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rd Times(1975)
The Driver(1978)
The Warriors(1979)
48 Hrs.(1982)
Last Man Standing(1996)
1. 월터 힐의 영화 속 방랑자들
남자는 황량한 사막을 가로지르며 차를 운전 중이다. 낮게 깔리는 남자의 내레이션이 이 영화가 그의 시점에서 진행될 것임을
알려준다. 운전을 하며 술을 들이키다 내린 그는 술병을 땅바닥에 놓고 돌려 본다. 술병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다시 차를 모는 남자.
그렇게 존 스미스(브루스 윌리스 분)는 멕시코 국경 근처 제리코 마을에 도착한다. 그런데 어째 이 마을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한 무리의 갱단원들이 몰려와서 스미스의 차를 망가뜨린다. 근처 술집으로 들어간 그는 술집 주인으로부터 대강 이 마을의 돌아가는
꼬라지를 알게 된다. 밀주업을 하는 두 개의 갱단이 서로 물어뜯으면서 마을을 장악하고 있었던 것. 보통 사람 같으면 오금이 저려서
떠나련만 스미스는 자신의 차를 망가뜨린 갱단의 사무실을 찾아간다. 존 스미스, 그는 제리코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Last Man Standing(1996)'은 구로사와 아키라의 '요짐보(Yojimbo, 1961)'에서
거의 대부분의 설정을 따왔다. '요짐보'에서 미후네 토시로가 연기한 낭인(浪人, ろうにん) 산주로는 긴 막대기로 자신의 갈 길을
정한다. 그렇게 도착한 마을의 초입에서 그는 비쩍 마른 개가 사람의 손목을 들고 있는 것을 본다. 시나리오를 직접 쓴 월터 힐은
산주로의 막대기를 스미스의 술병으로, 개는 백마의 사체로 대체한다. 구로사와 아키라에 대한 월터 힐의 경배에 가까운 모방은 이
영화가 처음은 아니다. 'The Warriors(1979)'에서 워리어스 갱단의 스완이 자신의 적대자와 대결할 때, 그는 총을 든 상대방의 손목에 단검을 던진다. 이 장면 역시 '요짐보'의 마지막 결투 장면에서 차용한 것이다. '48시간(48 Hrs.,1982)에서 형사 잭(닉 놀테 분)은 흉악범에게 자신의 총을 뺏긴다. 이 설정은 구로사와 아키라의 'Stray Dog(1949)'에서 신참 형사(미후네 토시로 분)가 소매치기에게 총을 빼앗기고 고전하는 것에서 따왔다.
월터 힐의 영화들을 보다 보면 그가 헐리우드 필름 느와르와 사무라이가 등장하는 일본 시대극(時代劇, じだいげき)에 대한 열렬한
애정을 갖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온갖 불의와 악이 횡행하는 세상을 홀로 떠도는 인물. '요짐보'의 떠돌이 무사는 'The Driver(1978)'의 '드라이버(이 영화에서 모든 등장인물들은 이름이 없다)'로, 'Hard Times(1975)'에서는
대공황 시대 길거리 복서 '채니(찰슨 브론슨 분)'가 된다. 그들은 세상을 바꾸거나 악인과 응징하는 데에는 관심이 없다. 월터
힐이 창조해낸 세계의 '고독한 늑대(Lone Wolf)'들은 오직 자신의 생존에만 집중할 뿐이다. 그들이 외부 세계의 타자와
관여하는 경우는 아주 인간적이고 개인적인, 사소한 감정적 유대가 얽혔을 때이다.
'Hard Times'의 가난한
막노동꾼 채니는 그저 여비나 벌려고 길거리 복서로 나선다. 그런데 그의 매니저가 된 스피드는 허랑방탕한 인물로 도박빚 때문에
채니를 갱단에 넘기려 한다. 분노한 채니는 떠나려 하지만, 스피드가 갱단의 손에 죽을 위험에 처하자 마음을 바꾼다. '라스트 맨
스탠딩'의 스미스는 또 어떤가? 자신과 아무 상관도 없는 여자 구하려고 목숨을 내건다. 그들의 관심사는 돈도, 정의도 아니다.
'요짐보'에서 산주로가 마을 악당에게 유린당한 불쌍한 아낙네를 구하기 위해 결투에 나서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악의 구렁텅이 같은 세계, 고독한 방랑자. 법과 정의는 너무나 먼 곳에 있다. 믿을 것이라고는 자신 뿐이다. 'Hard
Times'의 채니는 강한 맨주먹, 'The Driver'는 신기에 가까운 운전 솜씨, '라스트 맨 스탠딩'의 스미스는 자신의
총을 가지고 불의한 타자, 세상과 맞선다. 월터 힐은 자신이 만든 모든 영화는 '서부극'이라고 말한 바 있다. 대공황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Hard Times', 현대 대도시의 밤 풍경 속에 펼쳐지는 'The Driver', 금주법 시대의 '라스트 맨
스탠딩', 그 영화들의 주인공은 결국은 서부 시대의 방랑자들인 셈이다. 남북 전쟁 이후의 시대를 배경으로 전설적 강도 제시
제임스가 나오는 'The Long Riders(1980)'야말로 힐의 진짜 서부극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월터 힐의 영화들 속의 방랑자 캐릭터들은 모두 방향성과 목적성을 상실했다. '라스트 맨 스탠딩'의 스미스는 무지막지한 피의
결투를 치룬 후, 악당들의 시신이 산처럼 쌓인 마을에서 최후의 1인이 된다. 그의 차가 지평선을 향해 가며 작은 점이 되듯,
스미스도 사라진다. 악당들이 죽어도 세상은 결코 변한 것이 없으며, 스미스는 황량한 풍경 속의 소실점과 같은 존재일 뿐이다.
