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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2025의 게시물 표시

자작시: 슬리퍼

  슬리퍼 작년 봄에 크록스 슬리퍼를 하나 샀다 나에게 이제까지 슬리퍼는 집 앞에 쓰레기를 버리러 갈 때 신는 것이지, 그걸 신고 어딜 돌아다닌다거나 하는 건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그런데 크록스 슬리퍼를 사고 난 뒤에는 그걸 신고서 가까운 곳에는 편하게 돌아다니게 되었다 물론 맨발로 슬리퍼를 신은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더운 여름에도 양말을 신고 다녔다 막상 슬리퍼를 신고 다니니까 그렇게 편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잘 신고 다니다가 날이 추워지니 슬리퍼를 신으면 발이 시려웠다 하는 수 없이 다시 운동화를 꺼냈다 그런데 매번 운동화 뒤축에 뒤꿈치를 욱여넣는 일이 참으로 귀찮고 번거로웠다 나는 봄 여름 내내 잘 신고 다녔던 슬리퍼를 다시 꺼냈다 발이 좀 시려웠지만, 두툼한 울 양말을 신으니까 나름대로 신을 만했다 아이구 얘야, 춥겠다 네가 돈이 없어서 이 겨울에 슬리퍼를 신고 다니는구나 엄마하고 신발 사러 가자 엄마가 사줄게 엄마는 슬리퍼를 신은 나를 볼 때마다 그렇게 말했다 엄마, 난 슬리퍼가 너무 편해서 그래요 엄마는 내가 한 말을 다음번에는 까맣게 잊어버리므로 나는 나중에는 그래요 엄마, 신발이나 하나 사주세요, 라고 말하곤 했다 얼마 전에는 동네에서 길을 기다가 슬리퍼를 신고 다니는 젊은 여자와 마주쳤다 예전 같으면, 한겨울에 무슨 슬리퍼를 신고 다니나 싶어서 이상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 여자가 마치 잘 아는 사람처럼 반가웠다 아, 당신도 슬리퍼가 편해서 이 겨울에 신고 다니는군 나는 슬리퍼를 신고 다니게 되면서부터 내가 이해하기 어려운 사람들을 좀 다른 시각으로 보게 되었다 엊그제는 반바지를 입고서 아파트 앞에서 담배를 피우는 청년을 보았다 겨울에 반바지라니, 뭔가 참으로 생경스러웠지만 한편으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 저 사람은 열이 많은 사람인가 보군 그래서 반바지가 편한 거야 나는 혼자서 고개를 끄덕거렸다

자작시: 항아리들

  항아리들 며칠 전에 집을 나서는데, 아파트 출입구 뒷편에 못 보던 것들이 잔뜩 쌓여 있었다 크고 작은 장독 항아리들이었다 아마도 누군가 어디서 주워 온 것들은 집에다 둘 데가 마땅찮아서, 거기에다 둔 모양이었다 그냥 하나만 있어도 눈에 거슬리는데, 잔뜩 쌓아둔 모양새가 영 마뜩잖았다 항아리 옆에는 쓰지 않은 화분도 여러 개가 있었다 그곳은 엄연히 공용 부지인데, 그걸 쌓아놓은 인간은 자기 집 마당처럼 쓰고 있었다 그 항아리들을 치우는 방법은 우선 관리사무소에 전화를 하는 것이다 하지만 내 경험상 대부분 관리사무소의 일 처리는 늦고, 그걸 기다리는 것은 꽤나 짜증스러웠다 나는 매번 지나다니면서 그 꼴사나운 항아리를 보는 것이 싫었다 그래서 내가 직접 종이를 써 붙이기로 했다 이곳은 공용 공간입니다 개인 물건을 쌓아두지 마세요 빠른 시일 내에 치워주길 바랍니다, 그렇게 써서 항아리에 붙여놓았다 다음날, 종이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항아리는 여전히 굳건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우이독경(牛耳讀經), 좋게 말해도 알아처먹질 못하는 인간들은 어디에나 있는 법이지 나는 다시 한번 글을 써 붙였다 아파트 공용 공간에 개인 물건 쌓아놓지 마시오 이 항아리들은 불법 폐기물이니, 항아리 주인은 치우시오 그리고 이 종이 함부로 떼지 마시오 CCTV 확인합니다 그 종이를 붙이고 나서 그다음 날, 나는 아파트를 나가는 길에 그 많은 항아리와 화분들이 휑하니 사라진 공터를 확인했다 항아리 주인이란 작자는 도대체 그것들을 어디로 가져간 것일까? 분명히 치울 데가 있음에도 너저분하게 공용 부지에 쌓아놓은 뻔뻔함이 역겨워졌다 그러면서도 나는 문득 그 항아리들의 행방이 궁금해졌다 시골의 장독대에 있는 항아리는 정겨운 풍경이겠지만, 아파트 공터에 쌓여있는 빈 항아리들은 그저 흉물스러운 풍광일 뿐이다 그리하여 나는 단 2장의 종이로 항아리들을 먼 곳으로 보내버렸다          

