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베를린 영화제 수상작 2편 리뷰:
Bad Luck Banging or Loony Porn(2021): 황금곰상(최우수 작품상), 루마니아의 라두 주드 감독
Wheel of Fortune and Fantasy(2021): 은곰상(심사위원 대상), 일본의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
올해 3월에 열린 베를린 영화제는 COVID-19 전염병으로 인해 비대면 온라인으로 진행되었다. 최우수 작품상은 루마니아의 라두
주드 감독의 'Bad Luck Banging or Loony Porn'이 차지했다. 라두 주드 감독은 2015년에
'Aferim!'으로 은곰상을 수상한 적이 있다(이 영화 리뷰글은 블로그에서 검색이 가능함). 역사극의 틀을 빌어
'Aferim!'에서 계급 갈등과 인종 차별에 대한 문제를 다루었던 감독은 발빠르게 전염병 시대의 이야기를 영화로 담아냈다. 영화
속 등장 인물들은 모두 마스크를 쓰고 나온다. 'Bad Luck Banging or Loony Porn'(이하 배드 럭으로
칭함)'은 전염병이 사람들의 일상과 삶에 미친 영향, 그리고 루마니아 사회에 대한 치열한 비판을 담고 있다. 관객에 따라서는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릴 수 있는 논쟁적인 작품이기도 하다.
심사위원 대상에 해당하는 은곰상은 최근 세계 영화계의 유망주로 떠오른 하마구치 류스케가 가져갔다. '우연과 상상(Wheel of
Fortune and Fantasy)'은 3개의 단편들로 이루어진 영화로 탄탄한 대본과 밀도있는 연출이 돋보인다. 이 영화를
보는 동안 홍상수를 떠올리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처음엔 홍상수 영화의 짝퉁 아닌가, 하는 냉소적인 시선으로 보았다. 그러나 두
번째와 세 번째 이야기에 이르러서는 하마구치 류스케가 홍상수의 세계를 통과해서 자신만의 구부러진 길을 보여주고 있음을 알게
된다. 작품성에 비해서 지나치게 융숭한 대접을 받았던 '아사코(Asako I & II, 2018)' 보다 내게는 한 열
배쯤 나은 작품으로 여겨졌다. 적어도 향후 몇 년 동안은 이 감독이 홍상수가 서구 비평가들에게 받았던 총애를 독차지하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영화 '배드 럭'은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 번째는 사건의 발단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부쿠레슈티의 중학교 역사 교사인
에미는 학교에서 쫓겨날 상황에 처해있다. 남편과의 성관계 장면을 찍은 동영상이 포르노 사이트에 퍼지게 된 것. 그 사실을 알게 된
학부모들은 분노하고, 학교 측에서는 긴급히 학부모 간담회를 소집한다. 에미는 회의 참석을 앞두고 불안한 마음으로 오전 시간을
보낸다. 카메라는 에미가 들르는 상점과 거리, 사람들의 모습을 꽤 비중있게 담는다. 전염병 때문에 거의 대부분 마스크를 쓴
사람들의 신경은 곤두서 있다. 작은 일에도 화를 내며, 입에서는 욕설이 끊이지 않는다. 번화한 상점가와 허물어진 폐건축물이
공존하는 수도 부쿠레슈티의 모습에서는 침체와 불안의 기운이 감지된다.
두 번째 부분은 루마니아어 단어와 그에 대한 해설을 무작위적으로 이어붙인 일종의 부록이다. 아주 다양한 단어들에 대한 감독
자신의 해석이라고 볼 수 있다. 루마니아의 독재자 차우세스쿠 이야기에서부터 인종 차별과 종교에 대한 비판, 포르노그래피에 대한
정의까지 콜라주처럼 배치되어 있다.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 부분에서는 주인공 에미가 참석한 학부모 회의의 풍경이다. 에미는
사생활을 존중해 달라며 자신의 입장을 방어하기 위해 온갖 지식으로 방어전을 펼친다. 학부모들 사이에서도 찬반 양론이 갈리는
가운데, 라두 주드는 친절하게 3개의 결말을 제공한다. 관객은 자신이 좋아하는 결말을 선택할 수 있다.
