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루카스의 1973년작 영화 '청춘 낙서(American Graffiti)'는
루카스가 첫 영화를 보기좋게 말아먹은 후 찍은 작품이었다. 영화가 제작된 시점에서 정확히 10년 전의 이야기를 다룬 이 영화는
그야말로 초대박을 쳤다. 흥행수익이 어느 정도였느냐 하면 제작비 대비 180배였다. 그렇다면 어떻게 'American
Graffiti'는 흥행에 성공할 수 있었을까? 당시 미국인들은 정치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베트남전의 패배에
뒤이어 오일 쇼크의 긴 터널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루카스의 영화는 미국인들로 하여금 그들이 잘 나가고 좋았던 시절,
1960년대를 추억하게 만들었다.
Paul Thomas Anderson의 'Licorice Pizza(2021)'도
영화 '청춘 낙서'처럼 과거로 돌아간다. 그것도 무려 50년 전인 1973년이다. 루카스의 영화가 당시 청장년층들에게
소구했다면, 폴 토마스 앤더슨의 2021년작 영화는 어떤 관객층을 염두에 두고 만들었을까? 나는 영화를 보는 내내 그 생각을
했다. 왜냐하면 이 영화가 보여주는 시대적인 정서와 이야기가 무척 낯설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1970년대에 청춘이었던 이들의
나이는 이제 중년을 넘어 노년에 들어선다. 분명 그들을 대상으로 만든 영화는 아니다. 그래서 자료를 찾아보니 의외로 이 영화의 주
관객층은 20대와 30대 초반에 걸쳐 있었다. 지금 시대의 젊은 관객들은 이 영화를 보며 어떤 생각을 했을까 새삼 궁금해졌다.
자, 그렇다면 '감초 피자'는 어떤 영화인지 여행을 떠나보기로 하자.
1973년, 15살 게리(쿠퍼 호프만 분)는
학교 졸업 사진을 담당하는 보조 사진가 알라나(알라나 하임 분)에게 마음을 뺏긴다. 대뜸 사귀자고 말하는 게리. 알라나에게 그
상황은 웃기지도 않는다. 뭐야, 이제 15살 짜리가 25살인 나에게 수작을 걸다니. 일단 퇴짜는 놓았는데 알라나의 마음은
흔들린다. 10살 차이가 나는 커플, 그것도 한 쪽은 미성년자이다. 이 영화가 생뚱맞은 것은 그뿐만이 아니다. 게리는 물침대
세일즈맨으로 자신의 사업을 시작한다. 15살 짜리가 사업을 한다고? 저게 말이 되나 싶어서 실소가 터져 나온다.
'Licorice Pizza'에는 기상천외한,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에피소드들이 폭죽처럼 터진다. 게리는 살인범으로 몰려
갑자기 경찰에게 수갑이 채워져 끌려간다. 알라나는 배우 오디션을 보러 갔다가 유명 배우(숀 펜 분)와 자리를 함께 하는데, 술
취한 그가 오토바이 타고 객기 부리는 통에 뒤에 앉았던 알라나가 나자빠진다. 물침대 배달하는 길에서 미친 인간 하나 잘못 태웠다
곤욕을 치루기도 한다. 이 영화의 괴상한 유머 포인트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아마도 감독 폴 토마스 앤더슨 뿐이리라.
이 영화는 결코 1970년대를 잘 아는 이들의 향수를 자극하기 위해 만들어지지 않았다. 물론 영화는 철저한 시대 고증을 거쳤다.
영화 제목 'Licorice Pizza'는 1969년에 James Greenwood가 Long Beach에 문을 연 LA의
레코드 매장 체인에서 따왔다. 이 레코드 체인점은 1985년에 매각될 때까지 존속했다. 영화에서 게리가 사업 구상에 착수하는
우스꽝스러운 박람회는 실제로 1973년에 Hollywood Palladium에서 열렸던 '십 대 박람회(Teen-Age
Fair)'였다. 게리와 알라나가 만나는 영화관은 El Portal 극장으로 1926년에 개관한 이곳은 아직도 영업 중이다.
게리의 엄마가 운영하는 사무실의 손님 제리는 일본식 레스토랑 'Mikado'를 여는데, 이 또한 실제 LA의 명소였다. 게리가
즐겨찾았던 'Tail O' Cock' 레스토랑도 1985년까지 영업하던 곳이었다.
