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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편의 애니메이션 영화로 바라본 사람과 세상: On-Gaku: Our Sound(2019), The Summit of the Gods(2021), Flee(2021)

 

On-Gaku: Our Sound(2019), Kenji Iwaisawa
The Summit of the Gods(2021), Patrick Imbert
Flee(2021), Jonas Poher Rasmussen


1. 일본 애니메이션의 새로운 바람, On-Gaku: Our Sound

  하고 싶은 일이 없어도 괜찮은 걸까? 고등학생 켄지와 오타, 아사쿠라는 학교 동아리방에서 비디오 게임이나 하면서 시간을 죽이고 있다. 한주먹하는 켄지에게는 싸움을 걸고 싶어하는 오바와 그 패거리들이 골칫거리다. 그러나 켄지는 '짱'이 되는 일에는 별 관심이 없다. 어느 날, 길을 가던 켄지에게 누군가 잠깐 일렉 기타를 맡긴다. 그때부터였다. 켄지가 음악을 하기로 마음 먹은 것은. 민머리, 각진 눈, 뚱뚱한 외모를 지닌 아웃사이더 3총사는 그렇게 밴드를 결성한다. 이 밴드, 과연 연주는 할 수나 있을까?     
 
  이와이사와 켄지는 2019년에 독특한 애니메이션 영화를 내놓았다. '음악(音楽)'이란 제목의 'On-Gaku: Our Sound'는 제작에 7년이란 시간이 걸렸다. 모든 작화를 직접 손으로 그린 71분의 이 작품을 만드는 동안 그의 나이는 마흔을 넘겼다. 아마도 이와이사와 켄지에게 이 애니메이션은 반드시 해내야만 하는 중요한, 의미있는 작업이었을 것이다. 'On-Gaku'는 상업성과는 거리가 먼 지점에 자리한다. 단순하고 간결한 작화, 건조한 유머, 실험적 음악, 그 모든 것들이 어우러져서 꽤 괜찮은 울림을 만들어 낸다.

  켄지는 자신들의 밴드에 '고무술(古武術, Kobujutsu)'이라는 이름을 붙인다. 그저 단음으로 베이스 기타를 치고, 드럼으로 두들겨 대는 음악을 하면서도 자신들이 록 정신을 구현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들의 연주는 학교 음악 동아리 리더 모리타를 감동시킨다. 두 밴드는 합심해서 곧 열릴 록 페스티발에 참가하기로 한다. 삼총사 밴드가 연주하는 단음의 연주, 모리타의 노래에서 느껴지는 손발 오그라드는 발라드적 감성. 남들이 보기에는 우습기 짝이 없다. 하지만 정작 그들 자신은 매우 진지하며 최선을 다해 음악을 하고 있다. 이 '자기 중심성'이야말로 청소년기를 이끄는 중심 추동력이다.  

  "음악이 없다면, 난 아무 것도 아냐."

  공부는 구제불능이라며 자조하는 모리타. 학교 생활은 재미가 없고, 다들 자기가 뭘 하고 싶은지 알지 못한다. 이와이사와 켄지는 불안하게 흔들리는 주변부 청소년의 초상을 그려낸다. 'On-Gaku'가 그려낸 십대 아웃사이더들의 모습에는 기이한 활력과 희망이 보인다. 그 이유가 뭘까? 음악이 있기 때문이다. 어쩌다가 그냥 해보게 된 음악이 그들의 꽉 막힌 일상에 숨구멍을 만들어 준다. 비록 최고가 되지 못한다고 해도 견딜 수 있게 만들어주는 것. 여린 음성(여성 성우가 담당)으로 말하던 모리타는 강한 목소리의 록커로 변신하며, 켄지는 단음만 내는 베이스 기타를 때려 부수고 리코더로 기막힌 음률을 연주해 낸다. 그리고 마음에만 둔 여자 친구 아야에게도 자신의 진심을 전할 수 있게 된다. 비주류적 감성이 넘쳐나는 이 애니메이션은 썰렁하지만, 그 이면에 온기를 지니고 있다. 'On-Gaku'에서는 일본 애니메이션의 새로운 바람이 느껴진다.  



2. 멈출 수 없는 여정, The Summit of the Gods(2021)

  Netflix의 마케팅 전략은 '돈 되는 것은 무조건 다 해 본다' 같다. 자체 제작 다큐를 비롯해 예술 영화, 애니메이션 배급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프랑스에서 제작된 애니메이션 'The Summit of the Gods(2021)'는 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다. 이 작품은 유메마쿠라 바쿠(夢枕獏)가 쓴 '신들의 봉우리(神々の山嶺)'를 원작으로 한다. 다니구치 지로가 생생한 작화로 그려낸 만화책도 나와있다. 일본에서 큰 인기를 끌었던 작품이라 실사 영화 '에베레스트 신들의 봉우리(2016)'로도 개봉되었는데, 관객들의 평은 그렇게 높지 않다. 그렇다면 애니메이션은 어떨까?

  이 프랑스 애니메이션은 좀 밋밋하고 둔중한 느낌을 준다. 무엇보다 가장 큰 이유는 등장인물이 일본인들인데 프랑스어 더빙으로 만들어졌다는 데에 있다. 일본 애니메이션 영화에 익숙한 우리나라 관객들에게 그 차이가 좀 더 크게 다가오는 부분도 있을 것이다. 인물과 대사가 따로 노는 이 기묘한 불일치성은 극의 몰입을 방해한다. 거기에 이 프랑스 애니메이션의 그림체는 정교하고 세밀한 일본 애니의 작풍과도 거리가 있다. 그럼에도 등반 장면을 비롯해 에베레스트의 풍광을 재현한 모습은 실사 영화만큼이나 사실적이다.

