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콘텐츠로 건너뛰기

자아와 타자성에 대한 잔혹한 은유, Yeast(2008)

    흔들리는 Handheld 화면 속에서 Rachel은 룸메이트 친구 Alice를 다그치는 중이다. 20대 초반의 세 명의 친구 Rachel, Gen, Alice는 주말에 캠핑 여행을 가기로 약속했다. 밖에서는 젠이 차에서 기다리는데, 엘리스는 레이첼에게 안가겠다고 한사코 버틴다. 화가 난 레이첼은 엘리스를 거칠게 밀치며 짜증을 표출한다. 결국 레이첼은 젠과 함께 여행을 떠난다. 젠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레이첼. 하지만 레이첼의 주말 캠핑은 기대와 어긋나기 시작한다. 젠은 숲속에서 만난 젊은 남자들을 무례하게 골려주며 즐거워한다. 젠의 가학적인 면모는 갑작스럽게 레이첼의 머리를 가격하는 것으로 표출된다. 레이첼은 젠에게 사과를 요구하지만 젠은 들은 척도 하지 않는다. 엉망으로 끝난 캠핑, 집으로 돌아온 레이첼은 엘리스가 데려온 남자가 자신의 침대에 있는 것을 발견한다. 엘리스는 뻔뻔하게 굴고, 남자는 나갈 생각이 없다. 레이첼이 친구라고 생각하는 젠과 엘리스, 과연 그들은 정말로 레이첼의 친구가 맞을까?   영화 'Yeast(2008)'은 여성 감독 Mary Bronstein의 데뷔작이다. Bronstein은 영화 속에서 레이첼 역을 맡아서 연기도 했다. 영화는 소니 캠코더인 MiniDV로 찍었다. 마치 리얼리티 방송(Reality television)처럼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Handheld 촬영으로 인물들을 따라간다. 대화는 매우 현실적인 구어체이다. 영화의 서사에는 즉흥성과 자연스러움이 스며들어 있다. 19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반까지 이러한 비주류적 독립 영화 제작 스타일이 미국 영화계에 새롭게 부상했다. Mumblecore, 영어 단어 murmur('의미없이 중얼거리다'라는 뜻)에서 기원한 이 장르는 젊은 신예 영화 감독들의 실험 정신을 반영했다. Mary Bronstein도 거기에 자신의 이름을 들이밀었다.   영화 'Yeast'를 보는 것은 꽤 많은 인내심을 필요로 한...

전후 일본 영화(Post-war Japan Movie, 1946-1955) 3편: 전후 일본 사회가 마주한 고통과 혼란, 미스터 푸(プーサン, Mr. Pu, 1953)

    노로는 고등학교 선생이다. 그는 과속을 하는 트럭을 피하려다 손을 다친다. 그가 받는 빠듯한 봉급으로 단칸 월세방 돈 내는 것도 힘든데 병원비까지 나가게 생겼다. 그는 학교에서 그의 봉급을 올려주길 기대한다. 하지만 깡패같은 고등학교 이사장은 노로에게 야간 고등학교 강의까지 더하라고 강권한다. 천성이 유약한 노로는 '아니오'라는 말을 차마 하지 못한다. 뭔가 억울하다는 생각이 든 노로. 그는 자신의 제자가 권유한 반정부 시위에 나가보기로 한다. 시위대는 경찰의 강경대응으로 무참히 진압되었다. 노로는 경찰서에 끌려갔다가 겨우 풀려난다. 하지만 이 일을 빌미로 이사장은 노로를 해고한다. 전후의 어려운 시절, 노로는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   이치카와 곤(市川崑, Kon Ichikawa) 감독의 영화 '미스터 푸(プーサン, Mr. Pu, 1953)'는 고등학교 선생 노로와 그의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를 통해 전후 일본 사회를 보여준다. 이 영화는 원작이 되는 만화가 있다. 만화가 요코야마 타이조(横山泰三)는 1950년부터 1953년  마이니치 신문(毎日新聞)에 4컷 만화 '미스터 푸(プーサン)'를 연재했다. 4컷 만화에 담긴 날카로운 사회비판적 메시지 때문에 만화는 연재 중단의 압력을 받았다. 이치카와 곤은 그 만화에서 영화의 주요한 소재를 차용했다. 영화  '미스터 푸(プーサン)'는 명확한 서사 대신에 다양한 등장 인물들이 처한 상황을 유기적으로 연결한다. 영화의 그러한 구성은 전후 일본 사회의 여러 면면들을 부각시킨다.    노로는 다친 손의 치료를 위해 병원에 간다. 그런데 의사는 노로의 몸을 진찰하더니 '영양실조'라면서 잘 먹어야 한다고 처방을 내린다. 젊은 의사는 환자들 대부분이 제대로 먹지 못해 건강이 좋지 않다고 말한다. 노로가 의사에게 손을 치료받고 싶다고 하자, 의사는 병원의 X-ray 기계가 고장나서 사진을 찍을 수 없다고 말한다. 이 장면은 전후...