폴 토마스 앤더슨은 그렇게
1970년대 San Fernando Valley를 'Licorice Pizza'에 통째로 옮겨다 놓는다. 대체 왜 그랬을까? 그는
15살 게리와 25살 알라나의 사랑 이야기를 풀어내기 위해 그 시공간을 선택했다. 이 영화는 1970년대를 통과한 관객층에게
소구하는 것이 아니라,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청춘의 독특한 사랑 이야기를 듣고 싶어하는 젊은 관객들을 불러 모은다.
게리는 엉뚱한 유머 감각을 가진 괴짜 십 대 사업가이며, 알라나는 되는 일이라고는 하나 없는 불만족스러운 25살 아가씨이다. 이
둘이 사랑에 빠졌을 때 어떤 화학반응을 일으키는지. 그들은 서로에게서 무엇을 원하며 또 그 관계에서 어떻게 좌절하게 되는지.
연애하는 커플이라면 그러한 과정을 한 번쯤 겪는다. 'Licorice Pizza'는 청춘 로맨스를 낯선 시공간에 비틀린 방식으로
구겨서 집어 넣는다. 그것은 지금의 청춘 세대들에게는 호기심을 가지고 탐색을 하도록 만드는 대상이 된다.
그렇다면
폴 토마스 앤더슨의 의도는 관객들에게 잘 전달되었을까? 결론적으로 말해 영화의 수익은 제작비에 훨씬 미치지 못했다. 대부분의
젊은 관객들은 궁금해서 집어든 '감초맛 피자'를 한 입 먹고 그냥 내던져 버린 모양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도 그랬다. 조지
루카스가 '청춘 낙서'에서 자신이 지나온 바로 직전의 시대를 보편적 감성으로 그려냈다면, 폴 토마스 앤더슨은 쉽게 공감하기 어려운
특이한 이야기를 독창적인 것이라며 우긴다. '1970년대 미국'이라는 시간적 배경을 걷어낸다 하더라도, 과연 영화 속 게리와
알라나의 사랑 이야기에 공감할 관객이 얼마나 될까?
'Licorice Pizza'에는 현실 감각이 결여되어
있다. 게리와 알라나가 보게 되는 TV 화면 속 당시 대통령 닉슨의 모습, 오일 쇼크로 주유소에 사람이 몰리는 장면을 비롯해 잘
재현된 1970년대 세트들은 별 의미도 없는 배경일 뿐이다. 제멋대로인 10대 청소년과 이도 저도 안되어서 좌절할 뿐인 20대
아가씨의 만남과 사랑 이야기에는 감독이 지인에게서 주워들은 일화들이 짜깁기 되어 있다. 아마도 이 영화의 유일한 미덕이라면 그
모든 것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엮어낸 폴 토마스 앤더슨의 이야기 솜씨일 것이다.
나는 누군가에게 이 '감초맛
피자'를 맛보라고 권할 마음이 선뜻 나지 않는다. 분명 이 영화는 잘 만든, 좋은 영화라고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폴 토마스
앤더슨이 요리해서 내놓은 'Licorice Pizza'에는 비주류적 감성의, 진짜 기이한 맛이 난다. 글쎄, 이걸 무슨 맛이라고
표현해야할까? '쇠의 맛', 독자 여러분은 '쇠맛'을 아는가? 커피맛에 극도로 예민한 이들은 스테인리스 보온병에 담는 것을
저어한다. 그 보온병에서는 '쇠맛'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깨질 수도 있는 불편함을 감수하고서라도 유리 보온병에 담는 것을
선호한다. 대체 '쇠맛'이 어떤 것이냐고요, 라고 묻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아주 가끔은 나도 스테인리스 보온병에서 그
'쇠맛'을 느낄 때가 있다. 영화 'Licorice Pizza'에서는 쇠맛이 느껴진다. 그 맛이 궁금한 이라면 한 번 도전해
보아도 괜찮다.
*사진 출처: themoviedb.org
**조지 루카스의 영화 '청춘 낙서(American Graffiti, 1973)' 리뷰
https://sirius1001.blogspot.com/2021/05/american-graffiti-197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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