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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an Antonio Bardem의 두 편의 영화: 자전거 주자의 죽음(Muerte de un ciclista, 1955), 메인 스트리트(Calle Mayor, 1956)

 

*이 글에는 두 영화의 결말 부분이 들어있습니다.


1. 좌절된 로맨스에 투영된 독재 정권의 현실: 자전거 주자의 죽음(Muerte de un ciclista, 1955)

  영화를 목숨 걸고 찍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스페인의 영화 감독 Juan Antonio Bardem(1922-2002)의 삶이 그러했다. 투쟁적 성향의 그는 독재자 프랑코가 지배하던 엄혹한 시절과 불화했다. 그 때문에 자신의 영화가 혹독한 검열로 잘려나가서 누더기가 되는 꼴을 봐야했다. 심지어 감옥에 갇히기까지 했다. 감독은 어떻게든 영화를 만들려고 애를 썼다. 스페인에서 영화 만드는 일이 어렵게 되자 해외 합작 영화로 창작의 활로를 열었다. 검열의 마수를 벗어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그의 필모그래피가 불균일한 작품성의 영화들로 채워진 데에는 그런 이유가 있다. 그 가운데에서 초기작에 해당하는 '자전거 주자의 죽음(Death of a Cyclist, 1955)''메인 스트리트(Main street, 1956)'는 유독 반짝거린다.

  '자전거 주자의 죽음'은 자동차 사고 장면에서부터 시작된다. 여자는 연인과 짧은 여행에서 돌아오는 길에 자동차 사고를 낸다. 자전거 탄 사람을 친 것이다. 동승한 남자가 확인해 보니, 차에 치인 사람은 살아있는 상태였다. 여자는 남자에게 아무도 본 사람이 없으니 그냥 가자고 재촉한다. 그렇게 그들은 뺑소니를 친다. 여자가 그렇게 한 데에는 이유가 있다. 부유한 사업가의 아내인 마리아는 예전 연인 후안과 바람을 피우고 있다. 만약 사건이 알려지면 자신이 누리고 있는 모든 것을 잃어버리게 된다. 다음날 신문 기사에는 자전거 탄 남자의 사망 소식이 실린다. 누군가 그 사고를 목격하지는 않았을까? 마리아와 후안의 마음 속에는 불안이 스멀스멀 스며든다.

  영화는 예기치 않은 사고가 촉발한 긴장과 갈등을 그물처럼 촘촘히 짜내려간다. 마리아는 상류층 파티의 단골 손님인 라파로부터 협박을 받는다. 라파는 미술 비평가라는 허울좋은 직함을 달고 있기는 하지만 실상은 부르주아에게 빌붙어 기생하는 식객이나 다름없다. 그는 마리아에게 자신의 지독한 계층적 증오심을 드러낸다. "너희들 따까리 노릇하는 거 신물이 난다구. 이참에 나도 한몫 차지해야지." 마리아가 협잡꾼 라파에게 시달리는 동안 후안도 곤경에 처한다. 대학 교수인 그는 사건에 정신이 팔린 나머지, 여학생을 시험에서 부당하게 탈락시켜버린다. 학생들은 후안을 규탄하는 시위를 벌인다.

  바르뎀은 계층 문제와 스페인의 정치적 현실을 로맨스에 투사한다. 마리아가 사고로 죽게 만든 사람은 매우 가난한 남자이다. 그 사실을 알게 된 후안의 죄책감은 커져만 간다. 그는 학생들의 시위에서 젊은 날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다. 한때는 사회 개혁의 열정으로 불탔던 남자는 타락한 중년의 부르주아가 되어 있었다. 후안은 자신의 삶을 정화시키기로 결심한다. 그는 마리아에게 함께 자수하자고 말한다. 과연 마리아는 후안의 제안에 동의할까?

