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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과 고독의 서사, Walter Hill 감독의 영화 세계 2부

 

Hard Times(1975)
The Driver(1978)
The Warriors(1979)   
48 Hrs.(1982)
Last Man Standing(1996)



3. 여성: 월터 힐 영화의 하위 주체(subaltern)


  앞의 글에서 월터 힐 영화 속 남성 캐릭터들이 주류 사회에서 소외된, 이른바 '외로운 늑대'임을 언급했다. 그들은 타자와 관계를 맺는 것에 별 다른 관심이 없거나, 그것을 갈구하더라도 결국 그 소망은 좌절된다. 그보다 더 안좋은 경우는 타자를 학대하거나 죽음에 이르게 만드는 것이다. 월터 힐의 영화들에서 특히 여성 캐릭터들이 일관되게 열등하고 부수적인 위치에 놓여있음을 보게 된다. 영화 속 남성 캐릭터들은 주류 사회에서 밀려난 주변부 인물이지만 그럼에도 여성에 대해서는 지배적 위치를 점하고 있다.

  '48시간'에서 형사 잭(닉 놀테 분)의 여자 친구는 잭과 안정적 관계가 되기를 소망한다. 하지만 잭은 그러한 요구를 회피한다. 여자 친구는 잭의 직업이 얼마나 위험한지 잘 알지 못하며, 전화로 잭에게 투정이나 부릴 뿐이다. 'The Warriors'에서 지역 갱단 리더의 연인인 머시는 워리어스 갱단의 스완에게 마음을 뺏긴다. 머시는 스완의 애정을 갈망하지만, 스완은 그런 머시를 조심스럽게 밀어낸다. 스완에게 중요한 것은 생존이지 사랑이 아니다. 'The Driver'에서 이자벨 아자니가 연기한 '플레이어'는 좀 예외적인 경우이다. '드라이버'와 약간의 인간적 교감을 나누기는 하지만, 둘 사이에는 명백한 거리감이 존재한다. 플레이어가 드라이버에게 감정적으로 종속되지 않는다는 점은 중요하다. 그것이 플레이어를 드라이버의 조력자이면서 동등한 사업 파트너로 존재할 수 있게 해준다.

  하지만 월터 힐의 영화에서 여성은 본질적으로 남성과 대등한 위치에 설 수 없다. 'The Driver'에서 드라이버에게 일감을 소개해주는 커넥션(The Connection) 역의 여성은 거친 남성의 세계에서 살아남지 못한다. 커넥션이 살해당하는 방식은 꽤 충격적이다. 살인범은 베개로 얼굴을 누르고 총을 쏜다. 여성의 얼굴은 지워지고, 목소리는 제거된다. 그것은 역설적으로 말을 할 수 없는 존재로서만 여성의 생존이 보장받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라스트 맨 스탠딩'에서 악당 도일이 집착하는 멕시코 여성 펠리나는 영어를 하지 못한다. 이 여자가 유일하게 말하고 믿는 대상은 '신'이다. 결국 펠리나는 스미스에 의해 구출되어 목숨을 건진다. 펠리나와는 달리 도일의 정부(情婦)로 스미스의 유혹에 넘어간 루시는 도일에 의해 귀가 잘린다. 자신의 일, 욕망, 목소리를 지닌 여성들은 남성들에게 위협의 대상이 된다. 그러므로 안전을 위해 제거되어야만 한다.

  여기에 덧붙여 '48시간'의 여성 캐릭터들에게 투사되는 관음증적 욕망은 매우 노골적이다. 성인 전용 클럽에서 무대 위 반라의 여성은 선정적인 춤을 춘다. 형사 잭은 살인범을 잡기 위해 감옥에서 범인의 동료 레지(에디 머피 분)를 잠시 빼내온다. 함께 임무를 완수한 레지가 감옥으로 다시 돌아가기 전에, 돈을 줘서 레지가 원하는 대로 매춘부와 보내게 해준다. 그것은 인간미 넘치는 잭의 배려인가? 그도 그럴 것이 잭과 레지 사이에는 48시간 동안의 특수 임무 동안 기묘한 동지 의식이 생겼다. 미국 사회에서 하위 주체라고 할 수 있는 흑인 죄수 캐릭터가 결국은 백인 경찰과 연대하고 유대감을 쌓는 것. 그 또한 남성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이 영화는 크게 흥행에 성공함으로써 월터 힐에게 감독으로서의 활로를 열어주었다.


