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휴양지 뒷편의 숨겨진 삶, Sister(2012)
영화는 시작부터 30분 동안 어린 시몽의 스키장 절도 행각을 건조하게 보여준다. 마치 로베르 브레송의
'Pickpocket(1959)'에서 능수능란한 소매치기 기술이 이어지는 쇼트들처럼 시몽은 관객들에게 자신의 비행(非行) 공연을
펼친다. 물 만난 고기처럼 스키장을 유유히 누비며 값비싼 스키 장비를 비롯해 휴가객들의 옷과 소지품, 싸온 음식까지 훔치는 이
아이는 고작 열두 살이다. 스키장 아래에 자리한 마을 아파트에서 누나 루이즈와 살고 있는 아이는 훔친 물건을 처분한 돈으로 누나를
'부양'한다.
자신의 첫 장편 영화 'Home(2008)'에 출연했던 아역 배우 케이시 모테트 클라인의 재능에
주목한 우르술라 마이어는 영화 'Sister'를 구상한다. 마이어는 스위스의 스키장 근처에서 방을 얻어 잠시 지냈던 시절의 일을
바탕으로 시나리오를 썼다. 멋진 휴양지의 외관 뒷편에는 그곳이 잘 돌아가게끔 일하는 노동자들이 있었다. 우연한 기회에 그들의
일상을 들여다 볼 수 있었던 마이어는 그때의 관찰기를 'Sister'에 녹여낸다. '생업' 때문에 비싼 스키장 시즌권을 사서 목에
걸고 있기는 하지만, 시몽은 스키를 탈 줄 모른다. 스키 장비에 대한 해박한 지식은 우유와 밀가루, 집세를 얻기 위한 방편일
뿐이다. 시몽이 훔쳐온 외투를 입어보며 걱정을 내비치는 누나에게는 이렇게 말한다.
"그 사람들, 없어진 옷에는 신경도 안써. 새로 사고 말지."
제대로 된 직업도 없이 그저 남자나 만나고 다니는 누나 뒤치다꺼리를 기꺼이 하는 시몽. 루이즈는 동생이 무슨 짓을 해서 돈을
가져오는지 알면서도 그냥 내버려 둔다. 스키장에서 우연히 알게 된 관광객 크리스틴과 아이들을 바라보는 시몽의 눈빛에는 부러움이
섞여있다. 시몽에게는 엄마의 자리, 가족의 자리가 없다. 가난한, 결손 가정의 비행 소년은 생계를 위한 돈과 따뜻한 애정을
갈구하지만, 그것은 이 아이에게 쉽게 주어지지 않는다. 아랫마을에서 지내다 산 정상의 스키장에 '출근'해서 유령처럼 그곳을
배회하는 시몽에게 부유한 관광객들의 삶은 그저 바라볼 뿐인 TV 속의 장면들 같다.
전작 'Home'에서 고속
도로변 집이라는 공간을 통해 자본과 계급의 문제를 은유적으로 드러냈던 마이어는 'Sister'에서도 그러한 문제의식을 변주한다.
영화는 스키 휴양지 관광객들의 여유있는 모습과 대비되는 어린 절도범 시몽의 일상, 스키장 식당 노동자들의 거친 언사를 보여준다.
로버트 알트만의 2001년작 영화 '고스포드 파크(Gosford Park)'의 화려한 귀족 저택에 비좁고 복잡한 하인들의 주거
공간이 절묘하게 숨겨져 있는 것처럼, 부유층의 스키장 휴양지 뒷편에서는 다른 삶의 이야기가 전개된다.
시몽이
'누나'라고 부르는 루이즈의 호칭이 '엄마'여야 한다는 사실은 아이가 처한 사회적, 심리적 상황이 매우 취약함을 알려준다. 자신의
어린 아이들과 평온한 휴양지의 시간을 보내는 관광객 크리스틴에게 시몽이 투사하는 감정은 결핍된 모성에서 기인한다. 엄마에게
사랑받고 보호받아야할 아이는 오히려 엄마를 보살피며, 엄마라고 부르지도 못한다. 시즌이 끝나고 눈이 녹아 진창길이 된 폐장 전날
스키장의 풍경은 루이즈와 시몽 모자(母子)의 황폐한 삶의 단면처럼 보인다. 엄마와 아들 사이이지만, 남매로 살아야 하는 이들의
앞날에 무엇이 기다릴지 관객은 쉽게 가늠하기 힘들다.
작은 비중이지만 영화 속에서 관광객 크리스틴을 연기한 배우는
'X 파일'의 스컬리 요원 질리언 앤더슨이다. 앤더슨은 영화에서 영어가 아닌 불어 대사를 하는데, 의외로 발음이 좋아서 좀
놀랐다. 불어권 리뷰어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불어 교과서적인 발음'이라고 하니, 프랑스에서 산 적이 없는 이 배우가 가진 언어적
재능도 엿볼 수 있다. 'Home'의 어린 막내 아들에서 한 뼘 훌쩍 커진 케이시 모테트 클라인은 공허한 눈빛으로 애정을 갈구하는
소년을 연기한다. 루이즈 역을 연기하는 레아 세이두도 인상적이지만, 이 영화는 재능있는 아역 배우의 성장기를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더 흥미롭다. 우르술라 마이어는 영화 'Sister'에서 클라인을 위한 완벽한 공연 기회를 제공한다.
*사진 출처: filmaffinity.com
댓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