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리 제임스(Henry James)문학의 영화적 변용 3부:
The Heiress(1949), William Wyler 감독
"넌 잘난 것이 아무 것도 없어. 아, 한가지 예외가 있기는 하지. 자수 하나는 잘 놓더군."
딸은 아버지에게 사랑하는 사람과의 결혼을 허락해 달라고 간청한다. 그러나 아버지가 보기에 사윗감이라며 딸이 선보인 남자는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 아무래도 딸이 나중에 상속으로 받게 될 재산을 보고 들이댄 놈팽이가 분명하다. 남자가 노리는 것이
'돈'이라고 말하지만, 딸은 믿지 않는다. 아버지는 결국 뼈아픈 독설을 퍼붓는다.
윌리엄 와일러 감독의
1949년작 'The Heiress'는 Augustus Goetz의 동명 희곡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희곡의 원작은 헨리 제임스의
소설 '워싱턴 스퀘어(Washington Square, 1880)'이다. 영화가 시작되면 관객은 부유한 저택의 한 아가씨
캐서린을 보게 된다. 그런데 손에 물 한 방울 묻히지 않고 살 것 같은 아가씨가 생선 장수에게서 생선을 사들고 온다. 들어오는
길에 아버지와 마주친 캐서린은 아버지를 위해 요리할 싱싱한 생선을 샀다고 말한다. 그런 딸을 대하는 아버지는 다소 거리감이 있고
냉담하게 느껴진다. 아버지 슬로퍼 박사는 그런 건 직접 할 게 아니라 배달을 시키고, 제발 밖에 나가서 사람 좀 만나라고 말한다.
원작 소설에는 없는 이 장면은 캐서린이 아버지의 권위에 순종적이고, 그 애정을 갈구하고 있음을 알려준다.
영화에서 캐서린 역을 맡은 올리비아 드 하빌랜드(Olivia de Havilland)는 헐리우드 고전기를 대표하는 미녀 배우였다.
그런데 영화 속 캐서린은 큰 이모네 집에서 열린 파티에서 그다지 주목받지 못한다. 내키지 않은 표정으로 예의상 춤 신청을 했던
남자는 곧 캐서린을 내버려 두고 다른 아가씨와 춤을 춘다. 뭔가 좀 이상하다. 아니, 저 미녀 아가씨를 왜 외면하는 거지? 그런데
거기에는 이유가 있다. 원작의 캐서린은 키가 작고 얼굴도 평범하며 아무런 매력이 없는 여성으로 묘사된다. 그런 캐서린을 미녀
배우가 연기하는 데에서 오는 간극을 주연 배우 올리비아 드 하빌랜드는 잘 극복해낸다.
그 파티에서 아주 잘 생긴
청년 모리스 타운젠트가 캐서린에게 접근한다. 조각 같은 얼굴을 가진 미남 배우 몽고메리 클리프트가 연기한 모리스는 소설 속에서도
수려한 외모를 지닌 인물로 나온다. 그가 못생긴 캐서린(관객은 하빌랜드를 그렇게 억지로 생각해야만 한다)에게 접근하는 데에는 다
속내가 있다. 캐서린은 장차 엄청난 재산을 물려받을 상속녀이기 때문이다. 아버지 슬로퍼 박사가 가진 재산은 물론이고, 이른
나이에 세상을 뜬 모친이 남긴 돈은 온전히 캐서린의 것이다. 별 다른 직업도 없이, 그나마 조금 받은 유산마저 탕진한 이 남자는
무엇보다 '돈'이 절실하다. 그에게 캐서린은 안락한 삶을 보장해주는 은행 계좌처럼 보인다. 타고난 외모와 세련된 매너로 그는 곧
캐서린을 사로잡는다.
