계층의 주거지와 삶의 방식을 흥미롭게 조망한다. 아라티의 비좁고 어수선한 집과 대비되는 부유층의 화려하고 넓은 거실, 아라티의 동료 이디스의 자유롭게 트인 공간의 집, 시아버지가 방문하게 되는 성공한 사업가 제자의 서구적이고 호화로운 저택, 각각의 집들에는 급격하게 변화하는 1960년대 인도 사회의 모습들이 반영되어 있다. 특히 이 가운데 아라티의 동료 이디스의 집은 더욱 독특하게 보인다. 이디스는 영국계 인도인(Anglo-Indian)으로 인도인과는 외모도 다르고, 사용하는 언어도 벵골어가 아닌 영어를 쓴다. 아라티는 심한 감기에 걸려 아픈 이디스의 병문안을 가게 되는데, 그 집의 거실은 자유분방하고 자기 주장이 강한 이디스의 성격과도 닮아있다.

  아마도 이 영화에서 주인공인 아라티 만큼이나 주목받는 인물이 있다면 이디스일 것이다. 이디스는 직장 동료들을 대신해 편물기 판매에 따른 커미션을 두고 상사와 담판을 벌인다. 자신이 원하는 것에 대해 솔직하고 거침없이 이야기하는 이디스의 모습은 아라티에게 새로운 충격을 준다. 이디스가 아라티의 호의에 답례로 건네는 립스틱과 선글라스는 아라티의 삶에서 일어나는 점진적 변화를 상징한다. 온전히 자신의 힘으로 돈을 벌고, 집안의 생계에 기여할 수 있게 된 아라티는 '일하는 여성'으로서의 새로운 정체성을 만들어 나간다. 고객과의 만남에서 실직한 남편을 사업가로 둘러대며, 자신이 일하는 이유는 취미 삼아 재미로 해보는 것이라며 말하는 아라티. 이런 변화는 아라티가 대도시의 자본주의적 삶에 잘 적응하고 있으며, 그것에 적합한 사회성을 획득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아라티의 시아버지는 며느리의 그런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한다.

  전직 교사로 이제는 십자말풀이로 소일하는 시아버지 프리요고팔은 체면과 의무를 중시하는 고루한 구시대적 인물이다. 그는 잘 나가는 제자들을 찾아다니며 도움을 요청하는 데에 주저함이 없다. 안과의사인 제자에게는 비싼 안경을, 사업가 제자에게는 용돈을 받아낸다. 아들의 경제적 무능함을 과장하며 얻어내는 그런 물질적인 도움은 엄밀히 말하면 '구걸' 내지는 '뜯어내는 것'이지만, 그는 그것을 스승에 대한 제자들의 의무임을 역설한다. 흥미로운 것은 그의 제자들은 스승의 그런 요구를 인정하고 받아들인다는 점이다. 거기에서 관객들은 혈연과 지연, 학연이 얽혀 돌아가는 인도 사회의 한 단면을 보게 된다. 아라티의 남편 수브라타는 은행의 갑작스런 파산으로 실직하게 되는데, 아라티의 직장 상사 히망슈는 수브라타가 자신과 같은 고향 출신임을 알고 일자리를 주선해주겠다는 호의를 보인다.

  좋은 영업 실적과 성실함으로 인정받은 아라티는 상사에게 매니저 자리를 제안받는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아라티는 상사가 이디스를 불성실하다는 이유로 해고했음을 알게 된다. 이디스가 결근한 것이 감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아라티는 이디스의 해고가 부당하다며 상사에게 항의한다. 아라티는 히망슈가 이디스에 대해 갖고 있는 인종적 편견 때문에 모욕을 주고 해고한 것이라고 믿는다. 그에 대한 사과를 요구하지만, 히망슈는 자신의 권위에 도전하는 아라티를 용납할 수 없다. 아라티는 사표를 던지고 나온다. 이 장면은 당시 인도 사회의 숨겨진 갈등의 요소로서 영국계 인도인의 문제를 표출시킨다. 영국이 동인도 회사의 설립으로 인도로 진출한 이래, 영국계 인도인들은 불안정한 사회적 지위를 유지해 왔다. 아라티가 보여주는 분노는 그들이 받는 차별과 편견에 대한 사티야지트 레이의 명백한 정치적 발언이기도 하다.

  차별받고 소외된 이들과의 연대와 정의로운 분노. 아라티는 자신의 양심에 따르느라 직업적 경력과 기회를 포기하지만, 과연 현실적으로 그것은 얼마나 효용성이 있을까? 영화는 아라티의 선택을 인정하며 격려하는 남편과 함께 부부가 혼잡한 도시의 거리 속으로 사라지는 장면으로 끝난다. '이 큰 도시에 우리가 일할 자리가 없겠어요?'라고 아라티는 말한다. 영화의 이런 결말은 사티야지트 레이의 낙관주의를 보여준다. 그러나 그것은 매우 비현실적이다. 비정하고 냉혹한 도시의, 자본주의의 삶은 그곳에서 사는 이들을 돈의 추종자들, 물신숭배자들로 만들어 버린다. 생계에 대한 압박은 공정과 정의로움에 대한 요구보다 크고 절박하다. 그런 면에서 아라티의 선택은 순진하게까지 보인다. 개인의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선택만으로 과연 사회가 변화될 수 있는가? 이 부분에 대해 영화는 이상주의적이지만, 모호한 답변을 내놓으며 끝을 맺는다. 그런 한계를 가지고 있음에도 '대도시'의 주인공 아라티가 독립적이고 주체적인 인간으로 자본주의의 세계에서 살아나가려는 모습은 관객들에게 나름의 감동을 준다. 영화의 마지막, 아라티와 남편이 작은 점처럼 사라지는 대도시의 풍경 속에서 살고 있는 관객이라면 아마도 더욱 더 그런 감정을 느끼게 될지도 모른다.  


*사진 출처: criterio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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