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중국 영화에서 문화대혁명(文化大革命, Cultural Revolution)의 그림자를 찾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다. 5세대(Fifth generation)와 6세대(Sixth generation) 감독들에게 문화대혁명은 자신들의 시대를 관통하는 대격변의 사건이었다. 비교적 최근작이라고 할 수 있는 6세대 감독 Wang Xiaoshuai 'So Long, My Son(2019)'도
문화대혁명을 회고한다. 영화 'Crossing The Border - ZhaoGuan(2018)'에도 문화대혁명이 삽화적
사건으로 등장한다. 이 영화의 감독 Meng Huo는 30대의 젊은 감독으로 1984년생이다. 그렇다면 문혁을 겪지 않은 젊은
세대의 감독은 지난 시대의 역사와 오늘날의 중국 사회를 어떻게 바라보는가?
영화의 주인공은 70대의 시골 할아버지 Li Fuchang이다. 이제는 생의 끝자락에 서있는 Li 할아버지는 젊었을 적 친한
친구가 병석에 누워있다는 소식을 듣는다. 그는 낡은 삼륜차(tricycle)를 타고 가서 Sanmenxia 있는 친구를 만나기로
결심한다. 그가 있는 시골에서 Sanmenxia는 30km나 떨어진 곳이다. 이 여행에는 7살 손자 닝닝도 함께 한다. 과연
털털거리는 삼륜차로 Li 할아버지는 무사히 친구가 있는 먼도시에 도착할 수 있을까? 영화 '자오관으로 가는 길(중국어 제목: 过昭关)'의 기본적 얼개는 데이비드 린치(David Lynch)의 'The Straight Story(1999)'를
떠올리게 만드는 지점이 있다. 영화 '스트레이트 스토리'에서도 주인공은 늙은 노인이다. 앨빈 스트레이트는 오랫동안 불화했던 형을
만나기 위해 트랙터를 타고 먼길을 떠난다. 영화는 앨빈이 여행 중에 만나는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와 앨빈의 지나온 인생 역정이
함께 어우러진다. '자오관으로 가는 길'에서도 Li 할아버지와 그의 손자 닝닝은 길 위에서 여러 사람들을 만난다. 그 만남을 통해
Li 할아버지가 살아온 삶이 찬찬히 펼쳐진다.
영화의 도입부에서 Li 할아버지는 아들의 방문을 받는다. 그는 아내의 임박한 출산을 앞두고 7살 아들 닝닝을 부친에게 맡기고
간다. 도시에서 사는 Li 할아버지의 아들은 부친과 별 말도 없이 데면데면한 것처럼 보인다. 인테리어 업자인 그는 아버지의 낡은 집
지붕이 새는 것을 알지만 신경쓰지도 않고 떠난다. 단절된 부자(父子) 관계. 그것은 Li 할아버지가 살고 있는 시골과 아들이
사는 도시 사이에 존재하는 거리와도 병치된다. 손주 닝닝에게도 시골과 할아버지의 일상은 낯설고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다.
칭얼거리면서 불평하는 손자 닝닝. 그렇지만 할아버지는 천천히, 다정하게 손주와 정서적 교감을 쌓아간다. 그리고 그것은 할아버지와
닝닝이 떠나는 삼륜차 여행에서 점차적으로 숙성된다.
Li 할아버지는 강가에서 잠시 쉬는 동안 젊은 낚시꾼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그는 투자에 실패해서 재산을 날리고 하는 일 없이
지내는 사람이었다. Li 할아버지는 자신의 고통스러운 가족사를 들려주며 실의에 빠진 젊은이를 격려한다. 트럭이 고장나서 도움을
청하는 운전기사에게는 기꺼이 삼륜차를 내어주며 부품을 사올 수 있도록 한다. 가족이 뺑소니 사고를 당했다며 도로변에서 적선을
강요하는 사람들에게도 Li 할아버지는 관대하다. 그는 트럭 운전기사가 감사의 댓가로 준 돈을 그들에게 내놓는다.
