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의 중학교 기간제 교사 조 가드너는 학교로부터 정규직 채용 제안을 받는다. 비정규직에서 '비'자가 빠지는, 정말 기쁘고 좋은
소식인데 정작 조는 시큰둥하다. 사실 조에게는 좀 다른 꿈이 있다. 바로 재즈 피아니스트로 성공하는 것. 그런데 의외로 행운은
빨리 찾아온다. 조는 유명 재즈 뮤지션 도로시아 윌리엄스가 이끄는 재즈 콰르텟 오디션에 합격한다. 하늘을 날으는듯한 기분도 잠시,
조는 정말로 자신이 하늘을 날아가고 있음을 깨닫는다. 잠시 한눈을 판 사이에 도로 맨홀에 빠진 그는 바로 저승으로 향하는 천상
계단에 서있게 된 것이다. 잠깐, 난 정말 죽은 게 아니야. 세상에서 해야할 일이 있다구! 조는 그렇게 외치지만 소용없는 일이다.
디즈니 Pixar의 애니메이션 '소울(Soul, 2020)'의
도입부는 주인공의 죽음에서부터 시작한다. 사느냐 죽느냐 이것이 문제로다! 햄릿만 그 대사를 읊조리지 않는다. 우리의 주인공 조도
필사적으로 지구로 돌아가기 위해 애를 쓴다. 사실 이 애니메이션의 도입부는 결코 새로운 것이 아니다. 'Soul'의 스토리적
기원은 1940년대 영화로 거슬러 올라간다. 마이클 파웰(Michael Powell)과 에머릭 프레스버거(Emeric Pressburger)가 공동 감독한 'A Matter of Life and Death(1946)'에
있다. 갑작스럽게 죽음을 맞이하게된 전투기 조종사는 천국 안내자의 실수로 목숨이 연장된다. 그를 저승으로 데려오려는 안내자와
치열한 줄다리기를 하게 되는 주인공. 이 영화에 나오는 천상 세계로 가는 계단을 비롯해 천국의 내부 모습은 'Soul'에서 조가
가게 되는 영혼 세계와 유사하다.
조는 지구에서 태어나기로 예정된 영혼을 훈련시키는 멘토가 된다. 조에게 배정된 영혼은 22번. 인생의 불꽃(spark)를
찾아낸 영혼만이 지구로 내려갈 수 있는 배지를 받게 되는데, 22번은 만나는 멘토마다 번번이 실패했을 정도로 테스트를 통과할
의지가 없다. 어떻게든 22번을 꼬드겨서 지구로 내려갈 방법만을 찾는 조. 조는 자신이 살아온 인생을 22번에게 보여주면서
스스로의 삶을 돌아본다. 피아노를 치는 순간 가장 행복했다고 말하는 조. 이렇게 사후 세계의 주인공이 자신의 삶을 복기하는 모습은
에른스트 루비치(Ernst Lubitsch)의 'Heaven Can Wait(1943)'에서 이미 나온 이야기이기도 하다. 'Soul'의 내러티브는 그런 면에서 본다면 과거 거장의 영화적 유산에 상당부분을 기대고 있는 셈이다.
거인의 어깨어 기대어 손쉽게 출발을 하기는 했지만, 'Soul'의 플롯은 나름대로 독창적이다. 지구에 태어날 영혼을 훈련시키는
영혼 세계의 개념, 그곳에서 멘토가 되는 주인공, 그리고 그의 파트너 22번 영혼. 조와 22번은 조력자
문윈드의 도움으로 지구에 함께 떨어진다. 문제는 조가 자신의 몸이 아닌 고양이로 환생했다는 데에 있다. 22번은 뜻하지 않게 조의
육신으로 살아가게 된다. 한편 영혼 세계의 회계 담당자 테리는 문제가 생긴 것을 알고 그 둘을 찾아 지구에 온다. 과연 이
환장할 영혼의 단짝들은 테리의 추격을 피할 수 있을까...
조의 몸으로 살아가게 된 22번은 멘토들이 아무리 가르쳐주려고 애를 써도 알 수 없었던 그 '불꽃(spark)'을 드디어
찾아낸다. 그것은 가을 단풍나무에서 떨어진 날개 달린 씨앗 하나에 있었다. 22번은 씨앗이 자신의 손에 떨어졌을 때의 그 놀랍고도
황홀한 느낌에 매료당한다. 아, 이게 불꽃이구나... 그리고 22번은 선언한다. 나 이대로 여기에서 살아갈래! 고양이가 되어버린
조의 입장에서는 기가 막힌 일이다. 그건 22번 네 몸이 아니라 내 몸이야. 그걸 가지고 난 해야할 일이 있어. 도로시아
윌리엄스와 공연을 하는 게 내 꿈이라구.
결국 조와 22번은 어떻게 되었을까? 테리한테 붙잡힌 둘을 다시 영혼 세계로 돌아간다. 그뒤의 이야기는 스포일러가 되기 때문에 쓸
수가 없다. 그런데 이 애니메이션을 보고 있노라면 의외로 굉장한 철학적 문제를 다룬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바로 '인생의
의미'이다. '불꽃(spark)'으로 표현되는 그것이 있어야만 영혼 세계의 어린 영혼들은 지구에서 태어날 수 있다. 그런데 정작
우리 가운데 그 '불꽃'이 어떤 것이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아마도 조에게 있어서 그것은 재즈 피아니스트로서
피아노를 칠 때의 기쁨이겠지만, 사실 그러한 순간은 인생에서 그리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영혼 세계의 카운슬러는 조에게
이렇게 말한다. '불꽃, 사실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아.'
매일 주어진 일상, 매 순간에 깃들인 소중함을 깨닫는 것. 22번에게 작은 단풍나무 씨앗이 손에 내려앉았을 때 일어난 일이 그러했다. '인생의 의미는 거창하고 대단한 것이 아니라, 바로 이 순간의 삶을 감사함으로 살아내는 데에 있다.' 애니메이션
영화 'Soul'은 나즈막하지만 분명한 목소리로 그렇게 일러준다. 아, 나는 디즈니의 애니메이션에 인생에 대한 이토록 깊은
성찰이 내재되어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감성이 메말라버린 어른을 위한 철학적이고 아름다운 동화. 아직 'Soul'을 만나지 못한
이들은 조와 22번의 여정을 한번 따라가보길 바란다.
*사진 출처: themoviedb.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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