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이혼이 다 나쁜 건 아니에요. 난 우리 부모님이 이혼한다고 했을 때 비로소 마음이 놓였어요."
부부의 첫째 딸은 부모의 이혼을 그렇게 회고했다. 매트 리들후버 감독의 2020년작 다큐 'My Darling Vivian'은
미국 컨트리 음악의 전설 조니 캐시(John R. Cash)의 숨겨진 가족사를 이야기한다. 조니 캐시와 두 번째 부인 준 카터와의
러브스토리는 영화 '앙코르(Walk the Line, 2005)'로 잘 알려져 있다. 그의 첫 번째 부인, 비비안 리베르토가
바로 이 다큐의 주인공이다. 그들 부부의 4명의 딸들은 부모의 순탄치 않았던 결혼 생활과 어머니의 인간적 모습에 대해서 증언한다.
유명인과 그 가족들의 실제 삶은 마냥 행복하기만 할까? 다큐가 들려주는 비비안의 삶은 결코 그렇지 않았다.
이탈리아 이민자 가정의 엄격한 분위기 속에서 자라난 17살의 비비안은 잘 생긴 공군의 구애를 받는다. 짧은 연애 기간 후, 독일로
파병된 남자는 3년 동안 엄청난 러브레터를 보낸다. 그리고 그가 귀환했을 때, 비비안은 그와 결혼한다. 세일즈맨으로 겨우 생계를
꾸려가던 여자의 남편은 노래에 대한 자신의 재능을 발견하고 가수가 된다. 뛰어난 가창력을 지닌 이 신인 가수는 곧 스타덤에
오른다. 엘비스 프레슬리와 같이 활약했고, 영화도 찍었으며, 꽉 짜인 공연 스케줄로 집에 들어오는 날은 거의 드물었다. 그 사이
여자는 4명의 딸들 엄마로 바쁘고, 외롭게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예기치 않은 삶의 변화. 숲 속에 지은
대저택에는 수시로 방울뱀과 야생동물이 출몰했다. 여자는 산탄총을 들고 방울뱀을 쏘아 죽이기도 했다. 극성 팬들은 집 주소를 알고
찾아와 밤낮으로 문을 두들겨 댔다. 내성적인 성격의 비비안에게 그러한 변화는 감당하기 힘든 것이었다. 거기에다 그 시대 유명인들이
거쳐가는 안좋은 인생 행로를 남편은 걸어가고 있었다. 약물 중독이었다. 각성제를 비롯한 여러 약물에 중독된 자니 캐시는
멕시코에서 약물을 밀반입하려다 체포된다. 언론에 그다지 잘 알려지지 않았던 비비안은 그런 남편을 만나기 위해 찾아갔다가 신문에
크게 사진이 실린다. 남편은 곧 풀려났지만, 그 일의 불똥은 엉뚱하게 튄다. 비비안의 외모를 두고 흑인이 분명하다며 온갖 추측이
쏟아진다.
이 다큐를 보는 이들은 사진과 영상으로 제시되는 비비안의 외모에서 흑인 혼혈의 느낌을 받을 수 밖에
없다. 그런데 비비안의 부모와 형제는 모두 백인이고 오직 비비안만이 그들과 구별되는 외모와 피부색을 가졌다. 공공연한 인종 차별이
이루어지고 있었던 1960년대, 유명 컨트리 가수의 부인이 흑인 혈통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켰다(비비안의
외증조모가 흑인 노예였다는 사실이 나중에 밝혀졌다). KKK단을 비롯해 극성 팬들은 비비안과 가족에게 협박을 가했고, 조니 캐시의
공연을 보이콧하기도 했다. 비비안은 그 모든 것과 홀로 맞서야 했다. 조니 캐시도 곤경에 처했지만, 그는 결혼 생활을 정리하는
것으로 해결책을 찾는다. 첫째 딸의 회고대로 정말로 좋은 이혼이었을까? 어쨌든 남자는 전부터 알고 지내던 컨트리 가수와 재혼해서
경력의 성공가도를 달린다. 비비안도 재혼하지만, 딸들의 부양은 전적으로 비비안의 몫이었다.
4명의 딸들은
신산스러웠던 어머니의 삶을 돌이켜 보며 회한에 젖는다. 그들은 어머니 비비안에게 전적인 연민만을 보이지 않는다. 불행했던 결혼
생활에 정서적인 문제로 어려움을 겪었던 비비안은 딸들에게 그렇게 충실한 엄마 노릇을 하지는 못했다. 아이들은 서로를 보살피며
컸고, 불안정한 엄마를 보면서 늘 마음을 졸여야 했다. 그럼에도 자신들의 엄마가 한 여성으로서 감내해야 했던 고통에 대해 깊은
공감을 표한다. 남편이 재혼한 여자가 전처의 딸들을 자신이 다 키우고 있다며 뻔뻔하게 언플할 때, 남편이 죽은 뒤에 성대하게
열렸던 추모 음악회에서 그 여자 준 카터가 조니 캐시의 유일한 동반자로 칭송받을 때, 비비안의 슬픔과 분노는 클 수 밖에 없었다.
비비안은 손자들을 보살피며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평범한 일반인의 삶을 살아가는 것에서 행복을 찾았다. 그렇게 조니 캐시의 첫
번째 아내는 공식적으로 잊혀졌다.
딸들이 어머니의 삶에 대한 공식적 복원에 적극적이었던 배경에는 영화
'앙코르'가 있었다. 사실과는 다른 영화 속 비비안에 대한 묘사는 딸들에게 분노를 일으켰다. 준 카터는 약물에 절은 조니 캐시를
구원한 음악적 동반자이며 연인으로 각인되었지만, 비비안은 정서불안의 철없는 아내로 비춰졌기 때문이었다. 더스틴 티틀은 비비안의
손자로 할머니의 삶을 복원하는 이 다큐에 프로듀서로 참여했다. 다큐는 유족들이 소장한 편지, 사진, 비디오 자료들을 통해 비비안
리베르토의 인간적 모습을 차근차근 되살려낸다. 이 다큐를 보는 관객들은 영화 '앙코르'의 원제 'Walk the Line'이
가진 역설에 대해서도 알게된다. 그것은 조니 캐시의 노래 제목 'I Walk the Line'에서 따온 것으로, 그 노래는 사실
비비안에 대한 연가로 작곡되었기 때문이다. 조니 캐시가 드러내고 싶어하지 않았던, 그래서 잊혀지길 바랬던 첫 번째 부인 비비안.
'My Darling Vivian'은 한 남자를 사랑했었고, 그 사랑 때문에 상처받았지만, 최선을 다해 살아갔던 한 여성의 삶에
숨결을 불어넣는다.
*사진 출처: en.wikipedi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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