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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할 때와 죽을 때, 강변 호텔(Hotel by the River, 2018)

 

*이 글에는 영화 '강변 호텔(2018)'의 결말이 들어있습니다.


  시인 영환(기주봉 분)은 오랜만에 두 아들과 만난다. 그가 자식들을 부른 데에는 이유가 있다. 영환은 죽음의 예감을 느끼고 있다. 밤에는 악몽에 시달린다. 그는 자식들에게 사진관에 가서 영정 사진까지 찍었다는 이야기를 한다. 시인은 지금 강변 호텔에 머물고 있다. 우연히 술자리에서 만난 호텔 주인이 시인의 팬이었다. 주인은 영환에게 아무 부담없이 호텔에 와서 지내라고 초대했다. 그 호텔에는 손을 다친 젊은 여자 아름(김민희 분)이 머물고 있다. 아름은 연인과 결별한 후유증에 시달리는듯 하다. 그런 아름을 위로하기 위해 아는 언니(송선미 분)가 찾아온다. 그저 평화로워 보이는 겨울 강변의 풍경, 시인의 불길한 예감은 괜한 것일까?

  근래에 들어 홍상수의 영화에서 '죽음'이란 단어를 자주 발견하게 된다. 최근작인 '당신 얼굴 앞에서(2021)'는 살아갈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중년의 여배우가 등장한다. '강변 호텔(Hotel by the River, 2018)'은 죽음의 예감에 사로잡힌 노시인이 주인공이다. 홍상수의 영화들도 감독 자신처럼 나이를 먹어가고 있다. 영화가 시작되면 강이 보이는 호텔방에서 몸을 일으키는 영환의 모습이 보인다. 그는 두 아들 경수와 병수를 만날 생각이다. 도착을 알리는 큰아들 경수의 전화, 영환은 객실로 올라오겠다며 방번호를 알려달라는 경수의 청을 완곡히 거절한다. 부모 자식간이지만 자신의 공간을 개방하지 않겠다는 나름의 의지가 보이는 장면이다. 한편으로 그것은 영환과 두 아들 사이의 정서적 거리를 나타내기도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영환은 사랑 때문에 젊어서 처자식을 내친 인물이다.

  "미안한 것 때문에 인생을 같이 할 수는 없는 거야"

  늙은 시인은 가족을 나 몰라라 했던 자신의 과거를 그렇게 옹호한다. 영환의 모습에서 홍상수 본인의 현실이 겹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감독은 젊은 여배우와 함께 하기 위해서 가정을 떠났다. '강변 호텔'의 영환은 홍상수의 영화적 자아이기도 하다. 현실의 여배우는 그대로 영화 속 '아름'으로 걸어 들어간다. 영환과 같은 호텔에 투숙중인 아름은 손에 붕대를 감고 있다. 객실에서 상처를 드레싱하는 모습을 보니, 손등에 화상 자국이 나있다. 이 여자는 손뿐만이 아니라 마음에도 큰 상처를 입었다. 유부남과의 불행한 사랑이 끝난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위로하려고 찾아온 선배 언니는 그 남자를 맹비난한다. 그런데 정작 당사자인 아름은 담담하다. 오히려 남자의 처지를 이해하는 것처럼 말한다. 아직도 미련이 남은 모양이다. 그러니까 여자의 사랑은 어떤 면에서 진짜로 끝난 것이 아니다.

  사랑과 죽음. 홍상수는 '강변 호텔'에서 두 개의 이야기를 병렬적으로 배치한다. 갑작스런 죽음의 예감에 영환은 당황하지 않는다. 그간 소원했던 자식들을 불러 모으며 영정사진도 찍는다. 죽을 때가 되니 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것들도 보인다. 카페에 있는 커다란 화초를 보며 잎이 말랐으니 물을 줘야한다고 생각한다. 이 남자는 이제까지 자기 자신만을 생각하고 살아왔다. 여자 때문에 아내와 어린 두 아들을 내팽개치고 살아온 것을 보면 그렇다. 이제 곧 죽을 것 같다고 말을 하는 그가 유일하게 마음에 걸려하는 존재는 집에서 키우는 고양이 한 마리이다.

  홍상수는 언젠가 자신에게 다가올 미래를 앞당겨서 복기(復棋)하는 것일까? 영환은 아들들 앞에서 당당하다. 차남 병수의 이름에 담긴 뜻을 주욱 풀어서 알려주는가 하면, 두 아들의 인생에 대한 충고도 아끼지 않는다. 그는 큰아들 경수가 결혼해서 잘 살고 있는 것으로 여기지만, 아들은 아버지에게 이혼 소식을 숨긴다. 여자 친구가 없는 작은 아들 병수는 아버지에게 여자가 무섭다고 말한다. 정작 자신도 여자 문제로 젊은 날을 부산스럽게 보냈던 아버지는 한탄한다. 두 아들은 이상하게도 그 원인을 호랑이 같은 '엄마'의 탓으로 돌린다. 사실 시인의 아내가 무서운 호랑이처럼 되어버린 것은 남편의 변심때문이며, 자식들을 건사하기 위해 강해질 수 밖에 없었는 데도 말이다. 이 기형적인 가족의 이야기에서는 뭔가 서글픔이 베어져 나온다.