  후안과 마리아의 비극적 최후는 좌절된 로맨스인 동시에 스페인의 현실에 대한 은유적 비판이다. 순수한 사랑과 도덕적 삶을 복원하려는 후안의 시도는 무위로 돌아간다. 프랑코가 지배하는 현실에서 지배 계급의 진정한 내적 각성과 변화는 불가능하다. 독재 권력과 결탁한 그들은 자신들이 가진 것을 지키기에만 급급할 뿐이다. 공산주의자로서 바르뎀은 마리아의 죽음을 통해 자신의 신념을 내비친다. 한밤중에 과속으로 운전하던 여자는 자전거를 피하려다 강물에 추락한다. 부르주아의 윤리적 과오는 그렇게 처벌받는다.     



2. 세련된 정치적 수사학: 메인 스트리트(Calle Mayor, 1956)

  로맨스를 현실 정치와 엮는 바르뎀의 솜씨는 '메인 스트리트(Main street, 1956)'에서도 빛난다. 스페인의 어느 소도시, 35살 모태 솔로 노처녀 이사벨은 운명적 사랑을 기다린다. 그런 이사벨에게 어느 날, 잘생긴 연하의 신문 기자 후안이 사랑을 고백한다. 그는 이사벨에게 결혼도 약속한다. 하지만 사랑의 기쁨은 얼마가지 못한다. 후안의 착한 친구 페데리코는 이사벨에게 진실을 알려준다. 마을의 건달들이 후안을 이용해 이사벨을 놀림거리로 만들기로 했다는 것. 이사벨은 절망에 빠진다.

  '자전거 주자의 죽음'으로 국제적인 주목을 빋은 바르뎀은 자신에 대한 정부의 검열이 더욱 심해질 것으로 예상했다. 이 영화는 표면적으로는 그다지 정치색이 느껴지지 않는다. 바르뎀은 지방 소도시의 억압적 분위기를 통해 프랑코 독재를 우회적으로 비판한다. 영화 속 가상의 소도시는 개인의 온전한 자유가 보장되는 곳이 아니다. 계층적 차별과 분리가 견고하게 작동하는 그곳에서 주민들은 서로를 속속들이 알고 있다. 후안에게 버림받은 이사벨이 마주하게될 오욕의 미래는 어떤 면에서는 사회적 죽음과도 같다. 그러므로 페데리코는 이사벨에게 고향을 떠나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사벨은 마드리드행 기차에 오르지 않는다. 페데리코는 이사벨에게 간절히 당부한다. "어떻게든 꼭 살아야 해요!" 역에서 돌아오는 길, 비를 맞으며 이사벨은 도시의 메인 스트리트를 걷는다. 마을 건달들은 그런 이사벨을 비웃는다. 바르뎀은 창문 앞에 서있는 이사벨을 클로즈업하며 영화를 끝낸다. 이사벨은 분명히 울고 있지 않다. 하지만 창문에 흘러내리는 빗물은 마치 이사벨의 눈물처럼 보인다. 그러한 이사벨의 모습은 프랑코 치하의 스페인 국민들이 감내해야하는 수치심과 고통을 떠올리게 만든다. 그들은 견디고 살아내야 한다. 역설적이게도 독재 정권은 영화의 정치적 수사학을 강화시킨다. 후안 안토니오 바르뎀의 이 두 영화에는 독재자 프랑코가 스페인 영화사에 드리운 음울한 유산이 들어있다.  




*사진 출처: themoviedb.org



**사진 출처: picuki.com


'Main Street(1956)'의 주연을 맡은 이는 미국 여배우 베시 블레어(Betsy Blair)이다. 블레어는 매카시즘 광풍 속에 헐리우드 블랙리스트 명단에 올라 한동안 활동을 쉬었다. 이 영화는 블레어가 다시 연기를 재개할 무렵에 찍었다. 블레어의 원숙하고 절제된 연기는 이 영화를 더욱 돋보이게 만든다.


***사진 출처: encadenados.org


****스페인 영화의 과거와 현재

빅토르 에리세의 El Sur(1983) 리뷰
https://sirius1001.blogspot.com/2021/09/el-sur-1983.html

훌리오 메뎀의 Vacas(Cows, 1991) 리뷰
https://sirius1001.blogspot.com/2021/08/vacascows-1991.html

아말리아 울만의 El Planeta(2021) 리뷰
https://sirius1001.blogspot.com/2022/05/amalia-ulman-el-planeta202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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