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티 해리(Dirty Harry, 1971)'를 처음 보았을 때가 생각난다. 아니 무슨 형사가 악당보다 더 잔혹하고 무법자처럼 구는가, 참 낯선 형사 캐릭터였다. 피도 눈물도 없는 그 형사를 연기한 것은 클린트 이스트우드였다. 같은 해에 제작된 '프렌치 커넥션(The French Connection, 1971)'에서 진 해크먼이 연기한 마약반 형사도 역시 남다른 형사 캐릭터였다. 인정사정 볼 것 없이 범죄자를 단호하게 응징하는 열혈 형사, 때론 선 넘는 폭력도 휘두르는 그런 형사의 모습은 새롭기까지 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감독과 주연을 맡은 'The Gauntlet(1977)'에서 그는 또 다시 형사로 나온다. 별 볼 일 없는 형사로 술에 절어 사는 벤 쇼클리는 어느 날 경찰 국장의 부름을 받는다. 라스베가스로 가서 '거스 몰리'라는 증인을 피닉시 시까지 호송해 오라는 임무가 쇼클리에게 주어진다. 남자인 줄 알았던 증인의 직업은 창녀, 매춘 혐의로 경찰서 유치장에 수감되어 있다. 몰리는 한사코 가기를 거부하면서, 가는 도중에 죽게 될 거라고 말한다. 그렇게 경찰서를 떠나는 순간부터 이 두 사람에게 예기치 못한 사고가 이어진다. 호송차가 폭발하는가 하면, 잠깐 들른 몰리의 집은 경찰의 총격으로 벌집이 되다 못해 무너져 내린다. 도대체 몰리는 무슨 사건에 연루되었길래 이렇게 다들 죽이려고 난리인가, 쇼클리는 수상한 냄새를 맡는다.
이 영화, 오래된 영화이기는 하지만 날것 그대로의 액션과 그야말로 '찐' 마초 캐릭터 형사의 종횡무진 활약이 돋보이는 숨겨진 명작이다.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이런 영화에서 관객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동물적인 감각으로 알고 있는 것 같다. 오늘날의 영화에서라면 컴퓨터 그래픽으로 범벅을 만들어 놓았을 화면을 '진짜' 액션으로 꽉꽉 채워넣는다. 몰리의 집이 총격으로 무너지는 장면에서는 당시로서는 25만 달러에 해당하는 돈을 쏟아부었고, 세트로 만든 집에 7000군데나 드릴을 뚫어놓았다. 그런가 하면 몰리와 쇼클리가 애리조나 사막에서 헬리콥터 저격수에서 쫓기는 장면에서는 '리얼' 헬리콥터가 전선줄에 엉켜서 폭발한다(특수 제작된 헬기로 엔진이 없긴 하지만). 그리고 이 영화의 대미(大尾)를 장식하는 버스 총격전에는 총알 8000발에 버금가는 폭파 장치가 사용되었다. 영화 제작비 550만 달러 가운데 무려 백만 달러가 영화 속 갖가지 액션 장면 연출에 쓰였다. 정말 제값하는 폭파, 총격 장면들은 관객들의 기대를 충실히 따라간다.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연기한 벤 쇼클리 형사는 '잔말 말고 나만 믿고 따라와'를 온몸으로 보여준다. 폭주족한테 오토바이 뺏어서 사막 질주하고, 버스 탈취해서 죽기살기로 총격전을 막아내고, 결국엔 증인 호송에 성공한다. 'The Gauntlet'은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클린트 이스트우드에 의한, 클린트 이스트우드를 위한 영화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자신에게 흥행 감독으로서의 충분한 재능이 있음을 제작자와 관객들에게 강력하게 입증한다. 이 영화를 보는 이라면 누구나 스파게티 웨스턴에서 총잡이로 시작한 신인이 어느새 헐리우드의 영향력 있는 인물이 되어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렇게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자신의 영화 경력을 차근차근 쌓아간다. 그러나 배우와 감독으로서 쌓은 눈부신 명성에 가려진 그의 사생활과 인간성은 그렇지 못했다. 이 영화에서 몰리 역을 맡은 산드라 록(Sondra Locke)은 1975년부터 무려 14년 동안 클린트 이스트우드와 동거 관계를 유지했다. 말이 동거였지, 거의 부인이나 마찬가지였다. 두 사람은 영화 작업을 함께 하는 동료이기도 했다. 산드라는 재능있는 배우로서 연출에도 관심을 보였다. 그러나 골수 마초였던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산드라가 연출로 발판을 넓히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그는 또한 영화 경력에 방해가 된다면서 아이 갖는 것도 거부했다(산드라는 두 번 임신했지만,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아이를 원치 않았다).