자작시: 지속 가능한 돌봄

  지속 가능한 돌봄 여자는 아흔 살의 엄마를 요양원에 보내는 문제로 고민하고 있었다 거동이 좀 불편하긴 해도 여자의 엄마는 인지능력에는 그리 큰 문제가 없었다 여자의 고민은 거기에 있었다 인지능력이 아직 남아있는 엄마를 요양원에 보내도 괜찮을까? 여자는 이미 그 엄마를 15년 동안 돌봤다 형제들이 있다고 해도, 돌봄은 미혼인 여자의 몫이나 다름없었다 힘들다는 말이 목까지 차오른 것도 오래되었다 그래도 부모 자식 간의 인연이란 질기디질긴 것이다 여자는 엄마를 어떻게든 보살펴야 한다는 의무감과 이제는 자신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당위성 사이에서 고민했다 쉽게 결론이 나질 않자, 여자는 자신의 사연을 커뮤니티 사이트에 올렸다 어떤 이들은 여자가 마음의 준비가 될 때까지 엄마를 좀 더 보살피라고 했고, 또 다른 어떤 이들은 15년이면 할 만큼 했으니 엄마를 요양원에 보내라고 했다 그 후, 여자가 자신의 글에 달린 그 많은 댓글을 보고 어떤 결정을 내렸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15년이라, 여자가 아픈 엄마와 보낸 그 세월의 이면을 그 누가 가늠할 수 있겠는가? 치매를 앓는 엄마를 보살피면서 나는 지속 가능한 돌봄에 대해 늘 생각하게 된다 엄마가 낮시간만이라도 주간보호센터에 가면 좋으련만, 엄마는 그런 곳에는 절대로 가지 않겠다고 하신다 왜 그러시냐고 물으니, 거기에는 영감들이 있어서 싫으시다는 것이다 그러면 할멈들만 있는 주간보호센터는 가시겠냐고 하니까, 그건 생각해 보겠다고 말씀하신다 아, 할멈들만 있는 주간보호센터가 있기는 있을까? 아마도 그런 곳은 없을 것이다 엄마의 인지능력은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나는 엄마와 함께하는 이 여정이 어떻게 이어질지 전혀 알지 못한다 지속 가능한 돌봄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내가 해야 할 돌봄의 몫을 감당하지 못한다면, 결국 아웃소싱할 수밖에 없다 돈으로 교환되는 돌봄의 자본주의적 아웃소싱, 그것이 불가피한 선택이 되는 순간이 내게도 조금씩, 고통스럽게 다가오고 있다    