'Hard Times'의 채니는 자신의 싸움에 판돈을 모두 걸어서 딴 돈을 스피드에게 던져 주고 떠난다. 'The Driver'의
드라이버는 받기로 한 돈을 사기당해 한 푼도 건지지 못한다. 그러한 필연적 소멸 속에서 몸부림치는 그들에게 유랑은 그 자체로
삶이 된다.
2. 반영웅의 서사와 결합한 폭력의 미학
그렇다면 월터 힐의
영화는 사회 구조와 체제에 철저히 무관심하다고 말할 수 있는가? 'The Warriors'는 그에 대한 답을 제공해 준다. 솔
유릭(Sol Yurick)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The Warriors'에서는 뉴욕시를 배경으로 도시의 지하 세계를
장악한 청년 갱단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솔 유릭은 뉴욕시 복지 담당 공무원으로 일하면서 10대 비행 청소년들의 삶을 가까이에서
접했다. 그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1965년에 발표한 소설이 'The Warriors'였다. 10대 청소년 갱단은 영화 속에서
20대 청년들로 바뀌었고, 폭력과 성에 대한 과도한 묘사도 수위가 낮춰졌다. 그럼에도 이 영화는 날것 그대로의 폭력을 극단적으로
그려낸다. 지하철 화장실에서 갱단들끼리 맞붙은 싸움에는 야구 방망이에 뼈와 살이 쉴 새 없이 으스러진다.
힐은 이
폭력의 서사에 불평등한 체제와 계급 갈등을 슬며시 끼워 넣는다. 워리어스 갱단원 스완은 자신을 따라온 빈민가 소녀 머시와
지하철에 탔다가 잘 차려입은 같은 또래와 마주친다. 아마도 흥청거리는 파티에서 방금 빠져나온 것 같은 그들은 스완과 머시를
경멸하는 눈초리로 바라본다. 서로 만날 일이 없을 것 같은 본질적으로 분리된 두 계층의 젊은이들은 심야 지하철에서 조우한다.
그들이 내리면서 떨어뜨린 꽃을 스완은 주워서 머시에게 건넨다. 그 장면은 'The Warriors'에서 가장 아름답고도 슬프게
느껴진다. 월터 힐은 구조적인 빈곤 속에서 폭력의 악순환에 빠져드는 하층민 계급의 젊은이들에 대한 연민과 위로를 보여준다.
체제에 대한 비판은 'The Long Riders'에서 다소 퇴행적이고 우회적인 방식으로 강조된다. 재건 시대가 끝난 후,
남부는 북부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조금씩 자신들의 이전 세계와 가치관을 복구해 나가기 시작한다. 제시 제임스(Jesse
James)는 그 힘의 공백기를 휘젓고 다닌 악당이었다. 그는 남북 전쟁 이전에는 노예제 반대주의자들을 응징하는 잔혹한 민병대
부대에 몸담았다. 뼛속 깊이 남부인이었던 제임스는 자신의 강도 행각을 남부의 정치적 입장과 결부시켰다. 그는 남부인들에게는 패배한
전쟁의 상처받은 자존심을 일으켜 세우는 영웅으로 떠받들여졌다. 물론 연방정부 입장에서는 제거해야할 범죄자들이었다.
월터 힐은 제시 제임스 갱단의 범죄 행각을 반영웅의 서사로 그려낸다. 무고한 인명을 뺏지 않으며, 서로 끈끈한 의리로 맺어진
의적 집단. 갱단이 은행과 열차를 무차별적으로 습격하는 장면은 반복적인 슬로 모션으로 재현된다. 그들이 입고 있는 긴 외투는
실질적으로는 불편한 것이 분명하지만, 질주하는 말 위에서는 너무나도 멋지게 휘날리며 인위적으로 의적의 이미지를 덧칠한다. 그들과
대립하는 핑커톤 탐정 사무소의 행각은 비도덕적인 것으로 부각된다. 사무소 직원들이 제임스의 본가에 불을 질러 어린 막내 동생을
죽게 만들었을 때, 갱단은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의 위치에 놓인다. 이 전복적 대립의 구도는 갱단이 자신들의 범죄 행위를 시대의
불운으로 돌리며 정당화한다는 점에서 명백히 퇴행적이다.
"만약 전쟁이 나지 않았다면, 우린 뭔가 다른 일을 하고 있었겠죠."
(If it weren't for the war, we might have been something else.)
남북 전쟁이 자신들을 강도로 만들었다는 이러한 자의식은 남부인의 상처받은 자존감과 북부에 대한 반감을 내포한다. 영화는 무자비한
갱단의 강도 행각을 낭만적 남부 의적단의 신화로 은밀하게 포장한다. 이것은 프랭크가 형제 제시의 시신을 거두어 장례를 치루기
위해 자수를 하는 결말로 완성된다. 비극적인 막내 동생의 죽음에 이어 동료의 배신으로 인한 최후. 박해받는 반영웅의 서사에서
시대와 정치의 희생양이라는 그럴듯한 도금칠은 극대화된 폭력의 미학과 단단히 결합한다.
*사진 출처: themoviedb.org
**사진 출처: themoviedb.org
***사진 출처: en.wikipedia.org 월터 힐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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