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는 영화 '황금을 찾아라(1974)'의 결말이 들어 있습니다.
구 소련 시절 국영 영화사였던 Mosfilm은 인터넷 홈페이지와 유튜브 전용 채널에서 소장 영화들을 무료로 스트리밍 서비스를
하고 있다. 러시아 영화에 관심 있는 이들에게는 정말 좋은 일이지만, 문제는 제목 검색이 오직 러시아어로만 된다는 점이다.
거기에다 영어 자막이 제공되는 영화들은 한정되어 있다. 나름의 기준이 있다면, 영어 자막이 있고 모스필름에서 복원 작업을 한
영화들은 볼만하다고 할 수 있다. 복원 작업에는 많은 돈이 들어가기 때문에 작품성과 역사성이 있는 영화들이 엄격하게 선정되기
때문이다. 니키타 미할코프(Nikita Mikhalkov) 감독의 장편 영화 데뷔작 '황금을 찾아라(At Home Among
Strangers, 1974)'도 모스필름의 복원작이다. 소련 영화에서는 보기 드문 웨스턴 형식을 갖춘 이 영화는 미할코프의
감독으로서의 패기와 포부를 보여준다.
그런데 그 정도가 좀 지나쳤던 것 같다. 영화는 여러 인물들의 등장과 함께
좀처럼 이해가 되지 않는 이야기들이 산만하게 얽혀서 진행된다. 관객들은 1시간 반 가량의 러닝타임 동안 영화가 어떻게 굴러가는지
파악하느라 골머리를 썩는다. 1917년 볼셰비키 혁명 이후 러시아는 내전에 휩싸인다. '백군'이라 불리는 반 볼셰비키 세력들과
러시아 혁명 세력간의 치열하고 처절한 싸움이 이어졌다. 영화는 그 적백 내전 시기를 배경으로 한다. 내전으로 러시아 경제는 붕괴
상황에 직면했는데, 가장 큰 문제는 '식량 수급'이었다. 영화 초반부, 비밀 정보국 체카(Cheka, KGB의 전신)는 해외의
식량을 구입하기 위한 금괴를 모스크바로 수송하려고 한다. 수뇌부에서는 실로프를 주축으로 금괴 수송 작전을 지시한다. 그런데
실로프의 형제는 백군에 가담했다 처형당했기 때문에, 실로프는 정보국 내부에서 의심의 눈초리를 받고 있는 상황이다. 그 와중에
열차에 실린 금괴 가방은 강도들에게 탈취당하고, 호송하던 요원들은 실로프만 빼고 모두 죽는다. 적과의 내통 의심을 받고 체포되는
실로프, 그는 누명을 벗고 금괴를 찾아올 수 있을까?
영화는 흑백과 컬러 화면이 수시로 전환되는데, 이것이 과거와
현재 시점을 나누는 의미가 아니라 별다른 개연성이 없이 제시된다. 미할코프가 영화를 그렇게 찍은 이유는 간단했다. 한마디로
'컬러 필름이 모자라서'였다. 국가 영화 위원회에서는 예산상의 문제로 흑백 필름을 부분적으로 제공했다. 의외로 그렇게 섞어서
촬영된 영화는 나름의 영상 미학을 보여준다. 미할코프는 꽤나 '보여주기'에 공을 들인다. 항공 촬영으로는 체첸 지역의 광활한
자연을, 역동적인 핸드 헬드 기법으로 비좁은 실내 공간을 효과적으로 담아낸다. 거기에다 14살 때부터 배우로 활약했던 미할코프는
자기가 직접 주연도 했다. 강도들에게서 금괴를 빼앗는 도적단의 두목 브릴로프로 나온다. 러시아 민속음악과 엔리오 모리코네의
스파게티 웨스턴 선율의 변주같은 음악은 영화 내내 웅장하게 울려퍼진다. 이 소련 웨스턴은 뭔가 어설프면서도 독특하다.
미할코프 자신이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나온 스파게티 웨스턴에서 영향을 받아서 만들었다고 말한 이 영화는 분명 웨스턴의 러시아적
변용을 보여준다. 헐리우드 웨스턴이 미국 남북 전쟁 이후 공권력 공백기의 서부 지역을 배경으로 한다면, 소련 웨스턴은 적백 내전
시기의 우크라이나에서 이야기를 풀어 놓는다. 금괴가 실린 열차를 탈취하는 장면도 박진감 넘치게 재현된다. 그런데 이 소련 웨스턴의
문제는 바로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버무려야 한다는 데에서 발생한다. 실로프가 산적단에 잠입하는 동안 체카에서는 내부자의 소행으로
보이는 테러 행위가 발생한다. 분명 금괴 강도단과 연계되어 있다고 여겨지는 그 범인의 색출은 혁명이념을 더럽히는 불순분자의
처단이라는 측면이 부각된다. 영화 속에서 체카의 작전 수장 샤리체프가 레닌의 초상화를 응시하면서 항전의 의지를 다지는 장면이
나온다. 부르주아에게서 강탈한 금괴는 혁명의 대의에 쓰여야만 한다. 그러므로 그 금괴를 노리는 이들은 모두 적들이며
반동분자들이다. 결국 그들은 죽음으로 댓가를 치룬다.
당연히 미할코프가 연기한 산적 두목 브릴로프도 죽는다.
적들 가운데 산적단에 합류한 백군 장교 렘케는 살아남는데, 실로프는 그를 죽이지 않고 금괴와 함께 체카로 호송한다. 실로프가
실종된 줄 알았던 체카의 동료들은 실로프의 귀환에 기쁨을 감추지 못한다. 그때 홀로, 포승줄에 묶인 렘케의 모습이 대비된다. 그
장면은 패배자이며 조직력도 없는 백군과는 달리 동지애로 뭉친 볼셰비키의 우월성을 보여준다. '황금을 찾아라'에는 그런 이념적
측면에서의 강조 뿐만 아니라, 혁명 시기 이민족들을 통합해나가는 소련 공산당의 모습도 들어있다. 브릴로프가 이끄는 산적단은 다양한
민족 구성원들을 포함한다. 금괴를 찾는 실로프에게 협조하는 타타르인 카이윰의 존재가 그러하다.
미할코프는 이
영화 이후 제작된 일련의 영화들로 소련의 인기 감독으로 떠오른다. 영화 '황금을 찾아라'에서 관객들은 그의 영화적 재능과 함께
놀라운 정치적 감각을 발견하게 된다. 매우 정권친화적이었던 그는 소련 붕괴 이후에도 승승장구했다. 미할코프는 사업가로도 크나큰
성공을 거두었다. 와인 사업, 교육기관, 보석 가공 사업체까지 가진 미할코프는 러시아에서 대단한 재력가로 꼽힌다. 그의 첫
영화에서 금괴를 탐내는 이들은 혁명의 적으로 처단된다. 그런 결말과는 달리 자본주의 체제에서 성공한 미할코프의 생애는 기묘한
아이러니처럼 보인다.
*사진 출처: mysea.space 산적 두목 브릴로프를 연기한 감독 니키타 미할코프
댓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