 
4. 긴 여정의 시작, Red Harvest

  '라스트 맨 스탠딩'이 '요짐보'의 금주법 시대 버전임은 이미 기술한 바 있다. 그렇다면 '요짐보'는 구로사와 아키라의 독자적 창작물인가? 그는 자신의 영화가 1942년작 필름 느와르 'The Glass Key(1942)'에서 많은 아이디어를 가져왔다고 밝혔다. 대실 해밋(Dashiell Hammett)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이 영화는 갱단과 정치인이 얽힌 복마전과 같은 도시의 어둠을 그린다. 주인공 에드는 뒷골목 건달로 예기치 못한 살인 사건에 휘말린다. 그는 살인 사건의 해결을 위해 고군분투한다. 그런데 이 영화보다 '요짐보'의 원형을 제공하는 대실 해밋의 소설은 따로 있다. '붉은 수확(Red Harvest)', 1929년에 해밋이 발표한 첫 탐정소설이었다. 매우 건조하고 명료한 문체를 특징으로 하는 하드보일드(Hardboiled) 스타일이 무엇인지 이 소설을 보면 알 수 있다.

  '나는 부엌으로 가서 작업(지문을 지우는 일)을 반복했다. 죽은 여자의 옆에 조심스럽게 무릎을 구부리고 손수건을 꺼냈다. 그리고 얼음 송곳에 내 지문에 조금도 남아있지 않도록 꼼꼼히 닦아냈다. 유리잔들, 술병들, 방 안의 모든 문들, 전등 스위치, 내 손이 닿은 가구 전부, 어쩌면 닿았을 지도 모르는 모든 물건들에 대해서도 같은 일을 했다. 그런 다음에 손을 닦았다. 내 옷에 혹시 핏자국이 남아있지 않은지 살펴 보았다. 그 어떤 내 소지품도 그곳에 남아있으면 안되었다. 나는 현관문 앞에 섰다. 문을 연 다음 안쪽 손잡이를 닦고, 바깥쪽도 그렇게 했다. 마침내 나는 그 방에서 떠났다.' Red Harvest, 21장  
 
  In the dining room again, I knelt beside the dead girl and used my handkerchief to wipe the ice pick handle clean of any prints my fingers had left on it. I did the same to glasses, bottles, doors, light buttons, and the pieces of furniture I had touched, or was likely to have touched. Then I washed my hands, examined my clothes for blood, made sure I was leaving none of my property behind, and went to the front door. I opened it, wiped the inner knob, closed it behind me, wiped the outer knob, and went away.

  소설의 주인공은 콘티넨탈 탐정 사무소의 요원 Op(operative, 사립 탐정을 의미하는 속어), 그는 이름이 없는 인물로 나온다. 'Personville'이라는 도시에 의뢰인을 만나기 위해서 온 그는 도착하자마자 자신의 의뢰인 도널드가 살해당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도널드의 부친 엘리후는 유력한 거물로 도시에 큰 영향력을 갖고 있는 인물이다. 엘리후는 Op에게 도시를 장악한 갱단들을 쓸어버릴 것을 요구하며 사건 해결을 일임한다. 퍼슨빌의 사람들은 자신들의 도시를 'Poisonville'로 부른다. 폭력과 범죄가 공기처럼 스며든 악의 도시, 오직 혼자만의 힘으로 Op는 더러운 도시를 청소할 수 있을까?

  '붉은 수확'에서 Op는 악인들과 대적하는 동안 그들과 같은 괴물이 되어간다. 거짓말, 협박, 사기. 그는 도시의 악덕을 체화하고 그 공기를 들이키며 포이즌빌의 사람이 되어간다. 갱단들 사이를 이간질시키고, 부패한 경찰로 하여금 그들을 치게 만든다. 계속해서 시체가 쌓이는 동안 Op는 자신의 손에 피 한 방울 묻히지 않는다. 그는 그 죽음들에 일말의 부채의식도 느끼지 않는다. 심지어 퍼슨빌에서 유일하게 마음을 터놓고 지낸 정보원이며 조력자인 디나가 살해당했을 때에도 동요하지 않는다.

