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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xote(1981), Mayor(2020), 200 Meters(2020)

 

1. 리얼리즘 영화인가 착취 영화인가, Pixote(1981)

  브라질의 헥토르 바벤코(
Héctor Babenco) 감독의 '피쇼테(Pixote)'는 2018년에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월드 시네마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복원된 작품이다. 복원된 영화의 오프닝 크레딧에는 조지 루카스가 자신의 재단을 통해 기금을 지원했다는 자막이 뜬다. 복원판은 원래 영화에 프롤로그로 들어가는 바벤코 감독의 내레이션 부분이 없다. 그 부분은 유튜브에서 검색하면 볼 수 있다. 약 2분 가량의 영상에서 감독은 빈민촌(Favela로 불리는)을 뒷배경으로 브라질의 심각한 빈곤과 그로 인한 아동 문제에 대해 언급한다. 그 도입부 장면에서 주인공 '피쇼테'를 연기한 실제 파벨라 출신의 페르난도 라모스 다 실바의 모습도 보인다.

  영화 '피쇼테'는 꽤 착잡하고 괴로운 영화 보기의 경험을 선사한다. 고아 피쇼테가 거리의 아이로 소년원에 수감되면서 겪는 일은 영화가 아니라 진짜 현실처럼 느껴진다. 강간, 폭행, 학대, 협잡과 은폐가 횡행하는 복마전 같은 소년원에서 아이는 친구들과 탈출한다. 그러나 피쇼테를 기다리는 것은 더 깊은 범죄의 수렁이다. 소매치기를 시작으로 마약 밀매, 포주 노릇과 협박, 결국에는 살인까지 저지르게 된다. 이 고통스런 피쇼테의 범죄 인생 수업기는 영화적 표현으로서의 리얼리즘과 아동 연기자에 대한 착취(exploitation)의 경계선을 넘나든다.

  아동이 강간과 성행위를 목격하는 장면이 나오는 영화가 브라질이 아닌 다른 나라에서였다면 과연 가능했을까? 다큐멘터리적인 미학을 성취하기 위해 최하층 빈민가 출신의 아동 배우를 그런 식으로 소모하는 것이 전혀 문제가 없다고 말할 수 있을까? 나는 '피쇼테'를 보는 내내 그런 질문을 머릿속에서 떨칠 수가 없었다. 그 무엇으로도 채워지지 않을 것 같은 공허한 눈빛을 가진 주인공 피쇼테. 자신의 삶을 연기하는 것 같았던 페르난도 라모스 다 실바는 19살의 나이에 경찰의 총에 맞아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했다. 영화 출연이라는 행운은 문맹과 빈곤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길로 이어지지 않았다.


2. 팔레스타인의 오늘, Mayor(2020)와 200 Meters(2020)

  데이비드 오싯 감독의 2020년작 다큐 'Mayor'는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의 임시 수도 '라말라'의 시장이 주인공이다. 이스라엘 서안 지구(West Bank)에 자리한 라말라의 무사 시장은 시에 산적한 여러 문제들을 비롯해 정치적인 난제들과도 마주한다. 온화한 성품의 시장은 매사에 합리적이고 명료한 의사 결정을 내리기 위해 애쓴다. 업무를 위한 시청 직원들과의 소통을 비롯해 주민들의 민원에도 동네 아저씨처럼 직접 가서 살펴보고 이야기를 듣는다. 팔레스타인의 행정력이 미치는 라말라는 겉으로는 매우 평화스러워 보인다. 그러나 관객들은 곧 그 평화가 잠정적이고 유동적인 것임을 알게 된다.

