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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 Mifune: The Last Samurai(2015)

 

마지막 사무라이로 기억될 배우, 미후네 토시로
 


  "뭐랄까, 그는 바다같은 사람이었습니다."

  동료 여배우는 그를 그렇게 회고했다. Steven Okazaki의 2015년작 다큐 'Mifune: The Last Samurai'는 일본의 명배우 미후네 토시로(三船敏郎, 1920-1997)의 영화 인생을 돌아본다. 어떤 사람을 '바다' 같다고 말할 때, 그 의미는 과연 어떤 것일까? 여배우는 로케이션 촬영할 때 음식이 맞지 않아 고생하는 이들을 위해 미후네 토시로가 요리를 해주었던 이야기를 한다. 대스타이면서도 거만하지 않고 소탈했던 한 인간, 배우로서 끊임없이 노력하며 성실하게 자신의 일을 했던 사람. '바다'라는 단어야말로 그의 인간됨을 잘 보여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미후네 토시로의 영화 인생에서 구로사와 아키라(
黒澤明, 1910-1998)는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다큐는 영화를 구도자적인 엄격함으로 만들었던 한 감독의 이야기 또한 비중있게 다룬다. 구로사와 아키라는 배우들에게 매우 철저하고 치밀하게 연출 지시를 내리는 것으로 유명했다. 그의 영화에 출연했던 이들은 촬영 현장이 훈련소 같은 분위기였다고 말한다. 완벽주의자 감독의 지시를 따라가는 것은 버거운 일이었다. 그런 감독이 아무런 연출 지시를 하지 않는 유일한 배우가 바로 미후네 토시로였다. 구로사와 아키라에게 미후네 토시로는 예술적 동반자였다.

  다큐는 일본 시대극을 대표하는 배우로서 미후네 토시로를 부각하면서 시작한다. 사무라이들이 나오는 시대극은 '찬바라(チャンバラ)'로 불린다. 그 단어는 칼들이 부딪히며 내는 '찬찬, 챙챙'하는 소리에서 따왔다. 구로사와 아키라의 '7인의 사무라이(Seven Samurai, 1954)''요짐보(Yojimbo, 1961)', 이나가키 히로시(稲垣浩) 감독의 '미야모토 무사시(Samurai I : Musashi Miyamoto, 1954) 같은 작품은 미후네 토시로를 사무라이의 원형적 캐릭터로 각인시켰다. 스티븐 오카자키는 그런 이유로 다큐의 제목을 '미후네: 마지막 사무라이'로 정했다. 확실히 이 배우의 필모그래피 대부분은 시대극으로 채워져 있다.

  시대극의 사무라이 연기는 그가 가장 잘 하는 것이기는 했으나, 더욱 치우치게 된 것은 구로사와 아키라와의 협업 관계가 끝나고서부터였다. 'Red Beard(赤ひげ, 1965)', 그 작품은 두 사람이 함께 한 마지막 작품이었다. 무려 제작 기간이 2년이나 걸린 이 영화를 찍는 동안 미후네 토시로는 배역을 위해 수염을 깎지 않고 지내야만 했다. 다큐는 그 영화가 두 사람의 결별에 원인을 제공해 주었음을 내비친다. 수염 때문에 다른 영화 작업을 할 수 없었던 미후네 토시로는 경제적인 어려움에 시달렸다.

  아마도 '거미집의 성(Throne of Blood, 1957)'도 그 원인들 가운데 하나였을지도 모른다. 관객은 다큐에서 놀랍고도 흥미로운 사실을 알게 된다. 셰익스피어의 희곡 '맥베스'를 원작으로 한 이 영화에서 미후네 토시로는 주군을 살해하고 그 자리를 차지한 영주 와시즈로 나온다. 와시즈가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는 결투 장면에서 구로사와 아키라는 궁사들에게 '진짜 화살'을 쏘도록 했다. 당시 영화에 출연했던 배우는 이렇게 회고한다.

