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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후 미국의 필름 느와르 1: Raoul Walsh 감독의 'White Heat(1949)'

 

단죄받는 모성, 전후 필름 느와르에 드러난 미국 사회의 여성 인식


*이 글에는 영화 'White Heat(1949)'의 결말 부분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자, 이제 나가거라. 네가 아무 문제 없다는 것을 부하들에게 보여줘라."
  (Now go on out. Show them you're all right)


  갱단의 우두머리인 Cody(James Cagney 분)는 지독한 편두통에 시달린다. 코디의 모친 Ma는 아들을 정성스럽게 간호한다. 아들이 기력을 되찾자 어머니는 아들의 등을 떠밀며 강건한 어조로 그렇게 말한다. 아들은 그런 어머니의 말에 순종한다. Raoul Walsh 감독의 'White Heat(1949)'에는 독특한 어머니와 아들이 등장한다. 냉혹하고 잔인한 범죄자 코디는 어머니 앞에서는 그저 말 잘 듣는 아이처럼 보일 뿐이다. 코디는 자신의 갱단원들과 열차 강도를 감행하고 도주 중이다. 코디는 부하에게 총을 건네주며 부상자 동료를 처단할 것을 명령한다. Ma는 잔혹한 갱단 보스인 아들의 그런 모습을 아무렇지 않게 지켜본다. 자식의 범죄 행위를 방조하는 어머니, 영화 'White Heat'의 어머니 캐릭터 Ma의 내면은 아들만큼이나 흉측하게 뒤틀려 있다.

  코디가 애정을 갈구하고 정서적인 안정을 찾는 대상은 어머니 Ma이다. 코디의 정신병 가족력은 그 자신의 반사회적인 성격과 긴밀하게 결합되어 있다. 그는 자신의 내적 불안정성을 어머니의 존재를 통해 해소하려는 모습을 보인다. 코디를 고통스럽게 만드는 편두통은 실은 어린 시절에 어머니 Ma의 관심을 끌려는 꾀병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거짓으로 만들어낸 두통은 어른이 된 갱단 보스 코디에게 진짜 편두통으로 찾아온다. Ma는 그런 아들에게 아낌없이 애정을 쏟는다.

  Ed는 코디가 감옥에 있는 동안 코디를 대신해 갱단을 이끈다. Ed는 코디를 죽이고 자신이 우두머리가 되려는 계획을 갖고 있다. Ed는 걸림돌이 되는 Ma를 제거한다. 코디는 어머니의 죽음을 전해 듣고 광분한다. 교도소의 식당을 미친듯이 휘젓는 코디의 모습은 Ma가 코디에게 미치는 영향력을 가늠하게 만든다. 코디는 어머니이며 동시에 치료자, 조언자인 사람을 잃었다. 그런 Ma의 죽음에 코디의 오른팔 Ed가 관여한 것은 맞다. 하지만 Ed의 계략에 의해 Ma에게 총을 쏜 사람은 코디의 아내이다. 이 지점에서 떠오르는 의문은 이런 것이다. 왜 Ed는 Ma를 직접 죽이지 않았을까? 

  물론 Ed가 보스의 모친을 제거하기 위해 손에 피를 묻히고 싶지 않았을 거라는 추측은 타당하다. 또 다른 이유로는 Ma가 코디의 갱단에서 차지한 특수한 위치에서 기인한다. Ma는 단순히 코디의 모친이 아니라 갱단의 정신적인 지주로서 가모장(家母長)의 역할을 수행한 사람이다. Ma는 수감중인 아들 코디에게 Ed를 자신이 보살피겠다며(take care of) 아들을 안심시킨다. 코디의 갱단은 일종의 유사 가족 관계이며 Ed에게도 Ma는 어머니로 받아들여졌을 것이다. 또 다른 아들로서 Ed는 어머니 Ma를 죽이는 패륜을 직접적으로 저지를 수는 없다. 그러므로 Ed는 자신을 대신할 희생양으로 버나를 고른다. 버나는 남편 코디에게 지닌 시어머니 Ma의 영향력을 증오한다. 버나는 코디가 감옥에 있는 동안 Ed와 불륜의 관계를 맺는다. 버나의 이러한 일탈은 시어머니에 대한 증오심과 성적 욕망이 뒤엉켜 있다. 가모장 Ma는 윤리적인 결함을 지닌 여성 캐릭터 버나의 손에 의해 죽는다.

  영화 'White Heat'의 내러티브는 정신병적인 징후를 지닌 갱단 보스 코디의 범죄 행각을 전면에 배치하고 있다. 코디의 갱단이 저지르는 열차 강도, 도피 행각, 수감중인 코디가 벌이는 탈주극, 그리고 화학 공장에서 벌어지는 최후의 습격까지 영화는 거칠고 어두운 범죄 세계를 부각시킨다. 그럼에도 이 필름 느와르를 지배하는 것은 코디의 모친 'Ma'가 지닌 사악한 영향력이다. 화학 공장에서 경찰과 대치하던 코디는 자살이나 다름없는 선택을 한다. 화학 물질로 가득찬 탱크 뒤에 숨어 있던 코디는 총을 쏘아 탱크를 폭발하게 만든다. 엄청난 화염 속에서 코디는 광기의 희열에 가득차 외친다.

  "해냈어요, 엄마! 엄마 아들은 최고라구요."
  (Made it, Ma! Top of the world!)

 'Top of the world'는 Ma가 아들 코디의 기운을 북돋우기 위해 늘상 하던 말이었다. 범죄자 코디의 생애를 얽매고 있던 가족력으로서의 정신병과 일그러진 모성은 그렇게 '백열(白熱, White Heat)' 속에서 자멸한다. 이 독특한 필름 느와르(Film Noir)는 팜므 파탈(femme fatale)의 경계를 타락한 요부(妖婦)에서 어머니로 확장시킨다. 영화 속에서 Ma가 보여주는 맹목적 모성은 아들을 범죄의 세계로 더욱 깊이 이끌고, 결국에는 Cody를 죽음에 이르게 만든다.

  영화의 이러한 결말은 전후 미국 사회가 지닌 여성 인식을 보여준다. 미국 여성들은 후방 전선(Home Front)에서 군수 공장 등에 취업해서 적극적인 사회 활동을 했다. 무려 1900만 명에 이르는 미국 여성들이 사회 각 분야로 진출해서 일을 했다(출처: en.wikipedia.org). 하지만 전쟁이 끝나자 여성들은 다시 가정으로 돌아와야만 했다. 전쟁 기간 중에 여성들이 담당했던 일자리는 제대 군인들과 남성들에게 넘어갔다. 전후 미국 여성들은 주부, 아내, 엄마로서의 역할에 충실하도록 요청받았다. 'White Heat'의 Ma의 캐릭터에는 가정에 안착하지 못하는 어머니로서의 여성에 대한 비난이 내포되어 있다. 영화는 Ma의 모성을 범죄자의 파멸적 최후와 병치시킨다. 그렇게 영화 'White Heat'는 안온한 가정을 만들어낼 수 없는 어머니와 모성을 단죄한다.

 

*사진 출처: themoviedb.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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