  노시인과 두 아들의 이야기가 진행되는 동안, 강변 호텔의 또 다른 투숙객 아름은 치유의 시간을 갖는다. 아름은 선배 언니 연주와 함께 대부분의 시간을 호텔방에서 누워서 보낸다. 마치 다친 동물이 조용히 굴을 찾아 들어가 상처가 낫길 기다리는 것처럼. 순식간에 강변을 은세계로 만들어버린 눈이 두 여자와 시인을 이어준다. 영환은 눈길에 산책을 나온 아름과 연주의 미모를 칭찬하며 말을 건넨다. 거리를 두려던 두 여자는 영환이 시인이라는 것을 알고 경계를 누그러뜨린다.

  홍상수에게 있어 '우연'은 그의 영화 세계를 구성하는 필수적인 요소이며 법칙이다. 영환과 두 여자의 만남 이전에 그들은 이미 연결되어 있었다. 연주는 호텔에 도착해서는 주차된 어떤 차를 보고 흠칫 놀란다. 아름에게 그 일을 이야기하는 연주는 자신이 과거에 사고를 냈던 차인 것 같다고 말한다. 그 차는 경수 형제가 타고 온 차였다. 연주의 추측은 나중에 두 여자가 저녁을 먹기 위해 찾아간 순두부집 앞에서 경수의 차를 발견했을 때 더욱 명확해진다. 홍상수의 영화 안에서 모든 인물들은 어떤 식으로든 연결되어 있으며, '우연'의 구름은 그들을 단단하게 휘둘러 감는다.

  해외에서는 '소주 영화(Soju movie)'의 대가로 알려진 홍상수가 결코 술을 빠뜨리지는 않는다. 이 영화에서는 소주 대신에 '막걸리'가 등장한다. 막걸리는 '소설가의 영화(2022)'에서도 등장한다. '당신 얼굴 앞에서(2021)'에서는 예외적으로 '배갈'이 나온 적이 있다. 영환이 두 아들과 막걸리를 들이키는 동안, 아름과 연주는 바로 그 뒷자리에서 저녁을 먹으며 남자들의 철없음을 토로한다. 그러면서도 연주는 영화 감독 병수의 싸인을 받을까 계속 고민한다. 자신이 보기에 대중적이지도, 그렇다고 작가라고 말하기도 어려운 감독을 그저 인기있다는 이유로 싸인을 받고 싶어한다. 도대체 그 싸인은 받아서 뭐에다 쓸까? 호텔의 프런트 여직원도 병수를 알아보고 싸인을 받아갔었다. 유명인의 자필 이름이 적힌 종이 쪼가리 한장은 사실 아무런 의미도 없다. 타인의 삶과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 그 실재에 대한 감각은 그런 식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아마도 예술가의 작업만이 전혀 낯선 타자를 창조적 세계 안에서 만나게 할 수 있다. 영화의 결말부에서 관객은 영환이 아름과 연주 앞에서 자작시를 낭독하는 것을 본다. '이카'라는 가상의 공간과 그곳에 오게 된 두 여자, 덧니 소년이 등장하는 장문의 시는 기이하기 짝이 없다. 그런데 가만히 들어보면 시 속의 두 여자는 아름과 연주의 상상적 변형이다. 또한 덧니 소년은 영환이 우연히 보게 된 근처 주유소 직원 청년의 모습과 다름없다. 영환의 시는 예술가가 자신이 마주하는 현실과 타자를 가공하는 과정을 흥미롭게 보여준다. 그렇게 시인은 강변 호텔에서 만난 두 여자, 낯선 청년을 자신의 시 속에서 기이한 방식으로 묶는다.

  그러한 영환의 시처럼 '강변 호텔'은 홍상수가 자신의 사랑,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영화적으로 변주한 작품이다. 영환은 호텔 사장으로부터 방을 비워달라는 말을 듣는다. 영환이 그 말을 들은 이유는 아주 간단했다. 영환의 팬이었던 주인은 더이상 영환을 보고 '설렘'을 느낄 수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 다음날 아침, 영환은 갑작스럽게 숨을 거둔다. 예술가에게 진정한 죽음은 육신의 생명이 끝날 때가 아니라, 그 존재와 작품이 누군가에게 더이상 그 어떤 설렘을 불러일으키지 못할 때이다. 영환의 죽음은 홍상수에게 있어 언젠가 다가올 그 순간에 대한 묵시적 체험인 셈이다. 영환의 삶이 지상에서 끝나버린 순간, 호텔방에서 안온히 잠든 아름과 연주의 얼굴에는 눈물이 흐른다. 시인과 시인의 시가 머물렀던 시간은 타자의 내면으로 그렇게 흘러들어갔다. 홍상수의 이 영화 또한 누군가의 가슴에 그렇게 머물지도 모를 일이다. 



*사진 출처: themoviedb.org


**홍상수의 영화 리뷰

당신 얼굴 앞에서(In Front of Your Face, 2021)
https://sirius1001.blogspot.com/2022/05/10-in-front-of-your-face-2021.html

소설가의 영화(The Novelist's Film, 2022)
https://sirius1001.blogspot.com/2022/07/novelists-film-202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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