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는 한참을 망설이다가 무언가를 결심한듯 마침내 여자의 이름을 부른다. 키요코(타카미네 히데코 분)는 남자의 얼굴을 바라본다.
찻집에는 그들 말고 다른 손님은 없다. 그때, 주인이 카운터로 나온다. 주인을 보더니 그 남자 켄키치(미후네 토시로 분)는 다시
침묵을 지킨다. 무더운 여름날, 두 사람은 잠시 소나기를 피하기 위해 그곳에 들어왔다. 그들은 서로의 감정을 잘 알고 있지만,
이제까지 그것을 입 밖으로 내어본 적은 없었다. 곧 비가 그치고 그들은 찻집을 나선다. 영화 '아내의 마음(妻の心, A Wife's Heart, 1956)'에서 인물들의 감정은 매우 절제되어 있다. 그 남자 켄키치의 감정을 보여주는 것은 세차게 내리는 빗줄기이다. 나루세 미키오는 인물의 감정을 자연 현상과 결합시킨다. '야성의 여인(あらくれ, Untamed, 1957)'에서도
이와 비슷한 장면이 있다. 욕망에 끌린 남자가 여자에게 다가갈 때, 두 사람이 함께 하는 장면은 나오지 않는다. 나루세 미키오는
그들 사이에 일어난 격한 감정의 떨림을 나뭇가지에 쌓인 두터운 눈이 갑작스럽게 떨어지는 것으로 대신한다.
키요코와 신지는 결혼한지 5년이 되었다. 부부는 작은 잡화상을 하고 있지만 가게는 잘 되지 않는다. 궁리 끝에 가게 옆의 공터에
음식점을 내기로 한다. 키요코의 시어머니는 괜한 일을 벌인다며 못마땅해 한다. 어떻게든 삶의 활로를 찾아보려는 부부. 키요코의
친구 유미코에게는 은행원 오빠 켄키치가 있다. 켄키치의 도움을 받아 대출을 받은 키요코는 가게를 낼 꿈에 부푼다. 그즈음,
키요코의 큰동서가 어린 딸을 데리고 온다. 곧이어 실직한 시아주버니까지 집에 들어앉는다. 시아주버니는 자신도 가게를 내겠다며
키요코에게 대출을 받아달라고 부탁한다. 시어머니와 큰동서는 은근히 키요코를 압박한다. 키요코는 곤란한 지경에 처했는데, 남편이란
작자는 게이샤와 온천 여행을 갔다온다. 아내는 열불이 난다.
나루세 미키오의 영화에서 '돈'은 언제나 문제가
된다. 인물들의 갈등은 돈 문제에서부터 시작된다. 영화 '아내의 마음'에서도 키요코 부부와 시댁은 돈에 쪼들린다. 시어머니는
하나뿐인 딸을 시집보낸다며 혼수로 많은 돈을 썼다. 키요코에게 새 가게는 부부의 꿈이 담긴 곳이다. 그런데 그것을 위해 어렵게
빌린 대출금은 시아주버니 차지가 된다. 돈 때문에 상심한 부부의 사이에는 틈이 생긴다. 남편이 밖으로 나도는 동안, 키요코는
친절한 켄키치에게 마음이 기운다.
나루세 미키오는 서서히 엉클어지는 키요코의 일상을 작은 소품으로 드러낸다.
손톱깎이를 찾던 키요코는 그것을 큰동서가 전혀 엉뚱한 곳에 두었음을 알게 된다. 고루한 시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것도 버거운데,
시아주버니 내외와 그 딸까지 들어앉았다. 꿈꾸던 가게는 물거품이 되었다. 그러한 상황에서 바람난 남편이 곱게 보일 리가 없다.
키요코의 무심함은 떨어진 단추를 달아달라는 남편의 요구를 일축하는 데에서 드러난다. 키요코가 빨래를 하지 않아서 남편은 입었던
셔츠를 또 입어야할 판이다.
아직 아이가 없는 이 부부를 이어주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는 불명확해 보인다. 이
부부의 시작을 추측해볼 수 있는 대사가 나오기는 한다. 유미코는 오빠 켄키치에게 키요코가 별다른 애정없이 결혼했다고 말한다.
그것은 키요코의 말을 통해서 분명해진다. 유미코의 결혼이 늦어지는 것을 켄키치가 걱정하자, 키요코는 자조적으로 말한다. '유미코가
현명한 거에요. 생각없이 한 결혼은 나중에 두통거리가 될 뿐이니까요.' 그러한 것을 볼 때 키요코의 결혼은 낭만적인 사랑으로
지탱되는 것은 아니다.
부부에게 있어 애정은 결혼 생활의 절대적인 조건인가? 그렇다면 키요코는 남편을 떠나는 것이
맞다. 남편은 함께 온천 여행을 갔던 게이샤가 자살했다는 소식을 알린다. 그는 상심한 키요코에게 자신을 떠나 켄키치와 새로운
출발을 해도 좋다고 말한다. 신지가 키요코에게 그 말을 하는 장소는 그들 부부가 새로 음식점을 내기로 한 공터이다. 부부의 꿈이
깃든 그곳에서 키요코는 이제 고통스런 결별을 떠올리게 된다. 비록 켄키치가 말로 표현은 하지 않았지만, 키요코는 자신을 좋아하는
켄키치의 마음을 안다.
키요코는 결국 남편의 곁에 머무르기로 결심한다. 나루세 미키오의 영화 '아내(妻, Wife, 1953)'와 '안즈코(杏っ子, Little Peach, 1958)'의
여주인공들은 가부장제적 인습에 스스로를 가두고 불행한 결혼 생활을 이어간다. 하지만 키요코의 결심은 그 여성들과는 결을
달리한다. 키요코는 새로 개업한 가게를 부러움의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 남편을 발견한다. 키요코는 부부가 함께 꾸었던 미래를
떠올린다. 아내는 이제 남편을 애정의 대상이 아니라 인생을 함께 헤쳐나갈 동반자, 한 인간으로 바라보게 된다. 부부는 다시 한번
새롭게 출발할 기회를 얻는다. 그렇게 영화 '아내의 마음'은 나루세 미키오가 그려낸 결혼의 초상으로는 드물게 희망의 빛을
드리운다.
*사진 출처: themoviedb.org
**사진 출처: mifuneproductions.co.jp
***나루세 미키오 영화 리뷰
아내(妻, Wife, 1953)
https://sirius1001.blogspot.com/2021/07/wife-1953.html
야성의 여인(あらくれ, Untamed, 1957)
https://sirius1001.blogspot.com/2022/07/untamed-1957.html
안즈코(杏っ子, Little Peach, 1958)
https://sirius1001.blogspot.com/2022/03/little-peach-195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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