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살이 넘은 사람은 지원할 수 없다. 몸에 문신이 있는 사람도 안된다. 회사에서 3분 이내의 거리에 있는 기숙사가 제공된다. 방
하나에 4명, 최대 8명이 같이 쓴다. 구인 담당자들은 버스 터미널 앞에서 자신들이 요구하는 조건을 외친다. 캐리어를 끌고 이제
막 상경한 것으로 보이는 젊은 남녀들은 그 조건들을 유심히 듣는다. 마침내 마음을 결정한 이들은 대형 관광 버스에 몸을 싣는다.
Jessica Kingdon의 2021년작 다큐멘터리 'Ascension(登楼叹)'의 도입부는 대형 제조사들의 현장 구인 장면을
담는다. 다큐는 '세계의 공장'으로 불리는 중국의 산업 현장과 노동자들, 그리고 다양한 사치 산업과 소비 행태를 통해 오늘날
중국 자본주의의 현실을 조망한다.
내레이션이 배제된 이 다큐는 이미지와 소리, 음악으로만 내러티브를 구성해 나간다. Dan Deacon이 맡은 음악은 군데군데 전자음과 공장의 기계음을 합성했다. 때론 빠르게, 느리게 흘러가면서 음악은 다큐에 운율을 부여한다. 쉴 새 없이 기계에서
쏟아지는 플라스틱 부품들, 그것을 반복적으로 조립하는 공장 노동자들, 그들은 가끔씩 이런 저런 이야기를 주고 받는다. 동료에게 왜
공장장에게 밥을 사지 않느냐며 말하는 이는 그에게 잘 보여야 일거리를 계속 줄 거라며 설득한다. 노닥거리지 말고 잡담도 하지
말라며 경고하는 관리자. 아마도 관리자의 자녀라고 생각되는 아이는 공장을 비추는 여러 대의 CC TV 화면이 보이는 책상 앞에서
간식을 먹고 있다. 이렇게 이 다큐에는 다층적 의미를 지닌 메시지들이 흥미롭게 숨겨져 있다.
관객들의 시선을 단번에 붙잡는 장면은 성인용 특수 인형(Sex Doll) 제작 현장일 것이다. 실리콘으로 제작되는 인형을
만드는 이들은 대부분 여성이다. 그들은 섭씨 400도가 넘는 고온의 성형 도구를 다룬다. 거기에 가려움증을 유발하는 유해한
염료와 가루와도 씨름해야 한다. 주문 고객의 요구에 맞추기 위해 최적의 색을 선정하고, 완제품의 세부를 사진으로 찍어서 주문자에게
보낸다. 그러한 일련의 과정들은 국경을 뛰어넘는 성 상품 산업의 하부 구조를 부각시킨다.
노동자들을 고용하는 회사는 전체주의적 방식으로 직원들을 훈련시키고 관리한다. 군복을 입고 제식 훈련을 받는 노동자들은 회사에
대한 충성심과 애사심을 되새긴다. '명령에 따르라'는 구호를 외친 후, 기숙사로 향하는 그들의 출입은 '지문'과 같은 생체
인식으로 통제되고 감시받는다. 그들이 만든 물건은 부의 창출을 위한 원재료가 된다. 개인 동영상 채널로 물건을 판매하는 판매자는
신상품을 사라고 외치고, 부자가 되기 위한 마케팅 세미나에서는 몇 년 이내에 몇 백억을 벌겠다는 허황된 다짐이 울려퍼진다.
늘어난 부유층들의 수요에 맞추기 위해 생겨난 집사 교육 학원, 경호원 학교도 볼 수 있다. 경호원 학교의 교관은 잘 해내지 못한
훈련생을 무자비하게 질책하며 모욕을 준다. 진짜 돈 있는 사람들의 저녁 식사 장면도 포착한다. 외국 유학을 다녀온 그들은 미국이
중국을 상대로 벌이는 무역 전쟁에 불편한 속내를 보인다. 신장 지역의 인권 보다 중요한 것은 '생존'이라며 중국의 입장을
강변하기도 한다. 중국이 좀 어려움을 겪기는 하겠지만 결국 그 모든 것을 다 이겨낼 것이라는 믿음. 그것은 대형 화장품 회사
사장의 연설에서 드러난다. 행사장의 홍보 영상에는 립스틱 생산 장면과 여군들의 행렬이 병치된다. 이 기이한 홍보 영상은 중국이
무역전쟁에서 필사적인 '군인 정신'으로 승리할 것이라는 자기 암시가 들어있다.
감독 제시카 킹던은 2017년에 10분 가량의 단편 다큐를 선보였다. 'Commodity City'는 다양한 소비재들의 판매
집결지인 중국 저장성의 'Yiwu(義烏) city' 상가의 일상을 담았다. 킹던이 그 단편을 찍으면서 가졌던 관심이
'Ascension'에서 좀 더 깊이있는 사유로 확장되었다. '상승'으로 번역되는 이 다큐의 제목은 킹던의 증조부가
지은 시 제목에서 따왔다. 다큐는 중국 각 지역의 51개 공장에서 촬영되었는데, 그 여정은 감독에게 자신의 뿌리를 들여다 보는
계기이기도 했다. 어머니가 중국인인 중국계 미국인으로서 킹던은 후난성에서 증조부의 자취를 발견한다(asiapacificarts.org와의 인터뷰 참조). 청나라 말기의 문인이었던
Zheng Ze, 그가 지은 시 'Ascension(登楼叹)'의 싯귀로 다큐는 문을 연다.
"손에 칼을 쥐고 탑을 오르네
근심이 사라지길 바라며 먼 곳을 바라보네
하지만 내가 오르기에 탑은 너무 높아
오히려 괴로움만 커질 뿐
Hand on my sword, I ascend the tower.
I gaze afar, hoping to relieve my worries.
The tower is too high to climb;
Instead, my troubles only grow."
부를 향한 무지막지한 열망, 소비주의로의 질주. 오늘날 중국에서 노동자들의 계층 이동은 가능한가? 킹던은 대규모 워터 파크를
채운 인파, PC 게임에 몰두하는 젊은이들의 무료한 일상을 보여주며 그 질문에 답한다. 그들은 소비할 뿐, 더 높은 계층으로 가기
위한 사다리에 오르지는 못한다. 이 다큐는 우리말 제목 '중국몽'으로 나와있는데, 나는 그 제목이 다큐의 본질을 충분히
담아낼 수 없다고 생각한다. 'Ascension'의 중국어 부제는 '登楼叹', '망루에 오르며 한숨을 쉰다'는 뜻이다. 더 많은
돈을 벌고, 갖고 싶고, 쓰고 싶다는 극한의 물질적 욕망의 끝에서 결국 만나게 되는 것은 허망한 괴로움 뿐이라고 킹던은 시를 통해 강조한다.
다큐의 끝부분, 중국의 자원 무기인 희토류 광산과 함께 상품을 실은 컨테이너 선박이 바다를 가로지르는 장면이 나온다. 버스
터미널에서 시작한 다큐의 여정은 그렇게 마무리 된다. 자본주의에 대한 이 매혹적인 영상 서사시를 만든 제시카 킹던, 그의 부친은
성공한 헤지 펀드 매니저이다. 분명 '궁핍함'과는 거리가 먼 삶의 배경을 지닌 부유한 다큐 제작자는 어쩌면 자신이 가장 잘 아는
부의 숨겨진 본질에 대해 말하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사진 출처: en.wikipedia.org
**이 다큐는 documentarymania.com에서 무료로 볼 수 있다. 영어 자막이 제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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