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령님이 알려주신대 재수생 시절의 일이다 학원 선생 가운데 전직이 박수무당이었던 선생이 있었다 신실한 기독교 집안이었던 선생은 갑자기 신내림이 와서 무당이 되었다 그런데 이야기를 들어보니 무당 노릇을 그리 오래하지는 못한 모양이었다 결국 본업인 학원 선생으로 돌아왔다 선생은 학원생들에게 무당에게 점 볼 때 속아넘어가지 않는 법에 대해 간결하게 알려주었다 무당이 잘 맞추나 보려면 아주 최소한의 정보만을 주어야 한다고 했다 선생은 대개의 무당이 앞일에 대해서는 열 가지 가운데 한두 가지만을 알 수 있을 뿐이라고 했다 그것조차도 신령님에게 기도를 많이 해야 겨우 알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덧붙이길, 우리나라에서 제일 영험한 산은 계룡산, 이라고 엄숙하게 말했다 가끔 그 이야기가 생각나곤 했다 정말 무당이 앞날을 맞추기는 맞추나? 예전에 수원의 점집 골목을 찍은 TV 다큐를 본 적이 있다 거기에 나오는 늙은 무당의 일화가 재미있었다 그 무당은 하루 일과가 끝나면 다방에서 커피를 시켜다 먹는 것이 유일한 낙이었다 그리고 다방 마담에게 그날의 자기 수입을 은행에다 입금하는 일을 맡겼다 그렇게 마담을 믿고 통장을 맡겼는데, 그 마담이 나중에 통장을 털어서 도망가 버렸다 할머니 무당은 다방 커피를 마시면서 자신이 사기당한 일을 담담히 말했다 그러고는 커피 배달을 온 새로운 마담에게 통장을 내어주며 입금을 하라고 시켰다 이분은 믿으세요? 다큐를 찍던 PD가 무당에게 물었다 응, 얘는 나한테 사기 칠 애는 아냐, 그렇게 말하면서 무당은 호호호, 웃었다 신령님도 모든 걸 다 알려주는 건 아니군, 나는 점을 보러 가고 싶은 마음이 들 때마다 그 늙은 무당의 느슨한 웃음 소리를 떠올리곤 했다
시금치나물 인터넷으로 시금치 1kg을 샀다 주문한지 하루만에 박스에 담긴 싱싱한 시금치가 배송되었다 시금치가 깨끗해서 뿌리만 조금씩 다듬었다 커다란 스텐 냄비에 소금을 조금 넣고 물을 끓인다 물이 끓기 시작하면 다듬어 놓은 시금치를 넣는다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오래 삶으면 물크러진다 시간을 재보는 일 따위는 하지 않는다 손으로 시금치 잎을 만져보며 감을 잡는다 됐어, 이 정도면, 재빨리 시금치를 건져낸다 그릇에 받아놓은 찬물에 얼른 시금치를 넣는다 다시 또 한 무더기의 시금치를 냄비에 넣고는, 데친 시금치를 헹구어 낸다 그 사이에 시금치가 얼마쯤 물러지는지 살펴본다 냄비에서 시금치를 건져낸다 깨끗이 바락바락 주물러 헹구어 낸다 잎 사이에 모래나 흙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씻은 시금치를 있는 힘을 주어 물기를 꽉 짜낸다 대략 밥그릇 정도 크기의 덩어리 3개가 나온다 시금치를 무칠 양념을 준비한다 참기름병을 꺼낸다 나물은 참기름 맛으로 먹는 거지 참기름을 들이붓는다 진간장을 조금 넣는다 간은 소금으로 해야 깔끔하다 매실 엑기스를 조금 넣는다 간이 맞는가 본다 조금 싱겁다 집간장을 아주 조금 넣는다 대충 괜찮다 그런데 볶은 깨가 없구나 깨를 볶았어야 했는데, 그걸 볶으려면 깨를 씻어서 물기를 빼고, 두꺼운 팬에다가 볶아야지 생각만 해도 머리가 아프다 깨 좀 없으면 어때, 밀폐 용기를 꺼낸다 시금치나물을 두 개의 그릇에 나누어 담는다 무치지 않은 한 덩어리는 김치냉장고에 넣는다 이런저런 그릇 설거지가 기다린다 시금치를 나물로 먹으려면 이 번잡스러움을 감수해야 한다 나물이란 얼마나 비효율적이며 노동집약적인 음식인가 나는 한식의 미래가 암울하다고 생각했다 갈수록 사람들은 반찬 만드는 데에 시간을 쓰고 싶어하지 않는다 온갖 종류의 즉석 국과 반찬이 쏟아져 나오지만 나물은 어떻게 대체할 수가 없다 이것은 아주 순전한 노동의 결정체이다 나는 식탁에 앉아서 방금 무친 시금치나물을 밥도 없이 몇 젓가락이고 먹었다 달큰한 맛이 나는 시금치나물, 너무 맛있어서 눈물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