솔직히 이 영화가 최우수 작품상을 받을 만한가에 대해서 나는 회의적인 입장이다. 영화의 아이디어 자체는 좋다. 그러나 노골적이고
외설적인 성관계에 대한 묘사와 그에 대한 라두 주드의 도발적인 질문은 관객을 상당히 불편하게 만든다. '배드 럭'이 경계에 대한
성찰을 하게 만드는 것은 사실이다. 영화와 포르노그래피의 경계, 사생활과 공적인 삶의 경계가 그것이다. 거기에 개인(에미)과
집단(학부모)의 대립과 갈등에서 결정을 내리는 과정에 대한 공정성에 대한 질문도 들어간다. 루마니아 출신의 감독은 자신의 조국이
안고 있는 사회적, 역사적 문제도 통렬하게 비판한다. 영화가 가진 그러한 면모들에도 불구하고, '배드 럭'은 너무나 거칠고
잡스러워 품위가 없다.
그와는 달리 하마구치 류스케의 '우연과 상상'은 우아한 솜씨를 뽐낸다. 3개의 이야기가 묶인 이 영화는 인간 관계에 대한 성찰을
담고 있다. 첫 이야기인 '마법'은 남녀간의 사랑이란 감정에 대해 탐구한다. 모델 메이코는 친구 츠구미의 최근 연애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다. 이야기를 듣던 메이코는 친구의 새 남친 카즈가 자신의 전 애인이라는 것을 알아챈다. 2년 전에 헤어진 애인에
대한 감정이 되살아난 메이코는 카즈를 찾아간다. 카즈에게 자신과 츠구미 가운데 누구를 선택할 것이냐고 묻는 메이코. 기이한 우연의
삼각관계는 과연 어떻게 흘러갈까?
두 번째 이야기의 제목은 '열려진 문', 사소한 악의에서 시작된 장난은 뜻하지 않게 인생을 바꾸어 놓는다. 프랑스어 교수인
세가와는 유명한 작가이기도 하다. 주부 대학생 나오는 사사키와 내연 관계에 있다. 세가와의 수업에서 낙제한 사사키는 앙심을 품고,
나오에게 교수를 유혹하도록 부추긴다. 교수실로 찾아간 나오는 세가와가 쓴 소설의 외설적 장면을 낭독하면서 둘 사이에 이루어진
대화를 녹음한다. 비록 문이 열린 교수실 안에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지만, 치명적 실수가 두 사람의 인생을
뒤흔든다.
마지막 세 번째 이야기 '다시 한 번'은 두 중년 여성의 만남을 그린다. 20년 만에 고향에서 열린 고등학교 동창회에 참가한
나츠코는 꼭 만나고 싶은 친구가 있다. 그 친구를 만나지 못하고 돌아가는 나츠코, 우연히 역 앞에서 친구를 만난다. 친구는 자신의
집으로 초대하고, 둘은 서로 안부를 묻는다. 그러나 두 사람은 곧 서로가 전혀 알지 못하는 사이이며, 다른 사람으로 착각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집주인 아야는 성급히 가려는 나츠코를 붙잡는다. 그렇게 둘은 가슴에 묻은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게
된다.
그 세 가지 이야기 가운데 가장 좋았던 것은 '다시 한 번'이었다. 하마구치 류스케가 이야기를 직조하는 방식, 그리고 인물들의
감정을 찬찬히 풀어내는 연출의 힘이 잘 느껴졌다. 첫 번째 이야기에서 '뭔가, 홍상수 짝퉁 같다'고 생각했던 나 자신을 살짝
반성하게 만들었다. 물론 '우연과 상상'이 인간 관계에 대한 깊이있는 탐구를 보여주지는 않는다. 어떤 면에서 각각의 이야기는
약간의 교훈과 감동을 주는 우화처럼 보이기도 한다. 얄팍함과 작위적인 느낌을 덜어낸 영화는 딱 알맞게 현실과 허구 그 중간에
자리한다. 나는 이 영화가 가진 균형과 조화미에 좋은 점수를 주고 싶다. 뻥튀기 같은 영화 '아사코'는 결코 좋아할 수 없지만,
'우연과 상상'은 아직 안 본 이 감독의 5시간 17분짜리 영화 '해피 아워(Happy Hour, 2015)'를 꼭 봐야겠다는
생각을 들게 만든다.
*사진 출처: cineuropa.com
**사진 출처: otaques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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