자작시: 쇼핑몰 앱에서 길을 잃다

  쇼핑몰 앱에서 길을 잃다 최근 들어서 좀 심해진 습관 하나가 있다 그것은 바로 쇼핑몰 앱에 접속하는 시간이 늘었다는 것이다 전에는 뭔가 필요한 물건이 있으면 앱에 접속해서 구매를 했는데, 이제는 딱히 살 것이 없어도 쇼핑몰 앱에 들어가 본다 특가로 나온 상품이나 기한이 임박해서 싸게 나온 상품을 보면 저걸 사야 할까, 잠깐 생각해 본다 그래서 사게 된 것들은 정말로 필요한 것들과는 좀 거리가 멀다 예를 들면 오렌지잼과 새로 나온 홍차 같은 것이다 오렌지잼은 사놓고는 아직 뚜껑도 열지 않았다 홍차 티백은 별로 기대하지 않았는데 차 맛이 좋았다 뭐랄까, 일단 사놓고 그 물건에 가치를 부여하는 셈인데 이게 소소한 일상의 행복인지 아니면 작은 소비를 통해 골치 아픈 고민에서 주기적으로 도피하는 것인지 생각해 보곤 한다 물론 크게 값나가는 물건을 산 적은 없다 잼이나 홍차같이 확실히 먹을 수 있는 것, 그리고 추리닝처럼 손쉽게 입을 수 있는 옷 같은 것, 주방 세제처럼 조만간 쓰게 될 물건 같은 것 꽤 비싼 물건을 충동적으로 샀다면 후회하겠지만, 이런저런 생필품을 사다 놓는 것이라 과소비라고 할 수도 없다 그러다 보니 쇼핑몰 앱에 접속해서 보내는 시간에 대한 심리적 거부감이랄지, 시간 낭비에 대한 나름의 죄책감이 그냥 허물어져 버린 느낌이 든다 어쩔 때는 그냥 하릴없이 쇼핑몰 앱을 들여다보면서 그 안에서 머물러 있을 때가 있다 뭔가를 사고 싶다는 마음도 들지 않으면서 말이다 그것은 어떤 면에서 삶에 대한 어떤 허기일 수도 있고, 아니면 내가 해결해야 할 문제들로부터 마냥 도피하고 싶은 마음일지도 모른다 지난 새벽에 꾼 꿈에는 집안 가득 빨랫감이 쌓여있었다 빨랫감은 천장 높이까지 그득그득했다 문득, 꿈은 가장 정확한 안내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그 많은 빨래를 어떻게 해낼 수 있을까? 갈수록 쇼핑몰 앱에서 길을 잃고 헤매는 시간이 늘어난다면 빨랫감은 계속 더 쌓이겠지, 나는 자그맣게 한숨을 내쉬었다      

자작시: 회자정리(會者定離)

  회자정리(會者定離) 며칠 전에 왼쪽 눈으로 들어갔던 눈썹이 아직도 나오질 않고 있다 사람의 눈 안쪽은 해부학적으로 막혀있으니, 언젠가는 나올 것이다 나오지 않으면 나중에 안과에 가서 의사한테 빼달라고 하면 된다 그러면 안과 의사는 눈꺼풀을 조심히 뒤집어서 눈썹이 있는가를 볼 것이다 한번은 무슨 검정 실이 들어갔다면서 안과 의사가 그걸 빼주었다 도대체 그 실은 어떻게 눈에 들어간 것일까? 세상에는 내가 알 수 없는 일이 너무도 많다 그 검정 실을 아프지 않게 빼주던 안과 의사는 이제 큰 병원으로 가버렸다 내 눈을 아주 잘 봐주던 의사여서 하는 수 없이 그 의사를 보러 갔다 안과 대기실에는 환자가 너무나 많았다 1시간 넘게 기다려서 의사를 만났더니, 다 괜찮습니다, 그 말만 하고 끝이다 전에는 찬찬히 내 눈을 잘 봐주던 의사는 종합 병원의 시스템에 완벽하게 적응한 것 같았다 내가 진료실에 있던 시간은 5분이 채 되지 않았다 내가 더 나이가 들어 백내장이 오면 그 의사에게 수술을 받아야겠다고 생각했었는데, 그럴 일은 없겠구나 싶었다 회자정리(會者定離), 얼마나 멋진 말인가, 나는 진료실을 나오면서 그 말에 담긴 심오함에 새삼 감명을 받았다        