Shirley Clarke의 실패한 타자성 탐구, Portrait of Jason(1967)

  1. 이상한 나라의 Jason Holliday   한 남자가 자신을 소개한다. 자신의 이름이 Jason Holliday라고 말한 그는 본명이 Aaron Payne이라고 말하는 것을 잊지 않는다. 마일스 데이비스(Miles Davis, 유명한 재즈 연주자)와도 안다고 말하는 그는 자신이 가진 직업을 줄줄이 늘어놓는다. 그가 말한 직업들 중에는 남창(whore)도 있다. 손에 술잔을 든 그는 심부름꾼(houseboy)으로 시작한 자신의 인생 역정을 늘어놓는다. 미국의 독립 영화 제작자 Shirley Clarke는 1966년 12월 3일, 자신이 머물던 첼시 호텔(Hotel Chelsea) 펜트 하우스에서 제이슨 할러데이의 인생 이야기를 주제로 다큐를 찍었다. 저녁 9시에 시작된 촬영은 12시간 동안 이어졌다. 그 결과로 나온 것이 'Portrait of Jason(1967)'이다.   제이슨은 술에 취해 기분이 아주 좋아보인다. 화면 밖에서 목소리로만 들리는 셜리 클라크는 제이슨에게 질문을 던지며 그가 계속해서 이야기를 하도록 유도한다. 마치 인형극의 조종하는 사람(puppeteer)처럼 클라크는 제이슨을 자신의 뜻대로 움직이려는 것 같다. 흑인이며 동성애자이기도 한 제이슨에게 미리 준비해놓은 소품으로 작은 공연을 하도록 만들기도 한다. 소품 가방에서 꺼낸 모피 목도리를 두르고는 제이슨은 여성스럽고도 우스꽝스러운 제스처를 취하며 킬킬거린다. 제이슨이 원하는대로 술과 담배가 계속해서 제공된다. 시간이 갈수록 술에 취한 제이슨의 말소리는 알아듣기 어렵게 뭉그러진다.   러닝 타임 1시간 45분의 이 다큐 'Portrait of Jason(1967)'은 보면 볼수록 기이하다. 관객은 'Jason Holliday'라는 인물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듣도록 초대받지만, 다큐가 끝나고 나면 그가 어떤 사람인지 도무지 알 수 없게 되어버린다. 가장 큰 이유는 제이슨이 가진 뛰어난 공연자(performer)로서...

문화대혁명의 새로운 영화적 변주, Crossing The Border - ZhaoGuan(2018)