  1924년, 조지 말로리와 앤드류 어바인은 에베레스트 등정 과정에서 실종된다. 그로부터 70년이 지난 1993년, 일본 기자 후카마치는 말로리가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카메라를 손에 넣는다. 만약 말로리가 정상에서 찍은 필름을 찾을 수 있다면, 에베레스트 최초 등정 기록이 바뀔 것이다. 백방으로 수소문해 본 결과, 카메라를 발견한 일본 산악인 하부 조지가 필름을 가지고 있다는 결론에 이른다. 그런데 하부는 동료를 비운의 조난 사고로 잃은 후 행방이 묘연한 상태이다. 하부와 필름의 행방을 찾아 네팔로 떠난 후카마치, 그는 자신이 찾는 진실에 다가설 수 있을까...

  역사적 사실과 허구를 절묘하게 결합한 이 작품은 산에 대한 집념과 열정을 지닌 한 산악인의 인생 여정을 따라간다. 목숨을 내걸고 신들의 봉우리에 다가서려는 사람들, 무엇이 그들을 산으로 이끄는가? 그것을 일반인의 관점에서는 쉽게 이해하기 어렵다. '신들의 봉우리'는 그 이유가 단지 높은 곳에 오르기 위한 야망 때문이 아니라고 말한다. 산을 오르는 여정, 일단 그 길에 오르면 멈출 수 없는 사람들. 결국 이 작품은 그 도저한 열망과 집념에 대한 이야기인 셈이다. 그리하여 우리의 인생에서 그렇게 치열하게 추구하는 가치가 있는지 돌아보게 만든다.



3. 이야기가 가진 진정한 힘, Flee(2021)

  '난민'은 팬데믹 시대에도 여전히 세계 각지에서 진행되는 주요한 사건이다. 덴마크에서 만들어진 이 애니메이션은 희망을 찾아나선 아프간 난민의 기나긴 여정을 들려준다. 주인공 '아민'의 이름은 가명이지만, 이 작품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 실사와 애니메이션, 실제 뉴스 화면이 다큐멘터리적인 방식으로 짜임새 있게 구성되어서 이야기의 핍진성(逼眞性)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린다.            

  아민의 이야기를 듣는 감독은 마치 임상 심리학자 같다. 떠올리기 싫은 과거의 기억을 편안하게 털어놓기 위해 카메라 앞에 선 아민은 침대에 눕는다. 눈을 감고 이야기를 하던 그는 때로 일어나서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차마 말을 잇지 못할 때도 있다. 1989년, 소련의 아프간 철군과 함께 어린 아민과 가족은 고국을 떠날 처지에 놓인다. 관료였던 아버지는 무자헤딘에 의해 체포되어서 생사를 알 수 없다. 어머니와 두 누나, 형과 함께 소련으로 탈출했지만 그때부터 시련은 시작되었다. 불법 체류자 신세로 소련 경찰의 추적을 피해 집안에서 지내야만 했던 것. 일찍 고국을 떠나 스웨덴에 정착한 큰 형이 밀입국 비용을 마련할 동안 아민의 가족들은 기다리는 수 밖에 없었다. 먼저 떠난 두 누나는 겨우 죽을 고비를 넘기고 소련을 빠져 나갔다. 그 뒤를 이어 아민과 형, 어머니도 밀입국 길에 오르는데...

  이 애니메이션 영화가 가진 힘은 '이야기'에서 나온다. 아프간에서 평화로운 어린 시절을 보내던 아민이 어떻게 소련에서 고립된 몇 년의 세월을 견뎠는지, 첫 번째 밀입국 시도가 얼마나 무모했는지, 그리고 마침내 유럽에서 난민으로 인정받기까지의 과정이 마치 소설처럼 펼쳐진다. 그것은 흥미진진한 모험담이 아니라, 피와 뼈를 가르는 극심한 고통과 두려움 속에서 건져올리는 과거의 기억이다. 자유를 찾아 떠난 난민이면서 동성애자로서 아민이 겪었던 정체성의 혼란도 겹쳐진다.        

  이제는 학자로서, 그리고 삶의 동반자를 만나 안정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는 아민. 난민으로 지냈던 시절의 트라우마는 여전히 남아있고, 가족들은 여러 나라에 흩어져서 서로의 신분을 숨긴 채 살아가고 있다. 어떤 면에서 아민의 이야기는 탈출에 성공하지 못한 그 시절 많은 아프간 난민들의 가려진 삶을 떠올리게 만든다. 아민은 먼저 고국을 떠나 유럽에 정착한 형의 희생과 노력 덕분에 탈출이 가능했다. 얼마나 많은 난민들이 자유를 찾는 과정에서 다치고 죽었는지 알 수 없다. 'Flee'는 아민의 힘겨운 탈출기를 통해 분쟁 지역의 사람들이 처한 생존의 위기, 그로 인해 발생하는 난민의 문제, 그들을 바라보는 우리들의 시선에 대해 다양한 질문을 던진다. 



*사진 출처: gkids.com



**사진 출처: themoviedb.org



***사진 출처: flimspeak.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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