영화 속에서 모리스는 캐서린의 집 응접실에서 자신의 피아노 연주를 들려준다. 프랑스 작곡가
Martini의 '사랑의 기쁨(Plaisir d' amour)'. 이 가곡의 제목이 모순적인 이유는 노래의 내용에 있다. 사랑의
기쁨은 사라지고, 슬픔만이 영원히 남아있네... 노래는 이후 캐서린이 맞닥뜨릴 고통과 시련의 시간들을 예견한다. 모리스가
낭만적으로 캐서린에게 구애하는 이 장면 또한 원작 소설에는 없는 장면이다. 이처럼 영화는 소설과는 다른 방식으로 내용을 가공하고
변형시켜 버린다. 그럼에도 '상속녀'에는 원작의 본질적인 부분이 살아있음을 보게 된다. 바로 캐서린과 아버지 슬로퍼 박사의 대립과
갈등이다.
순종적이고 착한 딸이었던 캐서린은 모리스에 대한 사랑의 감정을 느끼면서 한 여성으로서, 인간으로서의
정체성을 자각하기 시작한다. 캐서린은 슬로퍼 박사가 바라보는 것처럼 둔하고 합리적인 판단 능력도 없는 딸이 아니다. 슬로퍼 박사는
모리스를 돈만 밝히는 속물로 취급하며 딸의 마음을 돌리려고 애를 쓴다. 하지만 캐서린의 결심은 굳건하다. 소설에서 슬로퍼 박사가
딸에게 보이는 경멸과 조롱, 무시는 그가 얼마나 편협하며 냉담한 인물인지를 드러낸다. 슬로퍼 박사를 연기한 랠프
리차드슨(Ralph Richardson)은 비교적 온건하게 그 부분을 표현했음에도 관객은 그가 모리스를 반대하는 이유가 진심으로
딸을 위한 것인지 의구심을 품게 된다. 그는 자신이 물려줄 유산을 가지고 캐서린을 압박한다. 딸에 대한 온전한 통제력을 갖는 것,
그것이 박사에게는 매우 중요하다. 결국 그의 의도대로 캐서린은 모리스와 결별하게 된다.
소설에서 캐서린은
모리스와의 결별 이후 자신의 아픔과 상처를 표현하지 않으려고 애를 쓰는 것으로 묘사된다. 그 이유는 모리스에 대한 자신의 판단이
정확하고 옳았다는 박사의 자부심을 더하게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모리스의 거짓된 사랑, 아버지로부터 받은 상처와 모멸감은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캐서린의 내면을 변화시킨다. 17년이란 시간은 영화에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박사의 임종을 앞두고 영화 속
캐서린이 아버지와 극렬히 대립하는 장면은 그 변화를 압축시켜서 보여준다. 박사는 캐서린에게 자신이 죽은 이후에도 모리스와
결혼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해달라고 말한다. 캐서린은 그 약속을 하기는 어렵다고 대답한다. 그러자 박사는 이전에도 그랬듯 '유산'을
주지 않겠다고 말한다. 그 말을 들은 캐서린은 종이와 펜을 들고 온다. 유언장을 뜻대로 작성하시지요, 하며 아버지를 압박하는
캐서린의 결기는 이전과는 달리 주체적인 한 인간으로서의 변화를 의미한다. 이 장면도 원작에는 나오지 않는 부분이다.
영화의 도입부에서 관객은 캐서린이란 캐릭터가 아버지 슬로퍼 박사가 보는 것처럼 그저 순진하기만 하고, 합리적 판단력이 부족한
여성이라는 인식을 공유하게 된다. 캐서린은 입에 발린 말을 늘어놓는 모리스의 구애를 진정한 사랑으로 여기며, 아버지의 유산 없이도
모리스가 자신과 결혼해줄 것이라 믿었다. 과연 캐서린은 세상물정 모르는 바보 아가씨였을까? 영화의 초반부에 캐서린이 주문한
의상을 입어보는 장면은 하나의 단서를 제공한다. 그 의상은 매우 화려한 크리놀린 스타일(Crinoline Style, 19세기
중반에 유행한 밑단이 넓게 펼쳐지는 스타일)의 드레스였다. 소설에서는 '진홍색(crimson)' 드레스로 묘사되는데, 흑백
영화에서는 눈에 띄는 그 색을 표현할 수 없으니 크게 부풀리고 장식이 들어간 드레스로 대체했다. 과감한 색상의 드레스로 남들의
주목을 끌고 싶어하는 캐서린은 드레스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아버지의 비아냥에도 굴하지 않는다. 진홍색 드레스는 어떤 면에서 캐서린이
자아를 찾는 여정의 시작점에 자리한다.