Li 할아버지가 낯선 타인들에게 보여주는 이해심과 아량은 손주 닝닝의 마음도 부드럽게 만든다. 도시의 철부지 꼬마는 누군가에게 친절을 베푼다는 것의 의미에 대해 알게 된다. 영화는 Li 할아버지가 지닌 삶의 지혜가 '문화대혁명'이라는 엄혹했던 시절을 견디며 습득된 것임을 암시한다. 감독 Meng Huo는 자신이 겪지 않은 격변의시대를 매우 은유적인 방식으로 드러난다. Li
할아버지가 부르는 옛노래는 고대 주나라 왕에게서 핍박받는 우 장군(General Wu)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 장군이 목숨을
건지기 위해 달아나는 장면은 경극(京劇) 배우를 통해 재연된다. 산속 노인의 도움으로 장군은 잡히지 않고 무사히 달아난다. 우
장군처럼 Li 할아버지도 문화대혁명 시기에 죽을 고비를 넘겼다고 회고한다.
Li
할아버지와 시골 벌치기 노인과의 대화에서는 1958년 대기근(famine)에 대한 이야기도 나온다. 벌치기 노인은 자신이
대기근에서 살아남았다고 말한다. 그 기근은 마오쩌둥의 무모한 대약진운동(大跃进运动, Great Leap Forward:
1958-1962)이 불러온 참사였다. 그것은 Li 할아버지의 세대가 기아와 빈곤, 정치적 광풍을 견디면서 어렵게 생존해왔음을
보여준다. 이미
그들 세대의 많은 이들이 세상을 떠났다. 또한 그들이 얻은 삶의 경험과 이야기는 중국의 현재 세대와는 유리되어 있다. 벌치기
노인은 자식과 사이가 좋지 않아 시골에서 혼자 벌을 치며 살고 있다고 말한다. Li 할아버지 또한 도시에 살고 있는 아들과 별다른
교류가 없다. 그가 지닌 인생의 지혜는 뜻밖의 여행을 통해 손주 닝닝에게로 전해진다.
마침내 Li 할아버지는 Sanmenxia에 도착한다. 그는 병석에 누워있는 친구를 만난다. 어쩌면 살아있는 동안 마지막이 될
만남. 아픈 친구는 Li 할아버지에게 길게 말을 할 수가 없다. Li 할아버지는 벌치기 노인이 자신에게 준 벌꿀을 친구에게 건네며
마음을 전한다. 그리고 그해 겨울날 아침, Li 할아버지는 친구의 부고 소식을 듣는다. 그는 벽에 걸린 사진으로 다가간다. 그
사진 속에는 젊은날의 그와 세 명의 친구들이 있다. 이제 그 친구들이 죽고 Li 할아버지만 남았다. 그는 자신의 집 마당에 앉아
담배를 피운다. 밖에는 눈발이 날리고 있다. 그렇게 눈이 내리는 풍경 속에서 노인은 자신의 마지막 날을 헤아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영화 'Crossing The Border - ZhaoGuan(2018)'는 격동의 시대를 지나온 중국 노년의 세대에게 경의와 고마움을 표시한다.
분명 그들의 세대는 스러지고 있다. 하지만 그들 삶의 지혜와 이야기는 사라지지 않는다. 감독은 영화의 엔딩 크레딧에 자신의
친할아버지를 추억한다고 썼다. 새로운 세대의 영화인으로서 감독 Meng Huo는 비극과 공포로 점철된 중국 현대사를 인본주의적
관점으로 포용한다. 이 영화는 마오쩌둥과 그의 정치적 오점인 문화대혁명이 지금의 세대에서도 여전히 영화적으로 변주되고 있음을 입증한다.
*문화대혁명을 회고하는 중국 6세대(Sixth generation) 감독 Wang Xiaoshuai 감독의 영화
'So Long, My Son(2019)'
https://sirius1001.blogspot.com/2023/01/so-long-my-son-2019.html
'Red Amensia(2014)'
https://sirius1001.blogspot.com/2021/05/red-amnesia-2014.html
'Shanghai Dreams(2005)'
https://sirius1001.blogspot.com/2023/01/shanghai-dreams-2005.html
**사진 출처: themoviedb.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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