서서히 멀어지기 시작한 관계는 급기야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산드라를 집에서 내쫓는 결말에 이르렀다. 산드라는 동거인으로서 위자료 소송을 냈고, 결국 합의금을 받기는 했으나 그 이후 산드라의 영화 경력은 내리막길을 걸었다. 더럽게 끝난 소송전, 그리고 산드라와 동거 기간 중에 다른 여자와 바람피우면서 비밀리에 아이도 얻은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그 뻔뻔함을 어디에 빗댈 수 있을까? 산드라는 나중에 자서전을 냈는데, 클린트 이스트우드를 '사악하기 그지 없으며, 자신을 착취한 거짓말쟁이'라고 맹비난을 퍼붓었다. 물론 이스트우드는 변호사를 통해 경고의 메시지를 날렸다. 그뿐 아니라 자서전이 나오지 못하게 방해했다. 이 나쁜 남자의 뒤끝은 그토록 지저분하고 역겨웠다.
'The Gauntlet'에서 산드라가 연기한 몰리는 창녀이지만 나름대로 명석하고, 순수한 면모도 가지고 있다. 호송차 안에서 자신을 모욕하는 경찰을 말로써 농락하는 깡다구도 있는 여성이다. 어떤 면에서 본다면, 이 영화의 쇼클리와 몰리는 실제 두 사람의 관계를 보여주기도 한다. 마초 형사 쇼클리를 사랑하게 된 몰리가 결국에는 자신의 모든 것을 그에게 일임하고 청혼까지 한다. 산드라 로크도 지독한 사랑 때문에 클린트 이스트우드에게 얽매인 삶을 살았던 것은 아닐까? 영화는 그렇게 허구와 현실을 오간다. 나쁜 남자와 함께 사막을 건너는 목숨 건 여정을 했던 몰리는 우여곡절 끝에 살아남는다. 그러나 현실의 산드라 로크는 그 긴 여정 끝에 망가지고 잊혀졌다. 생의 마지막은 암투병으로 지난하고 고통스러웠다.
영화의 제목은 고대로부터 이어온 형벌에서 따온 것이다. 벌을 받는 사람이 양쪽으로 도열한 사람들 사이로 지나가면서 곤봉이나 채찍, 창과 같은 무기로 얻어맞는 형벌을 'Gauntlet'이라고 한다. 영화 마지막에 쇼클리는 탈취한 버스로 피닉스 시내에 진입한다. 그때 도로 양쪽에 깔린 경찰들의 총격이 그 Gauntlet 형벌처럼 이루어진다. 그 죽음의 도로를 뚫고 나쁜 남자 쇼클리는 자신의 임무를 완수한다. 어쩌면 그 장면은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영화 경력이 앞으로도 불사조처럼 살아남을 것임을 보여주는 것처럼 보인다. 그는 날아올랐지만, 그때 그의 옆에 있었던 여자는 추락했다. 나는 이 영화를 보면서 나쁜 남자와 사막을 건너는 법을 배우지 못한 여배우의 비극을 떠올린다.
*이 영화의 음악을 맡은 제리 필딩의 재즈 음악이 아주 좋다. 도입부, 중간 중간의 액션 장면, 결말 부분의 재즈 선율을 놓치는 관객은 드물 것이다.
**사진 출처: movierambling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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