자작시: K의 죽음

  K의 죽음 그러고 보니 이맘때쯤이었다 갑작스럽게 K의 소식을 들은 때가 나는 인터넷 뉴스 기사에서 K의 이름을 보고, 정말 내가 알던 그 K가 맞는지 기사 속 사진을 한참 동안 들여다 보았다 정말로 K였다 K와는 1년 동안 사진 수업을 함께 들었다 하지만 말을 나눈 적은 별로 없었다 기억나는 몇몇 단편적인 일화들을 떠올려 보면, K는 과묵한 편으로 나름대로 강단 있어 보이는 성격을 갖고 있었다 나는 그런 K에게 거리감을 느꼈다 그 기억 속의 K가 갑자기 놀람 상자 속의 인형처럼 뉴스 기사로 튀어 올랐다 부고 소식이었다 재능 있는 젊은 영화인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아사(餓死)라는 자극적인 단어로 먹칠이 되었다 사람들은 자기가 보고 싶어하는 것만을 보려고 할 뿐이다 K에게는 지병(持病)이 있었고, 그것에 겹겹이 포개어진 불운으로 죽음에 이르게 되었는데도 그걸 제대로 보려는 이들은 드물었다 어느 소설가 양반은 K를 자기 제자로 부르면서 그 죽음에 대해 뭔 글을 썼다 글쓰기 수업 한번 들으면 제자가 되는가? 정작 영화과 동기들과 선생들이 무겁게 말을 아끼는데, 거기에 뭐 얼마나 잘난 지 이름을 알리고 싶어서 그런 글을 쓰는 것인가? 나는 K의 죽음을 둘러싸고 이런저런 말을 보태는 인간들의 작태에 말할 수 없는 참담함을 느꼈다 그때부터 K의 죽음은 내 마음 속 깊이 아픈 닻처럼 내려앉았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K가 있는 추모 공원에 가봐야겠다고 생각했다 1년이란 시간을 함께 보낸 사람으로서 K의 명복을 빌어주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K의 기사를 검색하다가 익숙한 장소를 발견했다 그곳은 내 부친이 모셔진 추모 공원이었다 그 해, 아버지 기일이 되었을 무렵에 나는 추모 공원을 찾았다 추모 공원의 컴퓨터에 고인의 이름을 입력하면 봉안당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다 나는 K의 이름을 천천히, 또박또박 입력했다 그런데 검색 결과가 뜨질 않았다 몇 번을 입력해도 마찬가지였다 여기가 정말 맞아? 기사 한번 다시 확인해 봐 옆에서 지켜보던 동생이 말했다 나는 내가 본 기사를 다...

자작시: 겨울 풍경

  겨울 풍경 엊그제 아파트 앞에서 조그만 꼬마가 눈사람 만드는 것을 보았다 꼬마의 아빠로 보이는 젊은 남자는 옆에서 아이가 눈덩이 만드는 것을 격려해 주고 있었다 돌아오는 길에 보니 꼬마가 만든 5단짜리 눈사람이 예쁘장하게 화단에 세워져 있었다 나뭇가지 팔에다가 머리에는 솔잎으로 장식된 모자까지, 어린 것이 참 열심히도 만들었다 물론 다음날에 그 눈사람은 다 허물어져 버렸지만, 아이가 지 아빠와 함께 만든 눈사람의 추억은 머릿속에 남아있을 것이다 며칠 전에는 베란다 앞쪽 나무에 무언가 검은 봉지 같은 걸려 있는 것이 보였다 바람이 하도 부니까 비닐봉지가 날아가다가 걸린 모양이다 싶었다 그런데 가만 보니 그게 아니었다 진회색의 산비둘기 한 마리가 나무 위에서 몸을 동글게 하고는 추위를 견디면서 자꾸만 움찔거리고 있었다 아이고, 쟤들도 겨울을 나려면 힘들겠네 잔뜩 부풀린 깃털에다 고개를 파묻던 산비둘기는 얼마 지나지 않아 날아가 버렸다 비둘기가 앉았던 나무 아래 있는 그네에서는 젊은 애기 엄마가 어린 딸을 데려와서 그네에다 앉히느라 애를 쓰고 있었다 이제 서너 살이나 되었을까? 빨간 코트를 입은 아가는 아직 지 힘으로 그네에 앉질 못했다 애기 엄마는 겨우 딸아이를 그네에 앉히고 두 팔로 그네를 잡게 했다 아기는 얌전히 앉아서 흔들흔들 그네를 탔다 그 앞에서 여자는 스마트폰을 꺼내어 한참 동안 딸이 그네 타는 것을 찍었다 그래, 저렇게 좋은 때도 다 잠깐이지 시계는 어느덧 오후 5시를 가리켰다 그런데 날이 그리 어둑어둑하지 않았다 아, 동지(冬至)가 지났구나 이제 낮이 조금씩 길어지고 있었다    