영화 '상속녀'가 1960년에 우리나라에서 개봉되었을 때의 제목은
'사랑아 나는 통곡한다'였다. 그때 지어진 제목은 6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통용되고 있다. 영화는 좌절된 사랑의
상처와 슬픔을 그려낸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영화의 원작이라고 할 수 있는 헨리 제임스의 'Washington
Square'에는 그러한 표면적 내러티브와는 달리 다채로운 의미들이 내포되어 있다. 아버지의 영향력 아래에 놓여있던 여성이
독립적인 인간으로 성장해 나가는 여정, 그리고 계급의식에 대한 성찰까지 들어있다.
소설의 제목 '워싱턴
스퀘어'는 캐서린과 슬로퍼 박사가 살고 있는 거리의 이름으로, 1850년대 당시 뉴욕의 상류층 거주지였다. 변변찮은 집안 배경을
가진 슬로퍼 박사는 '의사'라는 전문직을 가진 이후에 부유한 상속녀와 결혼함으로써 상류층에 진입할 수 있었다. 그가 캐서린의
결혼을 반대하는 가장 큰 이유는 직업도 돈도 없는 모리스가 중산층에도 속하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점이 크다. 아마도 그는 모리스의
모습에서 자신의 과거를 떠올리며 더욱 싫어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영화에는 그러한 슬로퍼 박사의 계층적 인식을 비롯해 모리스의 출신
배경이 삭제되어 있다.
영화의 마지막, 캐서린의 집 밖에서는 다시 나타난 모리스가 캐서린의 이름을 부르며
맹렬히 문을 두드린다. 하지만 캐서린은 들리지 않은 것처럼 등불을 들고 2층으로 향하는 계단을 오른다. 돌처럼 냉담한, 어쩌면
지친 표정의 이 상속녀는 살아있는 동안 '사랑'을 가질 수는 없는 운명이었다. 아버지 슬로퍼 박사는 평생동안 딸을 아둔한 아이로
여기고 경멸했다. 모리스는 그를 계층 상승과 부를 위한 발판으로 여겼을 뿐이었다. 그럼에도 이 여인이 보여주는 얼굴의 표정에는 그
지난한 세월을 견디게 만든 의지와 독립심이 드러난다. 외롭지만 비참하지는 않다. 영화 '상속녀'는 원작을 압축시키고 생략한
영화적 변용에도 불구하고 그 본질을 잘 살려내고 있다.
*사진 출처: facebook.com
**헨리 제임스 문학의 영화적 변용 1부 'The Wings of the Dove(1997)'리뷰
https://sirius1001.blogspot.com/2022/02/henry-james-1-wings-of-dove-1997.html
헨리 제임스 문학의 영화적 변용 2부 'The Last Moment(1947)' 리뷰
https://sirius1001.blogspot.com/2022/02/lost-moment1947.html
*** 올리비아 드 하빌랜드 주연의 영화 '새장 속의 여인(Lady in a Cage, 1964)' 리뷰
https://sirius1001.blogspot.com/2022/02/lady-in-cage.html
****소설에서 캐서린이 받기로 되어 있는 유산의 액수는 현재 달러 가치로 환산하면 약 백만 달러에 달한다. 슬로퍼 박사는 캐서린이 모리스와 결혼하면 자신의 재산을 남겨주지 않겠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모리스가 캐서린과 결혼할 경우, 캐서린의 모친이 남긴 유산을 받는 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모리스는 더 많은 유산을 받고자 하는 욕심에 결혼 약속을 파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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