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 movie. 흔히 우리가 수준 낮은 영화를 언급할 때 'B급 영화'라는 표현을 쓴다. 그 B급 영화를 헐리우드 메이저
스튜디오는 1930년대에서 1950년대에 이르는 시기에 그야말로 공장에서 물건 찍어내듯 쏟아냈다. 왜 그랬을까? 이유는 아주
간명하다. 돈이 되기 때문이었다. B movie는 단기간에 적은 제작비로 만드는 영화였다. 주로 70분 안팎의 분량으로
만들어졌는데, 그것은 극장의 상영 회전율을 높이기 위한 방편이었다. 1930년대와 40년대의 B movie는 서부극이 주류를
이루었다. 거기에 새로운 장르가 더해졌다. 필름 느와르(Film noir)였다. 제작사 RKO는 필름 느와르의 산실이었다. '삐 삐
삐비삑'하는 소리와 함께 라디오 송신탑이 나오는 인트로 화면. 아마도 오늘날 필름 느와르 영화팬들이 가장 사랑하는 제작사 로고일
것이다.
고전기 헐리우드의 많은 감독들에게 B movie 연출은 일종의 수련기에 해당했다. 에드워드 드미트릭(Edward Dmytryk)
감독은 영화사의 메신저 보이(하급 사환)에서부터 경력을 시작한, 말 그대로 밑바닥에서부터 구르면서 영화를 배웠다. 그도 수많은 B
movie를 찍으면서 경험을 쌓아갔다. RKO와의 계약은 경력의 전환점이었다. 그는 A급 영화 감독으로 승격되었다. 그런 그에게
'십자포화(Crossfire, 1947)'는 명성과 상업적 성공을 안겨다준 영화였다. 그런데 이 영화를 만든 직후에 그의 경력은
급전직하했다. RKO에서는 해고 통보를 받았고, 미국을 떠나야만 했다. 도대체 그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일까?
영화의 원작은 리처드 브룩스(Richard Brooks, 작가 겸 감독)가 1945년에 발표한 소설 'The Brick
Foxhole'이다. John Paxton이 각색 작업을 맡았는데 그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왜냐하면 원작의 상당 부분을
바꾸어야 했기 때문이다. 2차 대전에 해병대원으로 참전한 리처드 브룩스는 군대에서 자신이 보고 들은 이야기를 바탕으로 그 소설을
썼다. 소설은 군인 살인 사건과 함께 얽혀 있는 동성애와 인종차별주의, 반유대주의를 그려냈다. 전후 리얼리즘 소설로서 리처드
브룩스는 냉철한 관찰자적 시점을 보여준다. 영화 '십자포화'를 좀 더 잘 이해하기 위해 원작 소설을 읽었다. 235쪽에 달하는
장편 소설이다.
영화가 시작되면 어두운 방 안에서 격투 소리가 들리고, 한 남자가 바닥에 쓰러진다. 사건을 맡은 핀레이 반장은 피살된 조셉의
동료 군인들을 취조해 나간다. 그는 조셉과 함께 있었던 미첼을 용의자로 지목한다. 하지만 미첼의 성품을 잘 아는 킬리(로버트 미첨
분)는 미첼은 절대 그럴 사람이 아니라며 옹호한다. 킬리의 심중에는 다른 유력한 용의자가 있다. 냉혹하고 폭력적인 성향을 지닌
몬티(로버트 라이언 분), 그도 조셉이 죽은 날 밤에 미첼과 함께 어울렸다. 사건이 진행될수록 핀레이 반장은 살인의 동기가
유대인에 대한 증오심과 관련이 있음을 알게 된다. 죽은 조셉은 유대인이었다. 제대를 앞두고 서로 의지하며 형제처럼 지냈던 그들
가운데 과연 누가, 왜 조셉을 죽인 것일까?