자작시: 흉터의 사회학

  흉터의 사회학 얼마 전에 길을 걷다 심하게 넘어져서, 아직도 계속 치료를 받고 있다 찢어진 입술은 봉합사를 제거했지만, 약간의 통증이 느껴진다 타박상은 생각보다 오래간다 그래도 얼굴의 상처는 거의 아물었다 더이상 듀오덤을 붙이지 않아도 된다 그런데 상처 부위가 우툴두툴하고 붉은색으로 변해서 그대로 두면 흉터가 생길 것 같았다 검색을 해보니 가장 잘 알려진 연고가 더마틱스 울트라, 였다 이 외산 연고는 가격이 무척 비쌌다 연고, 라고 하니까 의약품 같지만, 놀랍게도 이 연고는 의료기기로 취급된다 그래서 인터넷으로도 구매할 수 있다 저렴한 가격으로 파는 곳이 있어서 주문하려는데, 뭔가 좀 이상했다 정가의 거의 반값에 팔았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리뷰에다 누군가 짝퉁이니 사지 말라고 써놓았다 이런 연고도 짝퉁이 있나? 그랬다 사악한 자본주의적 창의력이 넘치는 대륙의 판매자들이 흉터 방지 짝퉁 연고를 직접 조제해서 팔고 있었다 싸다고 양잿물을 먹을 수는 없지 그런데 문득 궁금해졌다 도대체 그 짝퉁 연고의 성분은 무엇일까? 진짜 연고의 제형을 흉내내기 위해 알로에 겔, 뭐 그런 거에다 물을 섞나? 그것은 나로서는 알 수 없는 참으로 요상한 짝퉁의 세계였다 겨우 손가락 크기만 한 연고가 3만 원을 훌쩍 넘기는데, 이걸 또 두세 달을 발라주어야 효과가 있다고 한다 흉터는 질병이 아니라 미용의 영역에 해당하므로, 그걸 치료하는 건 어디까지나 개인의 몫이다 그러니까 그 비싼 연고를 사서 바를 여력이 없는 사람은 흉터와 색소침착을 그냥 감수할 수밖에 없다 시간이 지나면 나아지겠지 하면서 말이다  그런 생각에 이르니, 흉터라는 것이 얼마나 적나라한 사회적 계층성을 드러내는 것인지 몸서리가 쳐지는 것이었다        