  "바로 옆으로 화살이 팍팍 꽂히는데, 너무 무서웠어요. 물론 미리 언질을 받기는 했죠. 위험할 거라는 걸 모두들 알고는 있었지만 누구 하나 반대 할 수 없는, 그런 분위기였습니다."

  가장 오금이 저렸을 사람은 바로 미후네 토시로였다. 그 장면에서 미후네 토시로의 얼굴은 자신에게 미친듯이 쏟아지는 화살을 바라보며 공포와 두려움으로 일그러진다. 그 진짜 화살을 쏘는 이들은 게다가 아마추어인 대학 양궁부 부원들이었다. 일본어 위키피디아에는 그 뒷이야기가 나와있다. 촬영이 끝나고 분을 이기지 못한 미후네 토시로는 술에 취해 산탄총을 들고 구로사와 아키라의 집에 찾아가서 행패를 부렸다. '어이, 좀 나와보라구(こら! 出て来い)!' 영화의 그 무시무시한 장면을 보면, 그렇게 악다구니를 쓸만도 하겠다 싶다.

  미후네 토시로는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을 은인으로 여겼다. 구로사와 아키라와 함께 하면서 그는 일본의 배우에서 세계적인 배우가 될 수 있었다. 하지만 영광스러웠던 과거를 뒤로 하고 둘은 'Red Beard'를 끝으로 각자의 길을 걸어갔다. 다큐는 그 이유에 대해 명확한 답을 들려주지는 않는다. 그들의 가족과 동료들의 증언은 매우 조심스럽게 들린다. 일본 영화사의 두 거목에 대한 언급이 꽤나 부담스럽기도 할 것이다. 심지어 미후네 토시로의 아들도 '그 부분은 잘 모르겠다'며 말을 아낀다. 1948년작 '술 취한 천사(Drunken Angel)'에서부터 시작된 두 사람의 관계는 그렇게 끝났다. 

  미후네 토시로는 시대극에 치우친 작품 활동에 매진했다. 미국을 비롯해 해외에서의 영화 작업도 병행했다. 그런 그와는 달리 구로사와 아키라의 경력은 쇠락해 갔다. 외국에서 그의 명성은 높아가고 있었지만, 정작 그는 일본에서 활동 기반을 잃은 상태였다. 그들에게 좋은 날은 다시 오지 않았다. 미후네 토시로는 그저 그런, 비슷한 시대극을 찍으며 연기 역량을 소모해 버렸다. 외국에서 제작한 구로사와 아키라의 영화들 또한 그다지 주목을 받지는 못했다.

  이 다큐에는 1950년대와 1960년대 일본 영화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이들이 나온다. 'The Bad Sleep Well(1960)'에서 미후네 토시로와 공연했던 배우 카가와 교코(香川 京子)는 너무나도 곱게 나이든 얼굴로 나온다. 할머니 스크립터는 짱짱한 목소리로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과 함께 했던 시간을 증언한다. 백발이 성성한 단신의 영감님은 아직도 찬바라 연기 지도를 하며 미후네 토시로와의 무술 연기를 떠올린다. 다큐는 일본 영화 속 마지막 사무라이로 기억될 한 배우의 인생을 돌아보며 전후 일본 사회에 대한 조망도 빼놓지 않는다. 강제 징집되어 공군에 복무했던 미후네 토시로는 카미카제 대원들의 교관이었다. 미후네 토시로는 무고한 젊은이들을 사지로 떠나보냈던 참혹한 기억을 잊지 않았다. 영화 속에서 그가 연기한 체제 반항적 이미지의 캐릭터들은 어쩌면 연기가 아니라 그의 내면적 본질과 맞닿아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사진 출처: themoviedb.org         미후네 토시로와 구로사와 아키라


**사진 출처: themoviedb.org             


***미후네 토시로 주연의 영화 '신선조(新選組, Shinsengumi, 1969)' 리뷰

https://sirius1001.blogspot.com/2021/08/shinsengumi-1969.html


미후네 토시로가 단역으로 출연한 후기작 '윈터 킬(Winter Kills, 1979)' 리뷰
https://sirius1001.blogspot.com/2021/05/winter-kills-197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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