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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보수 우파의 LGBT 공포증, What is a Woman?(2022)

 

  한 남자가 자신이 궁금해하는 질문 하나를 지독하게 파고 든다. 'What is a Woman?' 남자는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다양한 분야에서 여러 사람들과 만나 이야기를 나눈다. 의사와 심리학자를 비롯해 정치인, 교수, 그리고 저 멀리 케냐까지 가서 마사이 부족을 만난다. Justin Folk의 다큐 'What is a Woman?(2022)'은 6월에 미국에서 개봉된 후 격렬한 논쟁을 촉발시켰다. 이 다큐를 이끌어 가는 이는 미국의 보수 정치 평론가 Matt Walsh. 그는 '여성'이란 단어의 정의(definition)가 매우 궁금하다. 그런데 그 궁금증의 이면에는 non-binary(제 3의 성, 트랜스젠더나 젠더 퀴어에 속하는 이들)에 대한 혐오가 내재되어 있다.

  Journey. 이 다큐는 성차(sex differences)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지닌 보수 정치 평론가의 도발적인 탐구 여정이다. 그는 생물학적 성을 부정하는 이들, 특히 트랜스젠더를 LGBT Movements가 만들어낸 비현실적 존재로 인식한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막무가내로 억지 소리를 쏟아내지는 않는다. 과연 '여성'을 어떻게 정의할 것이냐에 대한 매트 월쉬의 질문은 전문가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진지하게 공명한다. 트랜스젠더이면서 성전환 수술 전문의가 된 의사, 페미니스트 성심리 상담가, 성전환시술인 호르몬 요법을 전문으로 하는 내과 의사, 젠더 연구 전문가인 사회학과 교수... 월쉬의 인터뷰는 '젠더(gender, 사회적으로 획득한 성정체성)'의 실제적 근거에 끊임없이 의문을 제기하며 공격적으로 진행된다. 그는 '젠더'를 터무니없는 허상으로 인식한다.

  케냐로 날아간 월쉬는 마사이족들과의 인터뷰를 자신의 신념에 단단하게 덧댄다. 마사이 족장은 'non-binary'를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월쉬의 질문에 웃음을 터뜨린다. 마사이족 사람들에게 그건 듣도 보도 못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 지점에서 '트랜스젠더'는 기이한 이형적 존재로 새삼스럽게 각인된다. 이제, 보수 정치 평론가는 성 정치 운동을 자신이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거대한 기만극으로 확신한다. 그는 TV와 영화와 같은 문화 컨텐츠들이 LGBT에 대한 긍정과 호감의 메시지를 양산하고 있다고 언급한다. 그러한 환경이 특히 청소년들의 'gender dysphoria(sex와 gender의 불일치에서 오는 불행감)'를 조장하며, 결과적으로 트랜스젠더의 삶으로 내몰고 있다고 비판한다.

  'What is a Woman?'은 굉장히 논란의 여지가 많은 다큐임에도 여러모로 시사하는 부분도 있다. 트랜스젠더가 되려는 청소년들이 감수해야 하는 의학적 위험을 다룬 점이 그러하다. 호르몬 요법에 쓰이는 약물의 장기적인 추적 연구가 없다는 점, 또한 비가역적인 신체 변화를 가져오는 수술의 후유증이 관객에게 객관적 정보로 주어진다. 아마도 이 다큐는 LGBT 운동가들에게는 악의적이고 편협한 시각에서 제작된 한심한 다큐일 것이다. 그런 이유로 많은 언론과 평론가들이 이 다큐에 대한 논평을 거부했다(출처: en.wikipedia.org).

  그러한 관점과는 별개로 종횡무진, 도발적 질문으로 여기저기 들쑤시고 다니면서 자신의 논지를 설파하는 매트 월쉬를 보는 일은 꽤 흥미롭다. 이 다큐가 취하는 접근 방식은 마이클 무어의 '로저와 나(Roger & Me, 1989)'를 떠올리게 만든다. 미시간주 플린트 출신의 백수 다큐멘터리 제작자는 불굴의 의지로 GM의 수장을 만난다. 마이클 무어는 고향 플린트를 유령 도시처럼 만들어버린 GM의 공장 폐쇄를 따질 요량이었다. 하지만 그는 아무 대답도 듣지 못한다.

  그 허망한 결말에 이르기까지 무어의 여정은 미국 사회의 계층적 간극과 주변부의 황폐한 풍경을 담는다. 'What is a Woman?'의 매트 월쉬의 여정은 어떤 의미에서 성적 다양성 담론에 대한 보수 우파의 극렬한 공격처럼 보이기도 한다. 6월 24일, 미국 대법원은 여성의 낙태권을 지지한 'Roe v. Wade(1973)'의 판결을 뒤집었다. 미국 사회에서 성적 소수자의 신체에 대한 자기 결정권도 그렇게 제한받게 될 날이 올까? 어떤 관객들은 이 다큐를 보며 그런 음울한 질문을 던질 법도 하다.



*사진 출처: themoviedb.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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