    현대 중국 영화에서 문화대혁명(文化大革命, Cultural Revolution) 의 그림자를 찾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다. 5세대(Fifth generation)와 6세대(Sixth generation) 감독들에게 문화대혁명은 자신들의 시대를 관통하는 대격변의 사건이었다. 비교적 최근작이라고 할 수 있는 6세대 감독 Wang Xiaoshuai 'So Long, My Son(2019)' 도 문화대혁명을 회고한다. 영화 'Crossing The Border - ZhaoGuan(2018)'에도 문화대혁명이 삽화적 사건으로 등장한다. 이 영화의 감독 Meng Huo는 30대의 젊은 감독으로 1984년생이다. 그렇다면 문혁을 겪지 않은 젊은 세대의 감독은 지난 시대의 역사와 오늘날의 중국 사회를 어떻게 바라보는가?   영화의 주인공은 70대의 시골 할아버지 Li Fuchang이다. 이제는 생의 끝자락에 서있는 Li 할아버지는 젊었을 적 친한 친구가 병석에 누워있다는 소식을 듣는다. 그는 낡은 삼륜차(tricycle)를 타고 가서 Sanmenxia 있는 친구를 만나기로 결심한다. 그가 있는 시골에서 Sanmenxia는 30km나 떨어진 곳이다. 이 여행에는 7살 손자 닝닝도 함께 한다. 과연 털털거리는 삼륜차로 Li 할아버지는 무사히 친구가 있는 먼도시에 도착할 수 있을까? 영화 '자오관으로 가는 길(중국어 제목: 过昭关)' 의 기본적 얼개는 데이비드 린치(David Lynch)의 'The Straight Story(1999)' 를 떠올리게 만드는 지점이 있다. 영화 '스트레이트 스토리'에서도 주인공은 늙은 노인이다. 앨빈 스트레이트는 오랫동안 불화했던 형을 만나기 위해 트랙터를 타고 먼길을 떠난다. 영화는 앨빈이 여행 중에 만나는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와 앨빈의 지나온 인생 역정이 함께 어우러진다. '자오관으로 가는 길'에서도 Li 할아버지와 그의 손자 닝닝...

관계와 삶에 대한 응축된 편린, Return to Seoul(2022)

  *이 글에는 영화 'Return to Seoul(2022)'의 결말 부분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1989년, 한국의 방송국 MBC에서는 스웨덴 입양 여성 수잔 브링크(Susanne Brink)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를 방영했었다. 오랜 이별 끝에 마침내 친모와 재회하게 된 입양 여성의 사연은 많은 한국인들의 마음을 뒤흔들었다. 그 사연은 곧 영화로 만들어졌다. 장길수 감독의 '수잔 브링크의 아리랑(Susanne Brink's Arirang, 1991)' 이 그것이다. 나는 1989년의 다큐멘터리도, 그 후에 만들어진 영화도 모두 보았었다. 또한 나는 그 이야기의 주인공 수잔 브링크(한국 이름 신유숙)가 암투병을 하다가 삶을 마감했다는 후일담까지도 잘 알고 있다. 수잔 브링크를 알고 있는 한국 관객이라면 영화 'Return to Seoul(2022)' 에서 기시감(旣視感)을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   프랑스 국적의 캄보디아 이민자 출신의 Davy Chou 감독은 자신의 한국인 입양아 친구에게서 이 영화의 영감을 얻었다. 영화의 주인공은 '프레디(Freddie)'. 한국 입양아 출신의 이 프랑스 여성은 태풍으로 취소된 항공편 때문에 한국에 잠시 체류한다. 2주 동안 한국에 머물면서 프레디는 입양 기관을 통해 친부모를 만나고 싶어한다. 친부가 프레디를 만나고 싶어하는 것과는 달리 친모는 만남을 거부한다. 친아버지가 있는 군산에 간 프레디, 프레디는 3일 동안 할머니와 친아버지의 가족과 지낸다. 친아버지와 가족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프레디가 느낀 거리감과 문화적인 장벽은 쉽사리 해소되지 않는다. 프레디는 끊임없이 문자 메시지를 보내고 연락을 취하려는 아버지를 싫어하게 된다. 영화는 그 일로부터 2년 후, 5년 후, 그리고 프레디가 서른 한 살이 되는 시점에 이르기까지의 이야기를 펼쳐서 보여준다.   영화의 시작을 여는 노래는 신중현(Shin Jung-hyun) 작...