  2017년 12월, 트럼프가 이스라엘의 수도를 예루살렘으로 인정하겠다는 선언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지역에 긴장을 고조시킨다. 다큐는 국제적인 정치 역학이 라말라에 그대로 반영되는 모습을 담아낸다. 네타냐후 정부는 트럼프의 선언을 계기로 서안 지구 정착촌 건설에 더욱 공격적으로 나선다. 성탄절을 앞두고(라말라의 주민 25%는 기독교 신자이다) 축제 분위기에 있었던 라말라에는 이스라엘 군인들이 진입해서 공포분위기를 조성한다. 시청사 앞까지 진출해서 바리케이드를 치고 총을 쏘아대는 이스라엘 군인들을 시장은 그저 바라볼 수 밖에 없다. 그것은 라말라가 팔레스타인의 영토가 아닌 이스라엘의 '점령지'임을 명백히 상기시키는 장면이다. 

  서안 지구는 지역에 따라 A, B, C로 나뉜다. 팔레스타인의 지배적 행정력이 미치는 A 지역,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공동 관리하는 B 지역, 이스라엘 단독 관리 지역 C. 라말라는 A 지역에 속하지만, 그것이 팔레스타인 주민의 온전한 자유를 보장하지는 않는다. 서안 지구에 고립된 섬처럼 흩어져 있는 팔레스타인 자치 지역들로 가기 위해서는 늘 이스라엘군의 검문소를 거쳐야만 한다. 라말라의 시 주변 곳곳에도 검문소가 설치되어 있고, 인접한 정착촌 때문에 라말라 주민들은 수질 오염과 같은 불편을 겪고 있다.

  그러한 현실에서 무사 시장은 어떻게 하면 주민들의 생활을 향상시킬 수 있는지, 치안을 안정적으로 유지할 것인지에 대해 고민한다. 나에게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독일 외교 사절단과의 회담에서 보여준 시장의 모습이었다. 사절단은 정치적 의사 표명에 난색을 표하면서 실질적인 민간 교류에 집중하려고 한다. 그러자 시장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존엄성(dignity)'을 지키는 데에 서방 세계의 정치적 지지가 필요하다고 설득한다.
 
  아민 나이페 감독의 2020년작 '200 미터'는 바로 그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오늘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현실을 보여준다. 예루살렘과 서안지구를 가르는 장벽을 사이에 두고 가족은 나뉘어 살고 있다. 남자는 팔레스타인 자치 지역에, 아내는 아이들과 예루살렘에서 지낸다. 두 집의 사이는 장벽 하나를 두고 고작 200 미터 정도이다. 왜 그들은 그렇게 따로 살게 되었을까? 예루살렘에서 2개의 부업을 뛰며 일을 하는 아내에게는 거주권이 있지만, 남편에게는 없다.

  자본과 일자리가 넘치는 예루살렘에 가서 돈을 벌기 위해 남자는 수모에 가까운 검문 검색 과정을 거쳐야만 한다. 엑스레이 촬영, 지문 검색, 신분증 제출에 걸리는 시간은 2시간에 가깝고 겨우 그렇게 가서 막노동을 한 다음에 밤늦게 다시 돌아온다. 그것은 예루살렘에서 일하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매일 겪는 일상이다. 영화는 갑작스런 아들의 사고 소식을 들은 남자가 급하게 예루살렘에 가기 위해 비합법적인 루트를 이용하는 과정을 그린다. 총격전과 테러 장면이 나오지 않는데도, '200 미터'가 보여주는 예루살렘 진입기는 극도의 긴장과 불안으로 채워져 있다.

  외국인의 입장에서 단편적인 국제 뉴스만으로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현실을 가늠하기는 쉽지 않다. 그런 면에서 영화 '200 미터'는 오늘을 사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삶을 바라볼 수 있게 해준다. 또한 다큐 'Mayor'는 객관적인 시각으로 분쟁 지역의 현실을 담담하게 담아냈다. 이러한 작품들은 국외자 관객들에게 국제 정치의 역학과 그 이면에 대한 새로운 성찰의 기회를 제공한다. 


*사진 출처: janusfilms.com


**사진 출처: wikipedia.org


***사진 출처: tehran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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