  잠에서 깨어난 그가 디나의 시신을 발견한 후 한 일은 현장에서 자신의 흔적을 없애는 것이었다. 대실 해미트가 묘사한 그 부분의 문장들을 한 번 보라. 마치 칼로 잘라낸 것처럼 군더더기도 없고, 어떤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다. 선과 악, 그 어느 편에 속하지 않는 회색지대에서 배회하는 '붉은 수확'의 Op는 냉정한 관찰자의 시점을 유지한다. 대실 해미트가 창조한 이 인물이야말로 이후 등장한 '고독한 늑대'의 원형(archetype)이 되었다.    

  '붉은 수확'의 Op는 영화 'The Glass Key'의 에드, 그리고 '요짐보'의 산주로가 된다. 그리고 구로사와 아키라의 영화에서 영감을 받은 월터 힐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인물을 재창조했다. 'Hard Times'의 채니에서부터 '라스트 맨 스탠딩'의 스미스까지, 힐이 만든 캐릭터들에는 모두 컨티넨털 탐정 사무소 요원 Op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다시, 이 글의 시작을 열었던 영화 '라스트 맨 스탠딩'으로 돌아간다. 이 영화는 처참한 흥행 실패를 기록했다. 이미 조금씩 무너지고 있었던 월터 힐의 경력은 급격한 내리막길에 접어든다. 이후 그가 찍은 영화들은 혹평을 받으며 관객들에게도 외면당했다. 말 그대로 '죄다 말아먹었다'. 나는 이 글을 쓰기 위해 '라스트 맨 스탠딩'을 두 번 보았다. 분명 좋은 영화는 아니었다. 하지만 생각할 거리가 있었다. 왜 이 영화는 망했는가? 때로 어떤 실패한 영화는 그 원인을 복기하기 위해 다시 볼 필요가 있다.

  모든 것이 너무나도 과했다. 영화가 관객에게 매혹을 선사하는 지점은 현실을 떠올리게 만드는 그럴듯한 핍진성(逼眞性)이 생겨날 때이다. 그런데 '라스트 맨 스탠딩'은 그 지점을 넘어선다. 과도한 폭력, 과도한 클리셰(cliche), 심지어 음악과 사운드 마저도 과도하게 느껴진다. 모든 것이 비현실적이며, 관객은 곧 이 영화의 모든 것이 가짜라는 사실과 직면한다. 물론 우리가 보는 영화는 재현된 가공의 현실일 뿐이다. 그것이 진짜 현실이 아님에도, 관객은 언제나 진짜라고 믿고 싶어 한다. 월터 힐의 이 영화는 그 믿음을 철저히 배반한다.

  나에게 '라스트 맨 스탠딩'은 마치 잘못 탄 기차처럼 여겨졌다. 때로 영화를 본다는 것은 여행을 떠나는 것과 같다고 느낀다. 엉뚱한 목적지에 내려서 풍경을 바라보는 일도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다. 그곳에서 대실 해밋의 '붉은 수확'을 발견했고, 월터 힐이 자신의 영화 여정을 시작한 곳이 어디인가를 알 수 있었다. 우리는 그의 여정을 복기하면서 비슷한 길을 걸어간 다른 감독들도 알게 된다. 홍콩 느와르를 이끌었던 오우삼 영화의 미학은 월터 힐과 닮아있다. 세르지오 레오네, 마틴 스콜세즈, 스티븐 스필버그, 코엔 형제, 그리고 타란티노까지 그들은 하나의 강에서 흘러나온 지류들이다. 월터 힐은 자신만의 감각으로 폭력과 고독의 서사를 써내려 갔다. 그의 영화적 지류를 탐험해 보는 것도 괜찮은 선택이다. 


*사진 출처: en.wikipedia.org    'Red Harvest(1929)' 초판본 표지



**월터 힐의 영화 'The Driver(1978)' 리뷰
https://sirius1001.blogspot.com/2022/01/1970.html


***다큐멘터리 'Mifune: The Last Samurai(2015)'는 영화 'Yojimbo(1961)'의 배우 미후네 토시로의 영화 인생을 돌아본다. 일본 영화사에 관심이 있는 이들이라면 보는 것을 추천한다. 이 다큐는 documentarymania.com에서 무료로 볼 수 있다. 영어 자막이 제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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