기후 변화가 가져올 묵시론적 미래, Utama(2022)

  *이 글에는 영화 'Utama(2022)'의 결말 부분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2015년, 인도네시아 수마트라(Sumatra)섬의 시나붕(Sinabung) 화산이 폭발했다. 엄청난 화산 폭발로 많은 이들이 죽거나 다쳤다. 나는 당시에 화산 지대 주민들을 취재한 인터뷰를 기억하고 있다. 화산재로 뒤덮인 마을 뒤로 화산은 여전히 시커먼 연기를 내뿜고 있었다. 그런 마을에서 도저히 사람이 살아갈 수 없을 것 같은데도 마을 주민들은 그곳을 떠나지 않았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마을 주민들에게 그곳은 삶의 터전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화산은 마치 신과 같은 존재처럼 여겨지는듯 했다. 화산 폭발은 신의 노여움 같은 것이었다. 주민들은 신의 노여움이 풀리면 예전처럼 살아갈 수 있다고 여기는 것 같았다.   외부인의 관점에서 그러한 주민들의 모습은 좀처럼 이해하기 어렵다. 화산 폭발의 여파로 그곳의 사람들은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곳에서 살아야만 하는 걸까? 이는 극한의 자연 환경에서 살고 있는 이들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과 연결된다. 왜 그들은 그런 곳에서 살아가고 있으며, 더 나은 삶의 터전을 찾아 떠나지 않는가? 그 질문은 볼리비아의 감독 Alejandro Loayza Grisi의 영화 'Utama(2022)' 에서도 동일하게 반복된다.   볼리비아의 거친 고원 지대, 오랫동안 라마(Llama)를 키우며 살아온 늙은 원주민 부부가 있다. 그곳에서 평화롭게 살아온 Virginio와 Sisa 부부에게 걱정거리가 생겼다. 지독한 가뭄이 이어지면서 마을에서 물을 구하는 것이 어려워졌다. Sisa는 매일 먼 곳의 강변으로 물을 길으러 간다. Virginio도 그의 라마 무리에게 물을 먹이기 위해 먼 길을 다닌다. 마을 사람들 모두 Virginio와 Sisa 부부처럼 물 때문에 힘겨운 삶을 이어가고 있다. 어느 날, 도시에 사는 손자 Clever가 부부를 찾아온다. Clever는 할아버지와...

Jerzy Sladkowski 감독의 다큐멘터리 2편: Bitter Love(2020), Vodka Factory(2010)

   1. Bitter Love(2020): 유람선 승객들을 통해 바라본 러시아 사회의 내적 공허      "결혼의 행복이란 이런 거야. 부부가 커피를 주문했는데, 남편이 아내의 찻잔에 설탕을 넣어주는 거야. 남편은 아내의 커피에 얼마만큼의 설탕을 넣을지 잘 알고 있지."   60대 여성인 율리아는 볼가강(Volga River)을 크루즈로 여행하고 있다. 율리아는 같은 선실을 쓰는 여자에게 그렇게 말한다. 율리아의 선실 동료는 점쟁이이다. 이 여성은 크루즈 여행객들에게 점을 봐주기도 한다. 율리아와 카드 점쟁이는 곧 친구가 된다. 싱글인 그들은 이 크루즈에서 마음에 드는 남성을 찾을 수 있을까? 폴란드의 다큐멘터리 감독 Jerzy Sladkowski는 3주 동안 볼가강 크루즈 여행객들을 따라간다. 'Bitter Love(2020)'라는 제목이 알려주듯 이 다큐에 나오는 여행객들의 주된 관심사는 '사랑'이다.       다큐는 매우 인상적인 도입부로 시작한다. 40대 중반의 옥사나는 크루즈에서 만난 남자와 이야기를 하고 있다. 옥사나는 신작 영화 '안나 카레리나'를 보았다고 말한다. 톨스토이 원작 소설 '안나 카레리나(Anna Karenina)'에는 불행한 결혼 생활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 파멸에 이르는 여주인공 안나가 나온다. 여자는 안나의 삶에서 자신의 현재를 본 것일까? 옥사나는 안톤 체호프의 단편 소설도 언급한다. 자신이 그 소설에 나오는 개 '카시탄카' 같다고 말한다. 그 이야기를 하던 옥사나는 갑자기 눈물을 흘린다.   '카시탄카(Kastanka)'의 줄거리는 이러하다. 가난한 농가의 개 '카시탄카(Kastanka)'는 주인의 사랑도 받지 못하고 고단한 삶을 이어간다. 카시탄카는 어느 날 밖에 나갔다가 길을 잃는다. 카시탄카가 어쩌다 따라간 사람은 서커스를 하는 남자이다. 그 남자와 지내게 된 카시탄카는 서커스 개로 ...