자작시: 고구마, 인생

    고구마, 인생 어제 고구마 상자를 살펴보다가 썩은 고구마를 발견했다 고구마는 잘 썩는다 더럽게도 잘 썩는다 그래서 매일 고구마를 만지고 살펴보면서 썩은 것이 없는지 확인했다 그런데도 고구마가 썩어가는지 알아내지 못했다 결국 고구마 상자를 정리하면서 고구마를 모두 깎아서 냉동실에 넣어두었다 가만 보니, 겉으로는 멀쩡하게 생긴 것도 조금씩 썩어가고 있었다 문득, 얼마 전에 고구마 상품평 읽다가 발견한 고구마 농장 집 아들의 댓글이 떠올랐다 댓글을 요약하면 이렇다 1. 고구마는 난대성(暖帶性) 작물이다. 따뜻한 곳에다 보관하라 2. 겨울철 날씨에 고구마는 배송 과정에서 냉해를 입는다. 반드시 3kg 정도의 소량으로 주문하라 3. 일단 고구마를 받으면, 따뜻한 방에다 사나흘 고구마를 펼쳐둔다 그래야 고구마가 숨을 쉬고 썩지 않는다 참으로 유용하고도 흥미로운 댓글이었다 나는 그걸 읽으면서 그 농장 집 아들은 고구마를 그냥 먹을거리가 아니라, 하나의 살아있는 생명체로 본다는 생각이 들었다 따뜻한 곳을 좋아하는 고구마, 숨을 쉬는 고구마, 추운 날씨에 오들오들 떨다가 냉해를 입는 고구마, 무슨 고구마 보관을 신주단지 모시듯 해야 할 판이었다 결국 그렇게 신경을 써서 보관을 했건만, 우리집의 고구마는 썩어가고 있었다 고구마처럼 썩어가는 줄도 몰랐던 내 인생, 누군가 고구마가 왜 이렇게 잘 썩느냐고 불평하자 댓글로 달린 어느 작가의 소설에 나온 글귀는 그러했다 나는 고구마의 썩은 부분을 깎아내면서 그 작가의 통렬한 비유에 감탄했다 인생의 많은 것들은 고구마 껍질의 안쪽처럼 알아보기 어렵게 가려져 있다          

자작시: 자비 출판(自費出版)

자비 출판(自費出版) 자비 출판은 자기 돈으로 자기 책을 찍어내는 것을 말한다 어떻게 하다 보니 최근에 내 손에 들어온 자비 출판 서적이 세 권 있었다 그 책들은 모두 신앙 서적이었다 하나는 신부님이 쓴 시집이었고, 다른 하나는 수녀님이 쓴 자서전, 나머지 하나는 평신도가 쓴 신앙 수필집이었다 나는 그 책들 모두 단 한 장도 읽지 않았다 그걸 나에게 선물해 준 분에게는 참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그런데 정말이지 읽고 싶은 마음이 전혀 들지 않았다 어차피 읽지도 않을 책을 그냥 쌓아두기도 뭐했다 그렇다고 이걸 폐지 더미에다 버리는 것도 영 마음이 내키질 않았다 궁리 끝에 나는 그 책들을 아파트의 출입구 쪽에다 두었다 혹시라도 신앙 서적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 있으면 가져가면 좋겠다는 뜻에서였다 며칠 새에 책들이 사라지기는 했는데, 내 생각에는 그 책들이 누군가 읽고 싶은 사람이 가져간 것이 아니라 청소하는 아줌마가 모아두었다가 재활용 분리수거하는 날에 버렸을 것 같다 자비 출판으로 나온 책들의 마지막은 대개가 저러하겠거니 싶어서 마음이 서늘해졌다 어떻게든 제대로 된 출판사에서 내 이름으로 된 책을 내야지 작년에 이런저런 공모전에 글을 써서 보낸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적어도 어디에 뽑힌 이력이라도 한 줄 있어야 책을 쓸 기회를 얻을 수도 있지 자본주의란 더럽게도 정직한 것이다 글을 쓰려는 사람은 어떻게든 자신이 팔릴만한 책을 쓸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해야 하니까 그런데 그게 안 되는 사람들의 안온한 선택이 자비 출판이다 일단 ISBN이 책 뒤표지에 찍힌 자비 출판 책을 내면 작가 신인으로서의 등단은 불가능한 일이 된다 책을 안내면 안냈지 자비 출판은 절대로 하지 않을 거야 나는 어디론가 사라진 세 권의 자비 출판 책들의 음울한 끝을 상상해 보고는 다시금 다짐하게 되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