1934년부터 1968년까지 적용된 미국 영화 산업의 자율적 검열 기준인 'Hays Code'에서 동성애는 성 도착(sex
perversion)에 해당하는 금기 사항이었다. 그러므로 영화 '십자포화'는 브룩스의 원작 소설에서 살해 동기가 된 '동성애'를
'반유대주의(anti-semitism)'로 대체했다. 물론 반유대주의도 껄끄러운 요소이기는 했다. 헐리우드를 지배하는 유대인
자본을 고려하면 그러했다. 영화가 원작의 동성애 코드를 삭제하고 반유대주의를 내세운 것은 검열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것은 미국내의
현실과도 맞닿아 있었다. 'The Brick Foxhole'에는 노골적인 인종차별주의와 반유대주의가 잘 묘사되어 있다. 원작자
리처드 브룩스는 그러한 불안 요소들로 끓어 오르는 미국 사회의 내면을 정면으로 응시한다.
로버트 라이언이 연기한 '몬티'라는 인물은 바로 미국 사회의 병적 징후를 상징한다. 소설에서 그는 입대 전에 경찰이었던 것으로
나오는데, 재직 기간에 흑인과 유대인에 관련된 폭행으로 고발을 당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몬티가 바라보는 세상은 힘에 의해
지배되는 약육강식의 세계이다. 그런 그의 기준에서 에디(영화 속에서는 조셉)와 같은 유대인, 거기에자 동성애적 성향을 가진 사람은
제거해야할 열등한 존재이다. 영화는 살해된 조셉에게서 소설의 에디가 지닌 '동성애자' 기표를 제거하고, '유대인'만을 남긴다.
그런데 에디가 가진 유약하고 외로움을 잘 타는 성향은 미첼의 성격과 일정 부분 닮아 있다. 에디는 외롭다며 우는데, 그것은
남성다움의 특성과는 거리가 멀다.
소설 속에서 술에 취한 에디는 미첼과 함께 춤을 춘다. 이러한 은밀한 동성애적 코드는 영화에서는 '동료애'의 형태로 살아남는다.
킬리는 미첼의 가장 우호적인 조력자로 제대를 앞둔 미첼의 취약한 심리 상태를 걱정한다. 그는 핀레이의 심문에서 자신이 미첼의
아내에게 힘들어 하는 남편을 만나 보라고 전화했다는 사실을 밝힌다. 또한 미첼의 구명을 위해 핀레이 반장의 수사를 돕는다.
'십자포화'에는 그렇게 원작 소설의 본질적인 부분이 삭제되고 변형되어 있다. 그럼에도 이 영화는 당시 미국 사회가 안고 있는
중요한 사회적 문제, 즉 '다름'에 대한 폭력적인 증오와 차별을 묘사하고 있다. 그러한 사회 분위기는 이후, 공산주의자 색출이라는
'매카시즘'과 연결된다. 그리고 에드워드 드미트릭 감독 자신이 그 광풍에 휩쓸려 들어가게 된다. 영화가 개봉된 1947년에
드미트릭은 의회 비미활동위원회(HUAC)에 나와서 증언할 것을 요청받았으나 거부했다. 잠시 영국에서 지내던 그는 결국 미국으로
돌아와 의회에서 증언했다. 그것은 변절이나 배신이 아닌 생존을 위한 길이었다.
"전쟁이 지옥이라면 벽돌 참호는 저주이다(So I can say, long after Sherman, that if war is hell, then a brick foxhole is damnation)."
소설 'The Brick Foxhole'의 서문에서 리처드 브룩스는 그렇게 썼다. 브룩스는 전쟁의 참혹한 본질과 끔찍한 살육극이
참전 군인들에게 남긴 깊은 내상을 그려낸다. 전쟁은 끝났지만, 돌아온 군인들이 마주하게 될 사회는 또 다른 의미의 전장이 될
터였다.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데에서 나오는 분노와 증오가 어떻게 폭력과 살인으로 이어지는지, 영화 '십자포화'는 그에 대한
소신있는 발언을 들려준다.
*사진 출처: facebook.com 좌측부터 로버트 미첨, 로버트 라이언, 로버트 영
**에드워드 드미트릭 감독의 '산(The Mountain, 1956)' 리뷰
https://sirius1001.blogspot.com/2022/02/mountain-1956.html
에드워드 드미트릭 감독의 '스나이퍼(The Sniper, 1952)' 리뷰
https://sirius1001.blogspot.com/2021/07/sniper-195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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